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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Mar 08. 2023

기분 좋은 하루

어제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하던 일도 잘 풀려가고, 새로운 기회도 잘 진행되고 있다. 예기치 않은 보상도 받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반가웠다.


그래서 그런지 아님, 푹 잘 자고, 아침에 시원하게 볼 일도 잘 봐서 그런지,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사실 아침에 이것저것 하다 보니 늦게 나왔다. 서둘러 나왔는데도 평소보다 늦었고, 지하철까지 가는 버스마저 늦게 왔다.


노심초사할 만도 한데, 마음 속엔,

‘그냥 날 죽여라. 늦으면 휴가 내면 되지 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아침에 중요한 회의나 보고 일정도 없었다.

버스는 늦었는데, 지하철은 거의 딱 맞게 왔다.


지옥철에 사람이 다른 날보다 오늘 유난히 많은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사람들 틈에 끼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데도, 아침부터 나처럼 다들 바쁘고 고생들 많으시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눈을 감고, 오늘 뭐 할까 생각하다 보니, 환승이 가능한 역에서 사람들이 쭉 빠져서 내린다. 갑자기 한산해진다.


휴우~ 이제 좀 살 것 같네.


그런데, 9호선으로 갈아타려고 내리는 분들을 보니,

난 이제부터 편하게 가겠지만, 저분들은 계속 고생하시겠네 하는, 쓸데없는 남 걱정까지 한다.


지하철에서 내려서도 양방향 지하철이 동시에 도착해서 인파에 몰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늦은 김에 조금 뛰어서 계단을 올랐더니, 그 많은 사람들은 뒤에 따라오고 있고, 내가 있는 에스컬레이터엔 이상할 정도로 한산했다.


뛴 김에 좀 더 뛰었다.

회사 다닌 덕분에 아침 조깅을 한다. 요즘 출퇴근할 땐 편하게 운동화로 다녔는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개운하다.

당연히 지각이라 생각해서 포기했는데, 뛰었더니 지각을 면했다. 쥐새끼처럼 안 보이게, 하지만 실제로는 다 보이게 구부정한 자세로 출근하지 않고, 당당히 어깨을 펴고 사무실로 입성했다. 제시간에 출근한 것이 무슨 그리 대단한 거라고. 그래도 기분은 좋다.


며칠 전엔 비슷한 상황에선 어쩔 수 없이 뛰었는데, 그땐 너무 힘들고 그날따라 왜 그렇게 회사는 멀고도 먼지.

지하철에서 사람에 치이고, 지각할까 봐 노심초사하며 뛰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얼마나 회사를 더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 했는데.


같은 상황에, 다른 마음 자세 하나로 이렇게 달라진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하다.





자리에 앉아 이메일을 확인하고 회신하고 있는데, 소소한 사내 이벤트에서 당첨되었다는 메일이 왔다.

야호! 이런 사소한 일조차 왜 이렇게 기쁜지 모르겠다. 사실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 안 되지만, 그것마저도 땅에 떨어져 있어 주우면 되는 것도 아니고, 이벤트 응모하며 들인 내 수고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니 값지다.


한 선배가 어제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해장 겸 밥을 먹으러 같이 가자고 한다. 마침 속도 잘 비우고 뛰었더니 배가 고파서 그러자고 따라갔다. 김밥에, 오뎅에, 숭늉을 주는데 맛있었다.


어제 술 때문에 힘들어하며, 구겨진 인상으로 잘 먹지도 못하는 선배를 앞에 두고,


‘아, 어제 술 퍼마시고, 헛돈 쓰고 저렇게 힘들어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술은 적이자 독이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속도 편하고, 배 고프다는 건 장 상태가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떡볶이를 보니 먹고 싶긴 한데, 추가로 시키기엔 많아서 조금만 주실 수 있냐고, 웃으며 아주머니께 말씀을 드리니 몇 조각 김밥 위에 얹어주신다.

역시 사람은 잘 생기고 봐야 한다. (죄송합니다 ;;)


이런 감사한 정과 인심이라니.


어떤 사람들은 99가지를 해줘도 한 가지를 해주지 않아서 100을 만들지 못했다고 짜증을 낸다고 한다. 그에 반해, 난 먹을 때 부서지는 김밥마저 그럴 수 있고, 떡볶이와 먹으니 맛있을 뿐이다.


숭늉과 국물을 먹고, 속이 조금 풀렸는지 선배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따뜻한 꿀차를 한잔 마시니 한결 더 나아진다.


사무실로 들어오며 선배가 한 아저씨의 출장 사실일 알려줬다.


‘아 그렇지. 그 분이 오늘부터 출장 가시는구나.’


자리를 보니 비어 있었다.


회사에서 유명한 빌런 아저씨다. 후배들 마저 그 분과 같은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저 사람만 조심하면 된다고 할 정도의 유명인이다. 일은 안 하면서 시끄럽기만 하고,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처럼 취합만 해서 본인이 다 한 것처럼 보고하기 좋아하는 사람.


오랜만에 비행기 탄다고 되게 좋아하면서 출장을 준비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영어와 업무 능력이 부족해서 출장 기회가 적은데, 이번에 기어코 본인이 같이 가겠다고 난리 쳐서 갔다. 아마도 호텔에서 잔다고 신나시고, 법카 긁으며 밥 먹는다고 기분이 참 좋으실 것 같다. 앞으로도 출장 많이 다니시고, 이렇게 쭉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게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인가.





속도 편하고, 밥도 잘 먹었더니 일이 잘된다.


그동안 하기 귀찮아서 미뤄뒀던 일을 집중해서 정리하고 마무리하니, 거짓말처럼 술술 풀리고 마무리가 된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던가.


보통 보면 하기 싫어서 손을 대지 않아서 그렇지, 막상 마음먹고 덤벼들고 해 보면 별 것 아닌 경우가 많다. 힘들고 복잡한 일도 작정하고 차근차근 조금씩 나눠서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정상에 도착한다.


힘들고 잘 안 풀릴 때는, 옆의 동료들에게 물어도 보고, 도움을 받다 보면 의외의 조력을 받기도 해서, 더 좋은 해결 방법이나 정보를 얻기도 한다.


웃으며 열중하는 내 모습을 보고, 사무실을 어슬렁거리던 임원 한분이 말을 건넨다.


“무슨 좋은 일 있어?”


“상무님 뵈니까 기분이 좋네요.”


“허허허“


평소 같으면 오그라들 것 같은 말이라 나오지도 않던 말이 술술 잘 나온다. 립 서비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자기에게 나쁜 말, 욕하는 사람이 좋을 리 없고, 좋은 말, 칭찬하는 사람이 싫을 리 없다. 맞는 말이 듣기에 쓰기도 하고, 너무 친창만 남발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사회생활에서 예쁜 말, 고운 말은 기본 예의다.


“오랜만에 밥이나 먹으러 가지.”


“네네.”


벌써 점심시간인가?


열중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그렇게 지나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기 싫을 땐 5분도 한 시간 같더니, 즐겁게 몰입하다 보니 한 시간이 5분처럼 흘러 그새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다.


사무실 밖으로 나와 보니 날씨도 좋고, 햇살도 따뜻하다. 바람도 알맞게 불어와 식당까지 가는 길이 마치 집 근처에서 산책하는 길과 같다.


그날따라 베트남 쌀국숫집에 같이 갔는데, 자리가 딱 있었다. 조금만 늦게 갔어도, 5분 늦게 온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줄처럼 저렇게 기다렸어야 했을 텐데.


아침에 잘 먹었는데도, 일에 열중해서 그런지, 음식이 맛있는지 잘 들어간다. 몸을 쓰면 당연히 체력도 소모되고 배 고픈데, 가만히 앉아 있어도 두뇌 활동을 열심히 하면 피가 머리에 공급이 많이 되어, 에너지 소모가 많다고 한다.


쌀국수도 맛있고, 몇 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플레이트 또한 맛있다. 높은 물가에 구내식당에서만 줄 서서 먹어서 밖에서 밥 먹고 싶기도 했는데, 마침 먹고 싶었던 베트남 음식까지 다양하게 먹었다. 그것도 법카로. 예에~




그렇게 사무실로 오려는데, 입가심으로 커피까지 사주신다.


고려 시대 서희 님은 외교는 전쟁을 막는 가장 효율적이란 수단이라는 말씀을 몸소 실천하셨는데,


나는 기분 좋아서 던진 한 마디로, 이렇게 맛있는 밥에 커피까지 얻어먹는 호사를 누린다.


그렇게 한가로이 사무실로 돌아가는 가벼운 발걸음에, 곧 적금이 만기 된다는 문자가 왔다.


3년짜리라 꽤 액수가 되었다. 벌써 만기가 되었나. 월 30만 원씩만 넣어도, 만기가 되면 1000만 원 넘는 돈이 되니, 역시 예적금은 재테크의 기본이다.


이제 이자도 올랐으니, 적금도 다시 시작해 보고, 새로 생긴 목돈도 예금으로 돌릴지, 좋은 투자처가 있는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세상은 나쁘게 보면 끝없이 나쁜 것만 보인다.

이것이 긍정 마인드인지, 정신 승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잘 자고 속을 잘 비워서 장 내 유산균 덕에 기분이 좋은지, 어제부터 좋은 일들로 도파민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이유는 별로 분석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다일지도 모른다.


점심시간 10-20 분 꿀잠마저 달콤하고,

직원들 코로나 걸리지 말라고 회사에서 나눠주던 마스크마저 새삼 감사하다.

(사장님이 오늘은 꼭 이 글을 보셔야 할텐데.

카카오 브런치는 몰라도 다음은 아실텐데 ㅎ)


재미로 보는 운세마저도 오늘은 재물운, 애정운도 좋고, 일도 잘 풀린다고 하는데,


로또라도 사야 하나.


여러분은 이런 날 없으신가요?


사람 기분이란 참, 같은 상황, 같은 일상이라도 많은 것을 달리 보이게 하고, 달리 대하게 한다.


한 작가님이 얼떨결에 문인이 된 나에게,

사람들을 위로하는 글을 쓰라는 말씀을 주신 것이 생각난다.

그것이 고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학이라는 예술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내 글을 읽는 분들이 잠시나마 생각의 여유를 갖고,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갖길 기대하며 오늘도 글을 써 내려가 본다.



(사진 : 네이버 jmjj21c 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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