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은 아무리 잘 지어도 창고에 쥐가 들어온다.
조막만 해서 그런가 어찌어찌 퇴치해 놓으면, 겨울에 다시 찾아오고, 또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올해도 어김이 없이 가을이 되니 찾아와서 쌀포대며 고구마며 다 입질을 해놓았다. 특히 올해는 엄마 혼자 농사를 지은 결과물이라 더 괘씸했다.
마을 어른들은 우리집 길냥이들을 창고에 넣어 쥐를 잡게 하라시지만, 엄마와 나는 알고 있다. 우리집 길냥이 얼룩이는 살생을 못 한다. 아니 안 한다. 혼자 도라지 뿌리를 던지면서 놀고 있는 아이가 무슨 쥐를 잡을까? 살짝 욕심이 안 난 것은 아니지만, 다른 길냥이만 봐도 도망가는 덜썩 큰 녀석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내린 결론! 창고 보수공사를 하고, 이미 들어와 살고 있던 쥐는 어쩔 수 없이 퇴치하기! 끈끈이로. 우리 엄마는 끈끈이로 쥐를 잡는 것도 싫고, 무서워하시지만 뾰족한 방책이 없었다.
끈끈이를 아시는지?
겨울철 끈끈이는 찰떡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장판에 올려놓아 유들유들하게 한 다음, 손과 발을 다 동원해서 겨우 벌렸다. 이 개봉의 과정도 쉽지 않았다. 거기까지 내 역할이었고, 다음에 엄마가 창고에 가져다 놓기로 했다. 힘쓰는 일은 해드렸으니 당연히 잘 끝났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우리 엄마는 역시 남다르시다.
저녁에 전화가 왔다.
"아이고~ 아주 큰일이 났어. 내가 못살아. 지가 왜 거기 붙어 버려~"
앞뒤 상황은 다 자르고 현재 본인의 감정만 쏟아내는 화법을 구사하셔서, 도무지 상황 파악이 안 되었다. 중요한 것은 큰일!! 순간 긴장감이 솟아오르고 집으로 돌격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그래도 함께 흥분할 수 없으니 차근히 물었다.
"뭐가 어디에 붙었는데?"
"아니 쥐 거시기에 고양이가~"
여기까지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끈끈이는 창고 있고, 우리 얼룩이는 평상에서 사는데? 둘이 어떻게 만나지? 수수께끼가 따로 없다.
"얼룩이가 왜 끈끈이에 붙어?"
"아니, 내가 창고에 가지고 가는데, 창고문 여는 사이에 찰싹 붙었어. 죽는다고 도망가서 소리치고 쫓아가서 겨우 끈끈이만 가위로 잘라냈더니, 옆에 오지도 않아...."
유레카!
이제 이해되었다.
1. 어제 떼어 놓은 쥐 끈끈이를 들고 창고로 향한다.
2. 언제나처럼 엄마 발 밑에 얼룩이가 따라간다.
3. 창고 문을 열려고 살짝 낮게 들고 있던 끈끈이에 부비부비를 하려던 얼룩이가 철썩 들러붙었다.
4. 얼룩이가 놀래서 도망쳤다.
5. 엄마가 끈끈이를 뒤집어쓰고 뛰는 얼룩이를 보고 놀라서 따라갔다.
6. 고양이는 엄마가 소리치고 따라오니 더 도망갔고, 둘이 추격전 끝에 결국 엄마 손에 붙잡혔다.
7. 엄마가 고양이를 붙잡고 가위로 끈끈이를 자르니, 고양이는 저를 해코지 하는 줄 알고 난리를 쳤다.
8. 고양이가 가출했다.
이 상황이었다. 웃음도 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그것이 엄마에게 '가장 큰일'인 상황이 다행이기도 했다. 차분히 엄마를 달래면서, 고양이가 놀라서 그렇고 밥 먹을 곳이 없으니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달래 보았다. 지금 엄마에게 가장 큰일은 고양이 가출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난 확신했다. 얼룩이는 되돌아온다. 맛난 다이어트 사료와 추르, 낚싯대 놀잇감, 포근한 잠자리를 포기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다음날 집에 갔더니, 얼룩이는 나를 보자마자 끈끈이가 묻어 발을 보여주고 탈탈탈 털었다. 분명 식빵자세로 편히 쉬고 있다가, 마치 역성을 들어달라는 것처럼. 어찌나 귀엽던지. 그리고 내려와서 궁둥이에 붙어 있는 끈끈이 흔적도 보여준다. 엄마를 등지고 앉아서.
미안해서 얼굴을 못 드는 엄마가 더 귀엽다.
깔깔깔 웃고 먼저 얼룩이 기분부터 풀어주었다. 낚싯대 하나면 충분하니까. 그리고 추르로 보상.
며칠이 안 되어서 얼룩이가 끈끈이를 다 떼어냈다. 역시 고양이는 가꾸기에 진심인 것 같다.
다시 잘생긴 얼룩이로 복귀!
당연히 엄마 껌딱지 모드도 복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