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오며
지난 유월 스무하룻날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오래 머물지 않고 슬렁슬렁 거닐다 왔다. 그저 책과 책 짓는 이들 그리고 책 찾는 이들에게서 번지는 내음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둘러보며 '책과 책 짓는 이들, 책 찾는 이들은 서로 물들어 가는구나!' 하며 생각하다가 책 짓는 이들을 보기 부끄러웠다. 책 짓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표가 다 팔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사람 물결에 묻혀 사흘 동안 적지 아니 고단했으련만, 책에 눈길을 주는 이들에게 온 마음을 기울여 책 이야기를 나눠 주다니. 눈 아래 그늘이 짙게 내려앉은 채로 작가가 어떤 까닭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으며,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가다듬었는지 하는 따위를 자분자분 풀어냈다.
내 눈길이 책에 머물 때마다 놓칠세라 뜨겁게 맞이하는 이들을 보며 처음에는 ‘불황 탓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책을 아끼는 마음에서 솟구친 뜨거움이었다. '참다움이 고스란하구나' 생각하다가 떠올린 것이 서울국제도서전 말머리였다. "믿을 구석" 그래! 이토록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책이라면 읽는 사람들에게 너끈히 "믿을 구석"이 되어 주리라는 믿음이 섰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도서전을 가볍게 누리려던 내가 돌아보였다. 정신이 번쩍 들어 옷깃을 여미면서, 그러면 '나는?' 하는 물음이 일었다. 글을 짓는 나는 책을 읽는 분들에게 참으로 '믿을 구석'을 만들어 드렸다고 힘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까? 고개가 절로 가로저어졌다. 내가 지은 글이 옷 내놓기를 서두르려다가 풀어 헤친 앞여밈 한쪽에 단추 구멍을 뚫어놓고서 미처 단추도 달지 못하고 내놓은 옷과 같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옷을 만들어 팔았던 나는 갖가지 단추들과 수없이 어울렸다. 단추는 생김새가 달라도 이쪽과 저쪽을 꿰어 오롯이 하나 되도록 한다. 왼쪽과 오른쪽, 앞과 뒤, 아래와 위로 나뉜 걸 이어주며,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안에 있는 것을 보듬어 감싸 새어나가지 않도록 지켜준다. 옷을 옷답도록 마감하는 단추야말로 옷을 입는 우리에게 믿을 구석이다.
나도 떨어진 사이를 꿰어 오롯이 하나 되게 하여 읽는 분들에게 '믿을 구석' 하나쯤 만들어 드릴 단추 같은 글을 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