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과 나비에게도 시민권을 주는 평화로운 나라는?
꼬마평화도서관은 서른 권 남짓한 평화를 그린 책만 갖추면 누구라도 문을 열 수 있는 도서관입니다. 2014년 12월 9일 보리출판사 1층에 있는 북카페에 처음 문을 연 꼬마평화도서관은 그동안 6·25전쟁 때 시민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곳이나 시민항쟁 아픔이 있는 곳, 교회와 성당, 밥집과 반찬가게,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 복도와 연립주택 현관 같은 곳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제 45호 개관을 앞둔 꼬마평화도서관 관장들이 꼭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바로 한 달에 한 번은 사람들을 모아 평화그림책 목소리 연주회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널리 퍼진 뒤로는 연주회를 갖기가 퍽 조심스럽습니다. 몇몇 도서관장들은 가방에 늘 그림책 한두 권을 넣고 다니면서 사람을 만날 때 틈을 보아 같이 읽어보지 않겠느냐고 두드립니다.
얼마 전 부천 상동 송내초등학교 옆에 있는 마을공동체 ‘모지리’ 이장이며 서른아홉 번째 꼬마평화도서관장인 개똥이가 마을 카페에 나들이 나온 몇 사람을 불러 모으며 그림책 <퐁퐁과 흰곰 친구들>을 건넵니다. 얼거리를 짚어볼까요?
주인공 곰인 퐁퐁에게는 개구쟁이 동생이 있습니다. 이름이 쁘띠인데요. 부모님은 겨울잠을 앞두고 동굴 곳곳을 치웁니다. 퐁퐁이는 겨울잠 잔치를 하겠다며 탁자를 꺼내고, 컵과 냅킨 따위를 내놓고 페인트 통도 가져다 놓습니다. 그런데 쁘띠가 붉은 페인트 통과 붓을 들고 달려 나가는 것을 보고 놀라 쫓아갑니다. 숲 이곳저곳을 페인트 천지로 만들어 놓으며 말썽 피우는 것을 보며 허둥지둥 쁘띠를 쫓던 퐁퐁이는 녹은 얼음조각배를 타고 떠밀려온 흰곰 난민들을 만납니다. 따라온 흰곰들이 힘을 보태준 덕분에 겨울잠 잔치를 잘 마친 퐁퐁이네 식구는 흰곰들을 어떻게 대접했을까요?
그림책 연주하는 사람은 그림 하나하나를 찬찬히 살피면서 그림에 담긴 이야기도 나눠야 합니다. 그런데 글을 훑는데 젖어 있는 어른들은 대부분 글을 읽어가기 바쁩니다. 그러나 <퐁퐁과 흰곰 친구들>을 연주하면서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피리 부는 사나이와 따르는 생쥐 따위를 드러내지 못하고 놓치고 말면 제대로 연주했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요?
요사이 스물아홉 번째 도서관장 늘보가 들고 다니는 평화 책가방에는 기후 시민 3.5 프로젝트로 만든 아주 작고 얇은 그림책이 퍽 여러 권 들어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엘레나와 발렌티나>를 만나는 사람 앞에서 곧잘 연주합니다. 이 책은 이렇게 문을 엽니다.
발렌티나는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아름다운 해변’이라는 뜻의
작고 아름다운 나라 코스타리카에 살아.
발렌티나가 사는 마을
‘쿠리다비트’에서는
꿀벌과 나비에게도
시민권을 주었어.
우리는 꿀벌과 나비 같은 곤충을 보살피는 일이 곧 사람을 보듬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마음에만 담고 있을 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반려충을 넘어 시민권이라니 놀랍지요?
또 발렌티나에게는 엘레나란 할머니가 계신 데 엘레나는 산림을 갈아 평생 농사를 지었습니다. 늙어서 농사를 더 지을 수 없어 손을 놓고 있다 보니 그곳은 도로 숲이 되었습니다. 도로 숲이 된 곳을 2차 숲이라고 하는데 이 숲을 잘 지키면 정부에서 돈을 준다고 하네요. 그 바람에 25%까지 줄어들었던 산림이 60%까지 살아났답니다. 이제 ‘동식물 보물창고’라고 불리는 코스타리카를 보면서 평화가 ‘어울려 살림’이라고 받아들이며 ‘살림살이를 지어가야 하겠구나’ 하고 굳게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