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先生)이라는 것에 대하여

풍년 농사를 기원하며

by 나노

2024년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떠나보낸 아이들이 찾아왔다. 국립은 6년 기한이 있어서 지역을 떠돌아야 하는데, 전임지에서 3년을 품었던 아이들이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세 아이가 오로지 나를 보겠다며 와주었다. 이미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찾아간 레스토랑 앞에서 심장이 떨렸다. 세 녀석 중에 한 명은 3년 만에 보는 상황이라. 어떤 모습의 성인이 되었을까 기대도 되고, 성인의 시선에서 나를 다시 보면 행여 실망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앞섰다. 그런데 잠시 후 가게 문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고는, 함박웃음이 터졌다. 뭐 이거 저거 생각할 필요도 없이 좋았다. 반가웠고 다시 만나 기뻤고, 볼살이 통통하게 오른 모습을 보니 귀여웠다. 떨림과 두려움이 순식간에 환한 기쁨이 되었다.

행복!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큰 꿈을 키우며 편입 시험을 본 녀석, 휴학을 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녀석, 무던히 특수 교육의 길을 가고 있는 녀석까지. 그때 모습 그대로 이쁘고 순수하고 선했다. 야자 하다 혼난 이야기, 손가락 다쳤던 이야기, 체육대회, 수학여행, 독감으로 입원했던 이야기...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 보니 레스토랑이 온통 우리 이야기로 가득했다. 독점적인 수다력으로 다소 민폐를 끼쳤지만, 우리의 반가움을 다스릴 수는 없었다. 2시간 넘게 왁자지껄하게 마음을 나누다 보니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어 버렸다. 아직 할 말이 한가득인데...

서로 아쉬움을 뚝뚝 흘리며 선물 증정식을 했다. 나는 2026년 알차게 보내라고 나태주 님의 일력을, 아이들은 내가 좋아했던 누룽지, 그 지역 막걸리 두 병, 편지, 뜨개질 꽃받침, 꽃까지. 준비해 간 마음보다 돌려받은 마음이 훨씬 커서 미안하기까지 했다. 예전 수업시간에 했던 작은 대화까지 하나도 잊지 않았다. 울 아부지 살아계실 때, 그 지역 막걸리를 좋아하셔서 주말마다 세 병씩 사다 드렸는데... 그것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눈물이 울컥 나려 했지만 꾹 참았다. 또 한 녀석은 우리 엄마 드리라고 얼굴 팩을 준비해 왔다. 무슨 이런 맹목적인 사랑이 있을까?

편지에 꾹꾹 눌러써놓은 아이들의 삶이 묵직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기특하게 다들 직시하며 잘 지내고 있어 보였다. 22살 얼마나 막연하고 몽롱한 나이던가? 불확실성이 불안을 자극하고 불행을 이끄는, 미완성의 골짜기를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염려하는 내 마음을 달래주려고 짧은 엽서까지 넣어 속내를 대신하면서... 기특하고 대견했다.


특수 교사를 준비하는 아이에게는 잔소리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현실이 정말 만만하지 않음을. 방학 때 봉사활동을 하면서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보고 결심하기를. 우리가 만났던 통합반 친구들은 의사소통이 다 되었던 친구들이었고, 그 이상의 인내와 헌신과 노력이 요구됨을 강조 강조했다. 물론 이 녀석은 특수교사의 자질이 충분하다. 유쾌하고 밝은 성격에 무던함, 세심한 배려와 이타성까지. 이 아이의 진로선택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현장에서 우리가 만나는 현실이 녹록지 않아서 예방주사를 꼼꼼하게 놓아주는 것이지. 마지막에는 교사로 사는 삶의 행복한 순간도 슬쩍 들려주었다. 이렇게 마음 따뜻한 아이가 현장에 와준다면 더할 것 없이 든든하고 좋을 것이다. 그래도 난 이 아이를 먼저 생각하기에 다양한 경우의 수는 놓아줘야 하니.


올해 담임은 평타였다. 첫날부터 쉽지 않았던 반이었고, 결국 한 아이가 자퇴를 했고, 중간에 다른 아이가 전학을 왔다. 종업식에 초코파이 3개를 쌓아서 노래해 준 아이들이 있었고, 교무실까지 와서 감사 인사를 한 아이, 손 편지를 선물한 아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29명이 모두 안전하게 고2로 올라갈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리고 올해는 담임을 한 해 쉬어 가기로 결정을 했다. 항상 담임으로 풍년 농사를 기원하지만, 농사가 어디 내 뜻대로 되던가? 굶지 않을 정도의 소출이 있었으면 충분하지.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농자마저 못 짓게 되니 마음이 무겁다.

이럴 때 찾아온 '둥지 떠난 새'들의 방문이 얼마나 반갑던지. 집으로 돌아와 다시 보아도 참. 어디 이런 행복이 있을까?

선생 이런 맛에 하는 것이지.

5년 전의 농사가 오늘 결실을 보여주었다.

잘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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