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중립의 날을 기려야 하는 까닭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가 세 해가 넘도록 싸우고 있는 러시아, 하마스와 이스라엘 싸움으로 뭇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과 북이 주고받는 전단과 쓰레기 풍선에 이은 대북, 대남방송으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싸움에 북한군이 뛰어들었다는 소식에 어수선합니다.
이뿐일까요? 다음 미국 대통령으로 뽑힌 트럼프는 우리를 을러댈 것입니다. 미군은 너희 나라를 지키려고 가 있다, 그러니 너희 나라 안에 있는 미군이 쓰는 모든 돈은 다 너희가 내라고. 트럼프는 그동안 동맹은 미국을 더욱 탄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돈 들이지 않고 미국 힘에 올라타는 것이라고 떠들어 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은 어느 나라에든지 제 나라 군대를 보내고 나서 스스로 군대를 물린 적이 거의 없습니다. 미군이 한반도에 머무는 까닭도 한국을 지키려고 하기보다 중국과 러시아를 억누르려는데 있습니다. 아니라고요? 아닌지 긴지는 뒤에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나오니 그걸 보면 절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꼼꼼히 짚어보면 세계 5~6위를 오르내리는 국방력을 가진 한국은 스스로 지킬 힘이 너끈합니다. 미군이 우리나라에 머물고 훈련하는데 쓰는 돈을 우리가 치러야 할 까닭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미국 군대가 이 땅에 머무는 것은 미국 좋자고 하는 일이니 이 땅에서 떠나라! 정 있고 싶다면 우리 땅을 빌리는 삯은 말할 것도 없이 한미연합훈련에 들어가는 돈도 너희가 내야 한다.” 하고 외쳐야 합니다.
짚어보겠습니다. 미국과 일본하고 가까워진다고 해서 중국과 러시아하고 등져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 어느 쪽으로도 쏠리지 않는 외교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일이 가까워지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나토, 북대서양조약기구에도 끈을 대고 있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라고 하니까 갸웃거릴 분도 있을 텐데요.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는 유럽 군사 동맹입니다. 동맹, 어느 쪽에 붙는다는 것은 다른 쪽과 멀어진다는 뜻입니다. 아시아에 있는 우리나라가 유럽 방위 기구 나토에 달라붙어서 얻을 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얻는 것 없이 중국이나 러시아만 건드리는 꼴이 되기 쉽습니다. 잃을 것이 더 많다는 말씀입니다.
유럽 군사 동맹이 유럽을 넘어 중앙아시아까지 넘보는 바람에 일어난 것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싸움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 까닭을 짚어보는 것은 그와 같은 일이 다시 되풀이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
소련이 흩어지면서 소비에트 연방에 있다가 독립한 나라에는 모두 친러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2014년 우크라이나에 쿠데타가 일어나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정권 뒷배가 된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 부통령은 바이든이었습니다. 러시아 코앞에 미국을 따르는 나라를 만들려는 속셈이었습니다. 바이든이 2021년 1월 미국 대통령이 되고 나서 우크라이나에 쿠데타를 부추긴 빅토리아 눌랜드를 국무 차관에, 이에 발맞춘 제이크 설리반을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에 앉혔습니다. 이 사람들은 곧바로 우크라이나에 군사고문단과 많은 첨단무기를 보내면서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끌어들이려고 서두릅니다. 러시아 턱밑 흑해에서 나토군이 수도 없이 몰려와 연합훈련도 했습니다. 2021년 12월 러시아가 미국에 대고 외칩니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끌어들이지 말고, 동유럽에 무기와 병력배치를 멈추며, 러시아 가까이에서 연합훈련을 그만두라고요. 이때 푸틴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이들이 우리를 속였다. 뻔뻔하게 조금도 흔들림 없이 나토를 넓히고 있다.” 이 말을 미국 국무장관 토니 블링컨은 이렇게 받습니다. “나토는 새로운 회원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이 없고,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누구 말이 거짓일까요? 미국 조지워싱턴대 국가안보문서고(National Security Archive)가 손에 넣은 비밀이 풀린 문서들을 바탕으로 살펴봅니다. 먼저 서독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은 1990년 1월 31일 독일 통일을 다루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동유럽이 바뀌고 독일이 통일하는 것이 소련 안보를 해쳐서는 안 된다.”, “나토는 동쪽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 서독에 있는 미국대사관은 겐셔가 던진 이 말은 동유럽이 나토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할 뿐 아니라 “독일이 통일되고 나서도 나토 군사력이 동독에는 주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워싱턴에 알렸습니다.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비롯한 소련 지도부에게 “나토가 1인치도 동쪽으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나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다짐하는 것”이라고 외칩니다. 베이커는 헬무트 콜 서독 총리에게도 같은 뜻을 알렸습니다. 이것은 콜이 고르바초프에게 독일 통일을 막지 않는다는 뜻을 받아내는 기둥이 되었습니다. 더글러스 허드 영국 외교장관도 1990년 4월 11일 고르바초프를 만난 자리에서 “영국은 소련 이익과 존엄을 해치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잘 새겼다.”라고 합니다. 5월 18일에 고르바초프를 만난 베이커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정책은 소련에서 동유럽을 떼어내려는 것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더 나아갑니다. 5월 25일 고르바초프에게 나토가 동쪽으로 넓어지는 것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개인 생각이지만 차차 군사 모둠을 없애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합니다. 바르샤바조약기구는 말할 것도 없이 나토도 없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이었습니다. 바르샤바조약기구는 1955년 5월 14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동유럽 8개 나라가 맺은 군사 동맹으로 나토에 맞서는 모둠입니다. 5월 30일 워싱턴에서 고르바초프를 만난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어떻게도 소련을 나쁘게 할 뜻이 없다.”, “나를 믿어달라”라고 다짐합니다. 열흘 뒤 고르바초프를 만난 영국 총리 마가렛 대처도 “우리는 소련이 안전하다고 굳게 믿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라면서 나토를 군사 성격을 줄인 ‘정치 동맹’으로 가지고 갈 길을 찾겠다고 뜻을 밝혔습니다. 7월 17일 부시는 고르바초프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또 이렇게 말합니다. 독일 통일과 나토 앞날을 풀어가면서 “당신이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낸 걱정을 마음에 새기겠다”, “우리는 재래식 무기와 핵 무력을 다루는 접근을 바꿨다”라고 말합니다. 대처 뒤를 이은 영국 총리 존 메이어도 소련 드미트리 야즈노프 국방장관이 동유럽 나라들을 나토에 끌어들이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걱정하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말을 꺼내면서 시시콜콜 밝힌 까닭은 센 나라들이 입에 발린 소리를 얼마나 잘 던지며 그 말을 얼마나 쉽게 뒤집을 수 있는지 알려드리려고 그랬습니다.
나토가 동쪽으로 나아가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나온 까닭은 냉전을 끝내고, 동·서독으로 갈라진 독일이 하나 되려면 소련이 뜻을 모아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동독에 있는 소련군이 물러가야 하니까요. 그러나 “나토는 동쪽으로 1인치도 넘어가지 않겠다.”라는 다짐은 1991년 12월 소비에트 연방이 흩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토가 동유럽 나라들을 야금야금 끌어들이면서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바이든은 푸틴이 따지는 말을 뭉갭니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갑니다. 우크라이나는 바로 러시아와 만나 두 달 만에 평화협정을 맺기로 합니다. 러시아를 억누르려는 미국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지요. 눈을 부릅뜬 미국에 무릎 꿇은 젤렌스키는 러시아와 평화협정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맙니다. 알고 보니 어떠세요? 푸틴에게만 살인마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습니까? 전쟁을 일으킨 건 푸틴이지만 찬찬히 짚어보면 러시아 숨통을 조인 건 바이든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게 된 까닭도 전쟁을 오래 끌게 된 까닭도 다 미국에 있습니다. 깊이 알아야 하는 까닭입니다. 무엇을 제대로 보려면 힘이 듭니다. 그래도 잘 살펴야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습니다. 그래야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지 않겠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다른 나라들이 세지는 것을 눈 뜨고 보지 못하고 거침없이 흔들어대는 미국 탓에 세계는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제 뜻과는 다르게 싸움에 휘말린 우크라이나, 한국이라고 다를까요? 다르지 않습니다. 벗어날 길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소련이 흩어지면서 홀로 선 중앙아시아 나라 가운데 영세중립국이 있습니다. 투르크메니스탄입니다. 영세중립국 가운데 막내인 투르크메니스탄은 1995년 12월 12일 제50차 유엔총회에서 모든 유엔 회원국 185개 나라가 한목소리로 맞아 영세중립국이 되었습니다. 한 나라가 중립하는데 이토록 많은 나라가 반기며 밀어주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22년이 지난 2017년 제71차 유엔총회에서 해마다 12월 12일을 ‘국제 중립의 날’로 하기로 뜻 모았습니다. 중립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영세중립을 헌법에 새겨넣은 하나밖에 없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나라 살림꾼들이 중립국에 깊은 뜻을 두고 있으며, 투르크메니스탄 사람들이 독립과 영세중립을 똑같이 우러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립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너그러움을 잃지 않고 이웃과 어깨동무하려는 투르크멘 사람들이 품어온 뜻과 지정학에 알맞은 철학 바탕에서 나왔습니다.
1991년 10월 27일 홀로 선 투르크메니스탄은 중립국이 되면서 국제 정치무대에서 어느 쪽 눈치를 보지 않을 평화 나래를 달았습니다. 중립이 나라 살림살이를 넉넉하게 만들고, 다른 나라와 어깨동무하는 데 있어 튼튼한 뿌리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가까이 있는 타지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이 내전에 휘말린 것과는 달리 아낀 군사비로 나라 사람들을 더 따뜻하게 품을 수 있었거든요. 어디 그뿐인가요? 중립은 투르크메니스탄 외교에도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중립국이라서 싸움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은 투르크메니스탄이 나라 문을 열었을 때 중국,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이 서방이나 제3세계 나라와도 머뭇거리지 않고 사이를 틀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하고도 좋은 사이를 맺고, 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이란을 잇는 철도를 놓아 화물이 잘 흐르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인 현대엔지니어링과 엘지 상사도 발 빠르게 들어가 좋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토록 중립은 나라 살림살이를 아우르고 나라를 지키는 데 없어선 안 될 갖춤으로 투르크멘 사람들을 넉넉하게 만드는 밑돌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에 ‘그랬더라면’이 있을 수 없다고는 하나, 우크라이나가 중립국이었더라도 러시아가 쳐들어갔을까요? 우리나라가 남과 북이 뜻을 모아 중립국이 되었더라도 그 많은 무기를 사야하고 젊은이들이 국방의무를 짊어져야 했을까요? 달랐을 것입니다. 중립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려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쟁을 치른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맹을 마땅하게 받아들입니다. 세상에 마땅한 것이 있을까요? 물릴 수 없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법’을 살펴봅니다. 법은 한자로 ‘물 수’와 ‘갈 거’가 만나서 빚은 글씨로 흘러간다는 뜻이 담겼으니 ‘흐름’이나 ‘결’로 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딱딱한 씨앗이 땅에 떨어져 흙과 어울리며 풀어지지 않으면 뿌리 내리고 움틀 수 없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바뀌어야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겨우내 탱탱 얼었던 얼음도 날이 풀리면 녹아내립니다. 우리는 이제껏 마땅하다고 여겼던 것에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참으로 그래야만 할까?” 하고요.
미국과 일본이 언제부터 우리 동맹이었습니까? 일본은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100여 년 전에 두 나라가 짬짬이 해서 우리나라를 일본 식민지가 되도록 했습니다. 광복을 맞은 우리나라 허리를 자른 나라도 미국입니다. 남북, 형제자매가 갈라서서 이토록 으르렁거리는 씨를 뿌린 것이 미국이라는 말입니다. 요즘 가깝더라도 언제 어떻게 휙 돌아설지 알 수 없습니다. 어느 나라도 너무 믿지도 너무 멀리하지도 않아야 하는 까닭입니다. 어느 쪽으로도 쏠리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것이 슬기롭습니다. 이쪽으로 쏠리면 저쪽, 저쪽으로 쏠리면 이쪽 눈총에서 비켜설 수 없습니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라는 말이 나옵니다. <손자병법>을 보지 못한 이라도 웬만한 사람은 지피지기를 알 것입니다. 지피지기하면 무슨 말이 따라붙습니까? 백전백승이라고요? 아닙니다. 백전불태가 따라붙습니다.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비틀어 지피지기 백전백승,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고 부풀리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모르긴 해도 싸우고 싶어 몸살 나거나 싸움을 부추기는 사람이 아닐까요? 지피지기 백전불태에서 하나 더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손자는 중국 사람입니다. 우리보다 한자 쓰는데 이골난 사람이지요. 그런 사람이 ‘적’을 몰라서 ‘피’라고 썼을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피’, 저쪽이라고 쓴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지 않을까요? 병법을 쓴 손자는 싸움꾼으로 싸우는 데 으뜸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외교, 나라 바깥에 있는 나라들과 이야기 나눠야 합니다. 이야기를 잘 나누는 길은 맞은쪽이 하는 얘기를 잘 들을 수 있는 귀와 맞은쪽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부드러운 말에서 나옵니다. 네가 나쁘다거나 싫다고 몰아붙여서는 그 뜻을 헤아릴 수도 내 뜻을 알릴 수도 없어요. 이러고도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을까요? 뜻이 맞지 않는 쪽과 어울리려면 덤덤해야 합니다. 맞은쪽이 싫은 소리를 하면서 이쪽을 깎아내리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받으며 부드럽게 뜻을 밝혀야 합니다. 이웃을 이기려고 들어도 이래야 하는데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며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잘 짚어야 합니다. 아울러 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진저리치는지 찬찬히 살펴야 하지요. 이게 첫발입니다. 살펴보니 머리에 뿔이 달린 줄 알았던 저 사람들도 우리처럼 굶으면 죽고 낳아준 부모가 있으며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아내와 아이들이 있구나. 하고 헤아릴 수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서서 서로 눈부처를 그리다 보면 뿌리칠 수 없는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나누다 보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까워지고, 이렇게 동무가 되어갑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도 사람 사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저 나라 사람들도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나라와 나라 사이도 사람과 사람 사이처럼 1:1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1:여럿 또는 여럿:여럿, 사이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한쪽으로 쏠리면 다른 쪽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제대로 보지 못하면 지피지기할 수 없잖아요. 중립, 가운데 서야 하는 까닭입니다. 어디와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이를 이어가는 것이 중립입니다.
짚어보면 평화는 그리 멀리 있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습니다. 서로 만나는 데서 싹트니까요. 평화, ‘지적지기’라고 하지 않고 ‘지피지기’라고 한 까닭을 곱씹는 데서 움 틔울 수 있습니다. 서로 만날 때 이제껏 가져온 좋지 않은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중립으로 가는 길입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고 여기는 마음이 사이를 좋게 만드는 첫걸음입니다. 작은 나라가 거칠게 몰아치는 세상 물결 한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입니다. 널뛰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줏대를 세워야 합니다. 나는 좋고 너는 나쁘고 나만 갖고 너는 갖지 못하며 나는 살고 너는 죽자는 사이에 평화가 깃들 리 없습니다. 이기려고 하는 사이에 깃들 평화는 없어요. 어느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은 가슴에 멍이 듭니다. 되갚아주려고 벼르고 또 벼르겠지요. 그래서는 평화가 올 수 없어요. 손자병법에서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이긴다는 말에 빠지지 않아야 하는 까닭입니다. 여기서 이긴다는 말에는 나만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너도 이긴다는 뜻이 담겨 있거든요. 모두가 이긴다는 말은 비긴다는 말입니다. 평화는 나와 너를 바라보는 눈길이 같아지는 사이에 들어섭니다.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 북한까지도 덤덤한 눈길로 바라보며 사이 맺고 이어가는 것이 중립이고, 중립하는 사이에 평화가 깃듭니다. 12월 12일 세계 중립의 날을 기려야 하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