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멜은 껌이 아니에요.
사탕도 아니지요.
사탕은 입에서 녹여내면 그 단맛이 목으로 넘어가요.
하지만 사탕은 사라질 때까지 딱딱함을 유지해요.
성질 급하게 우걱우걱 깨뜨려도
딱딱한 사탕의 파편들은 그대로 인채
달콤함이 입안 가득 흘러나오죠.
껌도 단물은 나와요.
시간이 지나 단물이 빠진 껌은 마치 고무처럼 단단해져요.
뱉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뎌지죠.
가끔 꿀꺽 삼키기도 했어요, 아니 종종.
"뱃속에 가득 찬 고무처럼 단단해진 껌들은
다 어디로 갈까?"
핸드폰은커녕, 낮에는 티브이도 나오지도 않았던 시절
무료함이 햇살만큼 가득했던 마루 소파에서
학교 다녀와 저녁 먹는 시간까지 뒹굴며
뱃속 껌의 행방을 궁금해하다가
캐러멜을 만났어요.
캐러멜은 달랐어요.
단물이 입안 가득 생기고 껌처럼 잠시 질겅댈 수도 있지요.
뱃속 가득 찰 캐러멜 시체를 염려하지 않으며
작은 상자 속 정사각형 캐러멜을 하나씩 꺼내어 껍질을 수도 없이 까
작은 입으로 조물조물 씹으며
심심한 오후를 심심하지 않게 버텨나갔죠.
아무도 읽지 않은 듯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던 거실 책꽂이
세계명작 전집을 한 권 한 권 꺼내 읽으며
입안 가득 물은 캐러멜은
달콤하기 그지없었어요.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
오후의 나른함은 사라진 시절들
껌과 사탕, 캐러멜의 차이 따위를 음미하며
뒹굴던 시절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피로와 할 일로 가득한 하루가 먼지처럼 쌓였죠.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 흘러
오랜만에 햇살 가득한 오후의 나른함은 다시 찾아왔지만
핸드폰이 장착된 오른 팔목이 시큰될 뿐.
더 맛있는 초콜릿이 찬장에 가득하지만
먹고 싶지 않아요.
먹어서도 안된다고 하네요.
껌과 사탕, 캐러멜의 차이조차 관조하지 않는 날들이
뱃속 껌처럼 수북이 쌓여가고...
어느덧 맞이한 11월 햇살 좋은 오후,
베란다 창밖 멀리 지나가는 할머니는...
(할머니가 할머니를 할머니라고 불러도 되는 것이겠지요?)
창밖 멀리 지나가는 여인은, 아니 저 사람은
쌓여가는 나른한 오후를 무엇으로 감탄하며 보낼까요?
캐러멜은 달라요.
그 시절의 캐러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