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가만가만 살살 어우러져 그림책을 연주하다
꼬마평화도서관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아니라고요? 나라 안에 수십 개나 있는데… 모를 수 있어요. 너무 작아서 눈에 띄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럼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가만가만 살살 어우러지는 꼬마평화도서관이 어떤 곳인지 알려드릴게요. 꼬마평화도서관이라니까, ‘아이들이 평화를 알도록 꾸민 도서관이란 말일까?’ 하고 받아들이는 분이 적지 않은데, 아니에요. 서른 권 남짓한 책만으로도 문을 열 수 있는 배짱 좋은 도서관이라서 ‘꼬마’라고 했으나 아이와 어른이 어울려 누려요.
꼬마평화도서관은 2014년 12월 9일 보리출판사 1층 북카페에 처음 들어서고 나서 열 해 남짓한 데 이제까지 쉰다섯 곳에 문을 열었어요. 6·25 때 미 공군 폭격을 피해 쌍굴다리에 숨은 민간인들을 미 육군이 나흘 동안이나 박격포와 기관총을 쏘아대 수백 사람을 죽인 노근리 참사를 기리는 노근리 박물관을 비롯해 밥집, 꽃집, 책방, 향수 공방, 카센터, 다세대주택 현관, 유치원, 학교 복도 그리고 절과 교회에도 있어요.
“작으면 어때. 작디작아서 모래 틈에라도 끼어들 수 있으니 좋지 않아?” 하며 스스로 다독이며 내디딘 걸음걸이에요.
평화를 배우고 나누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문을 열 수 있는 꼬마평화도서관에선 다달이 적어도 한 번은 평화 책을 읽고 와서 느낌을 나누는 마당이 펼쳐져요. 그런데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지 못한 어려움과 맞닥뜨렸어요. 책을 미처 읽지 못한 사람이 멋쩍어하며 하나둘 빠져나가잖아요. ‘어쩌지?’ 생각하다가 ‘모여서 책을 소리 내어 읽고 느낌을 나누면 좋지 않을까?’ 하고 뜻을 모았어요. 앉은 자리에서 책을 읽고 느낌도 나눠야 하니 글밥이 적은 그림책이 ‘딱!’ 이었어요.
그렇게 그림책 연주마당이 생겼어요.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다 보니 ‘아, 사람이 악기로구나.’ 싶어서 평화 그림책 연주라고 했어요. 평화 그림책 연주는 연주하고 나서 느낌 나누기가 알맹이인데 어울리는 사람에 따라서 풀이가 달라져요. 틀림없이 같은 책을 봤는데 사람마다 아주 다른 얘기를 꺼내더라니까요.
연주하다 보니 그림책에는 아이들에게나 읽어주는 책이라고 하기엔 깊고 야릇한 세상이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나 보는 책이라며 회회 손사래 치던 어른들도 막상 그림책에 빠져들면 헤어나오지 못해요. 쉰 살에서 예순 살을 훌쩍 넘긴 남성들이 느낌을 나누면서 훌쩍거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깊이 묻혀 있는 줄도 몰랐던 어릴 적 마음을 길어 올리기도 하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짚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새기기도 해요. 그림책 연주마당에 온 지 석 달도 되지 않은 중년 남성이 그림책을 사서 가져온다니까요. 글쎄.
까닭이 뭘까요? 물리학자 김상욱은 <떨림과 울림>에서 우리는 늘 떤다고 얘기해요. 우리가 굳건히 서 있다고 믿는 피라미드도 떨고, 빛도 떨며 말하는 동안 공기도 떨고 세상은 온통 떨림으로 가득하다고요. 김상욱은 사람은 떨림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둘레에 있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고 해요. 어떤 수학 선생님에게 들었는데요.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고 끙끙대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문제를 읽어주기만 했는데 바로 풀더래요. 놀랍지요? 그 뒤로 저도 어려운 책을 읽다가 뜻을 알 수 없을 때는 소리 내어 읽어요. 그럼 바로 ‘아하!’ 하며 무릎을 칠 때가 적지 않아요. 뜻이 소리에 실려 떨림으로 바뀌고, 떨림이 울림이 되고, 울림이 어울림으로 바뀌면서 헤아림에 이르렀을까요?
그림책은 앉은 자리에서 두 번에 걸쳐 연주하는 것이 좋아요. 처음에는 그림을 가볍게 보며 말에 담긴 뜻을 새기면서 연주해요. 그렇게 말맛을 느끼고요. 두 번째엔 그림을 찬찬히 곱씹으면서 그림맛을 느껴야 해요. 그림을 놓치면 그림책을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없어요. 그림책은 보면 볼수록 새록새록 새로운 얘깃거리가 생겨나요. 같은 책이라도 연주를 거듭할수록 곰국처럼 맛이 깊이 우러난다는 말이에요. 이토록 다정한 이웃과 어울려 평화 그림책 연주를 거듭 이어오면서 새긴 평화는 ‘어울려 살림’이에요.
참, 올해는 ‘그림책의 해’래요. 우리, 언제 어울려서 그림책 연주 한 번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