傲氣가 부른 誤記
갑자기 제가 안 어울리게 화장품 이야기하고,
한자까지 써서 놀라신 분 있으신가요? ^^
일단, 한자부터 말씀 올리면,
별 것 아닙니다.
소제목에 있는 한자 두 개 둘 다 ‘오기’로 읽습니다.
앞의 오기는 ‘쓸데없이 오기 부린다’ 할 때 오기이고,
뒤의 오기는 잘못 적었음을 뜻합니다.
화장품 이야기는 왜 꺼냈는지는,
아래 화장품 브랜드 로고 변경 전과 후를 한번 보시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떠신가요?
당연히 더 좋으려고 바꾼 것일 텐데 기존보다 더 좋아졌나요?
엇갈리는 반응은 있는데,
대체적으로 이전이 낫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고,
바뀐 버전이 낫다는 의견은 소수입니다.
이전 버전에서는 잘 몰랐는데,
바뀐 버전에서 대문자와 소문자를 잘못 섞어 써서,
Inn Is Free.
여관은 무료입니다.
라는 비아냥까지 받고 있죠.
기업에게, 특히, b2c (business to consumer) base의 다수 대중을 상대로 하는 화장품 사업의 경우, Brand Identity는 다른 b2b 기업보다 참 중요한데요. (BI)
대표적 사례인 코카콜라의 강력한 BI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되죠. 검정색 음료에 빨간색 테두리만 있으면, 콜라구나 하지 않습니까. 하얀 곰을 광고에 등장시켜서 깨끗한 이미지를 만들려고도 하구요.
그런데, 이 중요한 BI를 갖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 브랜드를 갖고 있는 굴지의 대기업 화장품 회사에서 말이죠.
그리고, 화장품이라면 로션 하나 바르는 제가 오늘은 왜 기다리는 소개팅 이야기는 하지 않고, 화장품 회사 로고 이야기를 꺼낸 걸까요?
한번 썰을 풀어 보겠습니다.
아마 회사 내부의 의견을 골고루 수렴해 보고,
외부 소비자의 의견까지 잘 수렴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누군가 미사여구로 포장하며 들이민,
새 브랜드 로고를 보고,
어떤 사람이 아래와 같이 말하고,
그것이 수용되어 변경이 보류되었다면요.
“이전 것이 더 나은데요.
바꾸려고 하는 디자인 이상해요.
바꾸려는 변화의 시도는 좋은데, 이럴 거면 그냥 기존 것으로 그냥 두고요. 좀 더 좋은 로고가 나올 때까지 노력하고 내외부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우리 화장품 주 고객층 100분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입니다. 80 프로가 이전 로고가 더 낫다고 하시네요.“
그렇다면, 왜 할 말은 한다는 요즘 사람들이 대놓고 이런 말을 하지 못했을까요?
누가 봐도 이상한 변화를 보고, 좋지 않은 평이 잇따를 것이 눈에 보였을 겁니다. 브랜드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 쉽게 예측되었겠죠. 당연히 장단기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구요.
그러지 못한 이유는,
아마 이 브랜드 로고를 민 사람 때문이었을 겁니다.
누구로 예상되는지도 언론 등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보다는 왜 이런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정부에서, 기업에서, 여타 조직 등에서 일어나는지가 이 글이 다루려는 바이기 때문에 그냥 ‘높은 사람’이라고만 표현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디자인 팀의 말단 사원이 이런 로고를 가져왔으면,
옛날에 성격 급한 팀장이었으면 보는 앞에서 찢어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이전보다 뭐가 나은 거냐?
납득이 되게 나와 모두에게 설명 해봐라.
난 도저히 모르겠다.
니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모르겠어서 그러니 제발 부탁할 테니 제대로 설명 좀 해봐라.“
이렇게 정신 차리라고 내질렀을 수도 있죠.
요즘 직장 내 갑질에 대한 처벌로, 교육도 하고 징계도 해서, 조금이나마 바뀐 회사 문화에서는,
“노력한 건 좋은데, 트렌드에 맞지도 않고, 시각적으로도 이전 것이 나은 것 같아.
(외부 고객들의 반응 조사도 시간 낭비, 돈 낭비지만 한번 해보자.)
거봐, 반응도 별로지 않니. 좀 더 노력해 줘. “
이렇게 좋게 이야기하고 넘어갔을 겁니다.
하지만, 이 디자인을 민 상대가 달랐던 거죠.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닌데요.
누가 봐도 이건 좀 이상한데요.“
이 말이 나오지 않는 상대였을 겁니다.
그분은,
이 디자인이 좋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설명했을 겁니다.
이 디자인을 론칭하며 자신이 리드했다고,
변화를 주도했다고 말하려는 의욕이 가득 찬 분이었을 겁니다.
나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고, 젊은 누군가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 앞에서 회의 때 누구도,
이건 아니라고 말을 하지 못 했을 겁니다.
“BI를 바꾸는 건 기업 이미지에 큰 영향을 주고, 전국 매장과 제품 등 로고를 바꿔서 큰 비용이 들여 변경시켜야 하니 좀 더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결정하시면 어떨까요?”
라는 말조차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눈치 보는 침묵 속에,
“왜 다들 말이 없어요?
의견들을 말씀해 보세요. “
라는 높은 사람의 기대 섞인 재촉에,
먹고 살아야 하니, 잘 보이기 위해,
“좋은데요.
우리 회사만의 컬러가 살아있고, 변화를 표방하는 우리 회사의 방향성과 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라고 적극적으로 주인에게 예쁨을 받기 위해,
멍멍하며 달려드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저도 직장인으로 오랜 세월을 보내다 보니 그런 모습도, 사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렇게 가는 겁니다.
다들 동의하신거죠?“
(이 높은 분들은 본인이 다 해놓고, 꼭 동의라는 면책을 마지막에 깔아둡니다. 만일 대비해서.
“내가 미는건데, 너희들도 ok 한거야.
잘못되었을 때 나한테 뭐라고 하지마.“
이런 걸 보면 이런 면에선 참 철두철미한데...)
이 결정을 두고,
회의가 끝나고 밖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혹은 저녁에 술을 마시며,
“X 같지 않냐?
이건 진짜 아닌데, 하아.“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근데, 너 아까 웃음 잘 참더라.
진짜 되지도 않는 것 들이미는데 나도 웃음 참느라 죽는 줄.“
하며 이번엔 맘껏 웃으며, 어쩌겠냐 하며 넘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내 회사도 아니고, 월급 받고 시키는 일 하는 처지에.“
이런 넋두리와 함께요.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할까요?
그 높은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기 싫어서일 겁니다.
잔뜩 벼르고 한번 해보겠다는 의욕에 불타 있는 사람에게, 이건 아니다라고 했다간, 목이 남아나지 않겠죠.
만일 그 높은 사람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데,
오만하며, 자기만 알며 오기를 부린다면 더하겠죠.
“아니, 왜 해보지도 않고 이게 안된다고 하죠?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왜 여기 이러고 있어요.
한번 설명을 해보시던지, 근거를 가져와 보세요.“
라는 압박을 견뎌낼 수가 없겠죠.
일어날 일이 뻔히 보이긴 하지만,
아직 일어나진 않았으니 명확한 근거를 가져오긴 생각보다 힘들 겁니다. 과거 사례로 말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거고요.
“그것과 이건 달라요.”
한마디에 무너질 수 있거든요.
평가, 승진, 연봉, 보직 등에서 돌아올 ‘인사상 불이익’이 겁나서 쉽지 않았을 겁니다.
자기 성질에 못 이겨 뱉었다가 곤란해지거나 심지어 퇴사한 사람을 이미 보았을 수도 있구요. 당장의 생계, 카드값, 월세, 생활비, 학원비, 대출이자 등이, 해야 할 말을 막았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런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런 의견이 받아들여지면서, 불이익이 없다면.
나중에 성과에 따라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건전한 문화와 풍토가 잡혀 있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땅콩 회항이 ‘오기’가 발현되어 발생한 국제적 망신이자 지금도 회자되는 사건이었죠.
언론에 많이 보도된 대로, 계속 그렇게 해왔을 거고, 이게 정말 그래선 안 되는 곳에서조차 발생해서 난리가 났었을 겁니다.
이 화장품 로고사태도 비슷한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럼 제가 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속단할 수 있는 걸까요?
그 회장품 회사에 다녀본 적도 없고, 그 높은 사람과 밑의 직원조차 만나본 적도 없는데요.
그것은 사실,
우리 한국 회사의 고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역사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이야기하기엔 글이 너무 길어집니다. 기업명과 실명을 거론하자니 저도 평범한 직장인이라 부담이 됩니다.
그저 제가 직간접으로 경험한 무수한 사례 중 한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한 번은 A국에서 진행할 사업과 관련해서, 주요 이슈 사항을 담당 임원에게 보고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직원 K가 나름대로 열심히 분석하고 조사해서 어떤 이슈에 대해 합리적인 대안을 근거와 함께 설명했습니다.
그 임원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게 아니야.”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의아했습니다.
K의 설명이 당연한 practice고, 합리적인 내용과 근거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죠.
아, 역시 임원과 직원의 차이를 보여주시려나 보다.
뭔가 큰 뜻이 있겠구나.
하며, 다음 설명을 기다리진 않았습니다.
그 임원이 실력은 부족하고 아부로 자리를 차지한, 소위 낙하산이시라 이상한 소리를 할 것이 분명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본인이 오래 주재원을 했던 다른 나라에서 있던 일을 그야말로 주구장창 말씀 하십니다.
이 분은 그 나라에서의 경험 외에는, 다른 나라에서의 경험이 거의 없어서, 그냥 입만 열면 그 나라 이야기만 하셨습니다.
하아.
금방 끝날 회의가 길어질 눈치가 보였고,
직원들 간의 교차하는 눈빛 속에 한결같은 마음이 엿보였습니다.
‘어떡하지.
말을 하자니, 나중에 뒤끝 있을 것 같고.
말을 해도 들어먹지 않을 게 분명한데, 그냥 일찍 끝나게 내버려 둬. 어차피 내 일도 아닌데.
아니야.
그래도 내가 몸 담고 있는 회사고 조직인데,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나중에 회사에 문제 생기면 어떡해. 나 아직 이 회사 더 다녀야 하는데.‘
결국, M 직원이 먼저 못 참고,
K 직원의 말이 맞다.
보통의 practice도 그렇고,
그 나라에 자기가 근무해 봤는데, 어떤 법 조항과 case를 보면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런 말이 따라왔습니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해.
내가 맞다면 맞는 거지. 건방지게.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
허허,
논리와 근거로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짬밥과 직위로 누르는 다음 단계가 당연히 나왔죠.
이런 걸 보고, 안 봐도 비디오라고 하죠.
이건 아니다 싶고, 이러다 이 이슈가 나중에 터지면 큰 일 나겠다 싶어, 그 자리에 있는 다른 모든 직원들이 한 마디씩 K 직원의 말이 맞다며, 대응 방안에 대해 재고해 달라고 말씀을 돌아가며 드렸습니다.
그래도 이 분은 ‘오기’를 부리며, 자신의 한정된 경험만 계속 말했습니다.
전혀 상대방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던, 의사결정권자이자 평가자 앞에서, 건전한 토론은 이미 물 건너갔죠.
‘내가 있었던 나라에서는 말이야.’
‘당신들은 뭘 몰라.’
만 판쳤습니다.
그 임원 분 말씀대로 일이 진행되었고,
나중에 결국 그 문제가 터졌습니다.
그 임원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아이구, 내가 그때 여러분들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미안해. 내가 책임질게.
그리고, 앞으로는 여러분들 말에 귀 기울이고,
내 말만 고집하지 않을 테니, 잘 좀 도와줘.“
이랬을까요?
예상하시다시피,
“거봐 내가 뭐랬어.
이거 이렇게 터진다고 했잖아.
담당자가 이런 것도 제대로 확인하고 대응할 준비도 안 하고. 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 엉!“
이라고 했습니다.
우와.
면피는 정말 요즘 속된 말로 ‘쩔어’ 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지켜보고 이야기 했는데,
하는 그 꼴을 보고,
저는 무조건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담당자 의견입니다’ 하고 여러 사람 e mail에 넣어서 근거를 남겨둡니다.
나중에 ‘못 봤어’ 하고 잡아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방어책은 남겨두는 거죠.
결국 K는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무능력자로 찍혀 얼마 못 가 회사를 떠났습니다. 같이 반발했던 M 직원도 미운 털이 박혀 기를 못 펴다가 그 다음으로 나갔습니다. 유능한 직원들이었는데 무척 안타깝더군요.
그 임원분은 어떻게 되었냐구요?
다음 편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러면 아마 맞아 죽겠죠? ㅎㅎㅎ
그 분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무능력으로 문제가 너무 많이 발생해서 임원에서 잘렸습니다.
그러면 보통 그만두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분은 직원으로라도 회사에 남게 해 달라.
다만, 본사에서 평직원으로 근무하기 쪽팔리니 자기가 오래 있었던 지사에서 몇 년 더 근무하게 해달라고 윗분들께 돌아가며 저녁마다 술 따르며 빌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지사에서 지사 사람들 불편하게 하면서 몇 년을 더 버티셨습니다.
속된 말로 회사에 빨대를 꽂고, 피를 뽑아 먹은 거죠.
그분 입장에선 성공한 인생일지 몰라도,
회사와 다른 직원들에겐 피해였습니다.
원래도 그런 분이셨고,
돌이켜 보면, 당연히 박수칠 때 떠나기는 커녕,
제발 나가라고 할 때도 못 나가겠다고 버티던,
그런 분과 그렇게 통하지도 않을 실랑이를 했던 겁니다.
한 가지만 이야기했는데, 이 정도인데,
그동안 제가 겪은 분들 이야기 하려면 밤을 새야 할 것 같네요. 또, 책 한 권 써야 하나요 ㅎㅎ
당부의 말씀까지 올리며, 여기서 마무리하자면,
저는 화장품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경쟁사에 근무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이 회사 주식도 없고, 직원도 아니죠.
굳이 관련이 있다면, 저희 고모가 이 회사 화장품을 파는 장사를 하셔서, 수분 크림 쓰는 정도의 미미한 관계입니다.
즉, 이 회사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조직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자성했으면 하는 차원에서 말씀 드립니다. 4차 산업 시대에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여러 이유 중에, 이 ‘오기’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발도상국 시절에, 단순한 사업에서 밀어붙일 때 주효하기도 했던 카리스마가, 잘못 고착화되고 시대에 맞지 않게 발현될 때 문제가 되곤 합니다. 또한, 몇 번의 성공으로 독선이 되어, 남의 말은 듣지 않고 무조건 내가 맞다는 아집이 되어 변화한 시대에 문제를 더 크게 만들기도 하죠.
그런 점이 개선되어, 세계 경제 대국 10위권에 머물고 있고, 여러 위기에서 쉽지 않은 우리나라가,
합리적이고 개방적이며, 경쟁력 있는 전 세계 최고의 회사와 정부 그리고 여타 조직들이 모인 나라로 거듭나서, G2로 잘 나가는 국가들 이상으로 멋진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오늘도 화장품 회사 제품 광고가 아니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제 글 읽어주셔서 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