빈틈 있는 게 사람이다

완벽보다는 사람 냄새나는 하루

by 써니로그

아침부터 기를 모았다.

오늘은 중요한 발표 날.

보고서는 마지막까지 점검하고,

슬라이드는 오탈자 없는지 재확인.

의상도 흰색 원피스에 딱 맞는 회색 재킷까지 걸쳐 완벽하게 마무리.


그런데 하필

발표 시작과 동시에

내 텀블러가 정확히 흰색 원피스 위로 와르르 쏟아졌다.


정적~

'으악~망했다'


마이크 앞에 서서 멍하니 있다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네, 죄송합니다. 카페라테와 함께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실이 웃음바다가 됐고,

그날 발표는 오히려 더 부드럽게 흘러갔다.


예전 같았으면

속으로 땅을 파고 지하로 꺼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은 좀 웃겼다.

아니, 나도 그냥 같이 웃었다.


생각해 보

내 삶은 늘 완벽해 보이려는 연습이었다.


일도, 옷차림도, 말투도, 인간관계도

틈이 보이면 불안했다.


보고서를 쓸 때도

지적받지 않으려고 수십 번을 교정했고

상사가 “여긴 이렇게 바꿔볼까?” 하면

속으로 그걸 왜 놓쳤지 하고 자책했다.


하지만 가만 보면

상사는 그런 순간을 더 즐거워했다.


조언할 틈이 생기면,

관계에도 숨 쉴 틈이 생긴다는 걸

요즘에서야 알게 되었다.


완벽하려는 마음,

물론 나쁘지 않다.

그런데 너무 힘을 주면

사람 냄새가 빠진다.


적당한 실수,

살짝의 허술함,

그게 오히려 관계를 더 따뜻하게 만든다.


그래서 요즘은

빈틈을 조금 남겨둔다.


출근할 때 옷을 빼입지 않아도 되고,

회의 중에 농담 한두 마디 섞여도 좋고,

보고서는...

살짝 어설픈 거 하나쯤은 남겨둔다.

(솔직히 상사도 뭔가 말할 거리가 있어야 하니까요. ㅎㅎ)


빈틈이 있는 사람은 편하다.

그 사람 옆엔 웃음이 있고,

그 웃음 속엔 신뢰가 깃든다.


틈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