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갈 젖꼭지'로 만나는 위로... 이따금 하얀 거짓말도 따뜻해
요사이 '날아다니는 꼬마평화도서관'에 들어앉아서 내 연주를 기다리는 그림책이 있다. 그림책 <공갈 젖꼭지>다. '그림책 연주'란 그림책을 펴 보이면서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일컫는다.
날아다니는 꼬마평화도서관은 평화가 소복한 그림책이 머무는 가방으로, 밥집이나 카페 때로는 술집이나 공원 어디에서라도 그림책 연주를 펼칠 마련이 되어 있다.
그림책 <공갈 젖꼭지>는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를 펴낸 이순자 할머니 유고로 만든 그림책이다(이순자 글, 김혜정 그림).
쌍둥이 아기 둘이 나란히 누워 낮잠을 잔다. 창틈으로 들어와 웽웽거리며 날아다니는 모기가 잠자는 쌍둥이를 가만둘 리 없다. 쉬익 언니 볼에 내려앉은 모기가 따끔 쪽쪽 빨더니 동생 귓불에도 내려앉아 쪽쪽. 금세 귀가 불긋, 볼이 통통. 간질간질 따끔따끔, 으앙~ 동생이 먼저 깨어 운다.
할머니가 얼른 공갈 젖꼭지를 찾아 입에 물리니 동생은 바로 뚝! '공갈 젖꼭지가 또 어디에 있더라?'할머니가 공갈 젖꼭지를 하나 더 찾으려고 자리를 비운 사이, 이런 언니도 깼다.
으앙~!! 젖꼭지를 물고 있던 동생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엉금엉금 기어 다가가더니 어라, 제가 물고 있던 젖꼭지를 빼내어 언니에게 물린다. 울음을 그친 언니. 그런데 또 물린 데가 가려워 긁던 동생이 쓰라린지 또 울음을 터뜨리고. 이번에 언니가 제가 물고 있던 얼른 빼내어 동생에게 물려준다. 젖꼭지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아이들.
이토록 줄거리를 다 소개해도 괜찮으려나? 걱정이 스치지만, 그냥 두련다. 그림책은 그림과 함께 보면서 그 우러나는 울림을 맛봐야 제대로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기다움이 오롯한 <공갈 젖꼭지>라면 더욱 그렇다.
그림책 <공갈 젖꼭지>는 할머니가 손녀 쌍둥이를 보살피며 겪은 일이라 더욱 와닿는다. 갓난아이들이 서로 내 아픔 네 아픔을 보듬다니 놀랍다. 그러나 내 눈길은 '공갈 젖꼭지'에 머문다.
우는 아이 달래는 공갈 젖꼭지. 그런데 공갈 젖꼭지가 있을 리 없는 어른들이 살기 버거워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공갈 젖꼭지 노릇, 그림책이 할 수 있다.
마음 둘 곳 없어 하던 사람 앞에서 겪는 일에 걸맞은 그림책을 켜고 느낌 나누다 보면, 속이 트인다며 한숨 돌린다. 그림책이 없을 때, 다른 수는 없을까? 공갈 젖꼭지, 알고 보면 젖이 안 나오는 젖꼭지다. 공갈 젖꼭지로 우는 아이 달래기는 '하얀 거짓말'과 만난다.
어릴 적 아빠가 돌아가셔서 마음 둘 곳이 없다는 중년에게는,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면서 "아빠가 없는데도 다릿심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네가 믿음직스럽다"라고 할 것이라거나 "OO야! 내가 늘 내려다보는데 너 그만하면 멋져. 힘이 드니 그만 흔들렸으면 좋겠다고? 근데 살아있는 건 다 흔들려. 휘둘림이 문제인데 너는 휘둘리지는 않던데" 하며 엄지를 척 세워 보여줄 수도 있다.
여느 때라면 세 살배기도 웃을 얘기라도, 삶이 힘겨울 때는 일흔 살이 넘은 사람도 훌쩍거린다.
이런 얘기는 백지장 맞들 힘밖에 없는 나 같은 늙은이라도 너끈히 해낼 수 있다. 그러니 사랑에 목말라 하며 삶이 버겁다는 이를 만나면, '지금 아니면 언제? 내가 아니면 누가?' 하고 공갈 젖꼭지가 되어 나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