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의 서원
2021년 12월 18일 사촌 동생의 결혼식.
막내 사촌 동생의 결혼은 나에게도 좀 묘한 날이었다.
쳇! 막둥이까지 가버리다니...
결혼은 나에게 두려운 일이었다.
고3 때 첫 조카를 선물한 큰오빠의 혼전임신과 결혼은 충격이었다. 사랑하면 온몸이 타도 좋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현실적인 타격이었다. 그 뒤에 우는 가족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충격의 배신.
큰오빠의 혼전임신은 아빠의 심장에 칼을 꽂았고, 엄마의 인생을 말았으며, 작은 아빠의 희망을 꺾어버린 사건이었다. 자식과 조카 교육에 온 생을 투자한 어른의 삶을 배신한 일이었다. 그리고 절망적인 결혼생활과 처절한 이혼을 통해, 나에게 사랑은 자신과 온 가족을 괴롭히는 행위로 입력되었다. 작은 사례를 일반화한 오류라고 할 수 있지만, 그 한 사례가 내 인생의 전부였으니...
당연한 오작동이었다.
주변에 설렘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의 솔직함이, 나에게는 공포였다. 그러다 보니 결혼은 상상도 못 할 무서운 일이었다. 나의 그런 유예를 보는 것이 우리 부모님께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결혼을 권하지는 못했다. 큰오빠의 이혼. 그 사건으로 조카를 전담한 것이 부모님과 나, 그리고 우리 언니였기에...
막둥이 사촌동생의 결혼은 그래서 더 복잡한 감정이 닿았던 일이었다. 그때 엄마는 관절 수술 이후 요양병원에서 재활 중이셨다. 결혼식에는 아빠와 언니, 나, 큰오빠와 조카들이 함께 참석했다. 다 큰 조카들은 축의금 받는 일을 도왔고, 언니와 나는 울 아부지를 지켰다. 지팡이를 짚어야 움직일 수 있는 아부지를 살폈다. 행여나 사람 많은 곳에서 발길에 차일까 봐 양 옆에 서서 오롯하게.
아부지는 도촬 하는 막둥이를 보면, 호를 그리며 웃으셨다. 그냥 뭘 하든 항상 웃으셨다. 이뻐서.
그런데 결혼식이 시작하자 아부지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 아닌가? 병원에 있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라기에는 안 맞는... 뭔가 복잡한 표정의?
그래서 여쭸다.
"아빠 어디 아파?"
아부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셨다. 그럼 어디 아픈 것은 아니데. 표정이 영 안 좋으셨다. 아주 괴로워 보이는? 평소에도 조카를 자식만큼 이뻐하신 분이 조카 결혼식에 괴로울 일이 뭐가 있을까? 설마.
"아빠, 아빠도 신부 입장 하고 싶어?"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물었더니, 세상에나 고개를 끄덕이시는 것이 아니가.
하! 세상에나.
난 지금까지 아버지가 신부입장을 하고 싶어 하는 지를 몰랐다. 세상에...
아버지도 딸의 결혼을 보고 싶었구나.
세상에.
내 상처에 집중해서 아버지의 아쉬움을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 뒤로 난 사위 될 후보를 열심히 찾았다. 우리 부모에게 잘할 사람을... 근데 없더라.
그렇게 4년.
난 울 아부지의 소원을 이뤄드리지 못했다.
그까짓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그 대단한 신부입장을...
아직도 후회스럽다.
3년 전 그 사람과 그냥 결혼할 것을.
최소한 우리 아부지가 마음 편하게 떠나셨을 텐데..
그 신부입장.
그것을 못 해 드린 것이 아직도 뼈에 사무친다.
장례식 때 친구에게 말했던 것처럼
"돌아오더라도 그냥 갈 것을..."
참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이제는 아부지와 함께하는 신부입장은 영영 불가능하다.
남들은 효녀라 하지만, 난 세상 불효녀다.
그 결혼 한 번 못한.
신부입장 한 번을 못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