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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택주 Dec 04. 2020

오늘, 평화롭기 딱 좋은 날

자, 달려볼까요?

불에 쫓기는 동무에게 보금자리 내준 웜뱃

꼬마평화도서관 할아버지가 연주하는 <숲속의 어느 날>    


벼리, 안녕?     


호주에 사는 웜뱃은 땅굴을 파고 사는 짐승이야. 내가 보기에는 몽실몽실하니 곰을 닮았는데 땅에 굴을 파기를 좋아하니 커다란 두더지 같다고 해야 할까? 날마다 땅굴을 판다며 숲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니까 다른 짐승들이 투덜거렸어.     


“이런! 여기저기 구멍투성이야!” 

“흥, 웜뱃이 숲을 다 망쳐 놓고 있어.”

“굴 파는 소리에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어!”

“나는 지난밤에 웜뱃의 구덩이에 빠졌는걸.”     


이렇게 툴툴거리면서 웜뱃을 따돌렸어. 외톨이가 된 웜뱃. 외로울수록 더욱 땅굴 파기에 빠져들었지. 

외로울수록 땅굴 파기에 빠져든 웜뱃 / 빛그림- 해와나무

그러던 어느 날 밤. 숲 너머가 갑자기 환해졌어. 번쩍번쩍! 타닥타닥! 큰불이 난 거야. 불은 빠르게 번지고. 숲속에 사는 짐승들은 갈팡질팡했어. 그러다가 불에 쫓기던 왈라비를 비롯한 온갖 짐승들이 웜뱃이 파놓은 땅굴로 뛰어들었어. 새끼를 안고 불길에 싸여 쩔쩔매는 코알라를 본 캥거루는 겅중겅중 뛰어가 새끼를 받아 안고 후다닥 땅굴로 들어가고, 다른 짐승들은 어미 코알라 손을 잡고 굴에 들어갔어. 어찌 된 일일까? 웜뱃이 얘들아 “어서 이리 와!” 하고 외치며 나섰기 때문이야.     

"어서 이리 와!" / 빛그림- 해와나무

굴 파는 소리가 시끄럽다며, 숲이 온통 구멍투성이라고 짜증 내던 짐승들이 웜뱃이 내민 손을 잡고 땅굴에 들어가 목숨을 건졌단 얘기… 뭉클하지? 이웃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제집을 선뜻 내놓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놀라운 건, 평소에 저를 따돌리며 손가락질하던 이웃에게는 “너 전에 나를 놀렸지? 그러니까 너는 빠져.”라 할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는 거야.     


웜뱃에게 글썽이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 웜뱃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여려 어리보기 소리를 듣던 사자 이야기를 떠올렸어.      



오래전 미국 어느 농장에 암사자 한 마리가 살았어. 새끼 양하고도 어울려 놀던 이 사자에게 둘도 없는 단짝은 고양이였어. 사자가 어려서 불에 데어 두 달 동안 앓고 있을 때 그 고양이가 곁을 지키며 데인 데를 핥아주곤 했대. 그러던 어느 날 누가 안고 갔는지 독수리가 채 갔는지 고양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어. 그러자 이 사자 밥도 먹지 않고, 몇 달 동안 슬피 울기만 했다고 해. 

그런데 이 사자는 아이들이 짓궂게 굴어도, 사람들이 귀찮게 몰려들어도, 당나귀에게 턱을 차여 혀를 찢겨도 참새들에게 먹이를 빼앗겨도 성내지 않았다는구나. 몸무게가 160kg이나 나가는 이 사자에게 당나귀나 사람은 한주먹 거리도 되지 않았을 텐데 놀랍지?1)    

 

“고등동물들은 스스로 세운 가치관에 따라 살며, 기뻐하고 슬퍼할 줄 안다는 걸 굳게 믿는다.” 오래도록 짐승들이 사는 모습을 살피며 갈닦아온 콘라드 로렌츠라는 이가 한 말이야. 부처님 말씀도 이런 말씀을 하셨지.     


모든 짓은 마음이 이끈다.

마음에 뿌리는 두고 마음으로 지어간다.

어질게 마음먹고 말하며 살면 즐거움이 뒤따른다.

그림자가 몸을 뒤따르듯이.2)   


부처님 말씀처럼 마음만 넉넉하니 써도 평화는 바로 우리 곁에 놓여.   

<숲속의 어느날> 권오준 글, 최하진 그림 / 해와나무 / 2020년 / 값 12,000원

1) <채식하는 사자 리틀타이크(조지 웨스트보, 마거릿 웨스트보 글/책공장더불어)>

2) <벼리는 불교가 궁금해(변택주 글/불광출판사)>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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