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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손 김밥

집김밥의 담박함

by 나노

중학교 때 소풍(?) 이후로 엄마 손 김밥은 맛-리스트에서 사라졌다. 일단 준비과정도 번거롭고 직접 싸서 자르기까지 순삭 하는 '한 입 쏙' 시간에 비해 투자 시간이 비효율적이다. 그리고 요즘 사 먹는 화려하고 요사한 김밥들이 많아져서 굳이 엄마를 고생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사 먹는 김밥이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래도 입맛 땡기는 대로 살 수는 없으니까!


요즘에,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하루 24시간이 너무 길고 많다는, 엄마의 취미 되찾아드리기를 하고 있다. 엄마 일기 쓰기 독려도 그 일환이고, 옛맛을 찾아서 요리 교실도 그중 하나이다. 처음에는 간단한 반찬을 해달라고 졸랐고, 한 두 달 정도 하다 보니 이제는 엄마가 먼저 물어보신다.


"이번 주에는 뭐가 먹고 싶어?"

사실 나는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메뉴를 말하고 맛있게 순삭 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 엄마에게 요리는 자부심이고 존재감이니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한다. 그래서 욕심 낸 메뉴가 '김밥'이었다.


요리를 시작하자마자 후회했다.

칠순 넘은 엄마한테 밑손질을 부탁할 수는 없어서 기본 세팅은 내 몫이었다. 엄마의 조언을 들으면서 하나씩 속재료를 챙겼고, 엄마는 김밥 말기할 때 '최종등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엄마의 중얼거림에 띠용했다.

"이거 김밥을 말 수 있을랑가 모르겠네.."


헐.

배테랑 울 엄마가 김밥 말기 앞에서 주저하다니! 허걱! 그리고 생각해 보니 엄마는 김밥을 진짜 몇십 년 만에 말아보는 것이었다. 그 푸념에 눈이 마주쳤고 한참을 웃었다. 이 상황이 어처구니도 없고 이해도 되어서.

응원을 받으면서 엄마는 투박한 손으로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역시 손맛이 어디 가겠는가?


우리는 투박하고 소박한 기본 김밥으로 배 터지게 점심을 먹었다. 왜 집 김밥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안 부른 것인지. 부른 배만큼 행복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아버지가 계셨으면 최소 한 줄 반은 거뜬히 드셨겠다는 생각을 했다.


'울 엄마 기 살리기 프로젝트'는 오늘도 진행 중이다.

엄마가 잘했던 것들을 떠올려 다시 일상으로 흡수하기! 앞으로는 또 뭘 찾아드려야 할지 고민이 많다.

일단 다음 주 음식은 또 뭘 해달라고 할까?

아하! 물국수! ㅎㅎ


이 배부른 고민도 참 감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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