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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Jun 06. 2023

이성관계에 대해 남자 선배를 믿지 않게 된 사연

내 사랑 강남 싸가지 번외 편 (C-1)


나는 살면서 후회 같은 걸 잘 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선택한 것인데, 누굴 탓하고 왜 자학하겠나.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번엔 이런 시행착오를 했으니,

다음엔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 하고 잊어버린다.


그런 내 인생에서 만약 후회가 있다고 해서 가장 큰 후회를 꼽으라면,

대학 새내기 때 선배들이,


“새내기 땐 노는 거야.”


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실제로 그렇게 놀아 버렸다는 거다. ㅎㅎ


고3이라는 진입부터 긴장하게 만드는 기간을 보내고 나니, 퍼지기도 해서 그랬고,

그렇게 고생하며 악착같이 공부한 대학 시절을 한번 즐겨보자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선배들의 말을 탓하기 보단, 듣고 싶은 말에 옳다구나 하고 놀아 버린 내 자신을 탓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수능을 망치고, 일단 점수에 맞는 대학에 들어가서,

소위 반수를 하고 수능을 다시 한번 봐서 원하는 대학의 학과에 진학하려는 계획도 한 몫 했다.


어차피 반년만 다닐 학교였으니, 그냥 신나게 놀고 때 되면 수능 준비나 하자는 계산이었다.

결국 그 대학을 졸업하게 되어 지금은 모교가 될 줄이야.


이래서 사람은 모르는 거고, 만일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다.


다른 친구들은 그런 선배들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다 공부할 때,

난 놀기로 작정하고 여자친구와 밤새 통화하고,

다음 날 아침 수업을 쨌다.


“100% 출석하는 건 교수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라는 선배들의 되지도 않는 위로를 믿었다.


어렸던 대학 초년생 시절엔 한두 살 많은 선배들도, 어려운 분들이었다.


지금 나이를 먹어서야 친구같이 지내고, 60-70 넘은 할아버지 세대에는 위 아래로 10살까지는 친구 먹는다는 말까지 있지만, (그렇게 진짜 친구 먹으려다 싸움 나는 것도 보았다. ㅎ)


그땐 1-2년 선배들, 특히 군대 복학한 형들의 말은,

처음엔 귀 담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경험도 짧아 인생을 잘 알지도 못하는 어린 애들끼리 조언을 하고, 인생에 대한 개똥 철학을, 뭘 그렇게 진중하게 들어줬는지 웃기기도 하지만, 그건 지나고 나서 이야기다.


그 선배들이 한 이야기 중 하나가 ‘동아리 내 연애 금지’ 였다.


연애해서 잘 되면 좋은데, 남녀 사이가 항상 좋지만은 않고, 깨지기도 하는데 그러고 나면,

남자든 여자든 한 명은 동아리를 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아, 그렇다는 거다.


하지만, 피 끓는 청춘에 좋아하는 이성을 만나서 사귀는 사이가 되는 것을,

동아리 안과 밖을 가리는 건 쉽지 않았다.


자꾸 보다 보면 정들고 이성의 감정이 생길 수 있다.


오죽하면 아무 감점 없는 남녀를 한 방에 넣어두면 무슨 일이 난다는 말까지 있겠나.




여러 에피소드가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을 하나 들려 드리려 한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옆에 여대가 있어 중앙 동아리를 우리 학교와 여대 친구들이 함께 했다.


원래 단과대 동아리 학회에만 참여했던 나는, 처음엔 서로 친해지고 챙겨주는 동아리 활동이 재미있었지만,

점차 흥미를 잃어갔다.


가뜩이나 전공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만나면 전공 이야기와 전공 관련한 미래에 대해서만 대화하고 사회 문제 위주로 주제가 잡혀 있는 것이 내심 재미가 없었다.


지금 연애수필 작가답게, 진지할 땐 진지한 이야기와, 전공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주구장창 전공 이야기와 사회 담론에 대한 대화가 주를 이루니 이내 지겨워졌다.


그러다 단과대를 벗어나 학교 전체 중앙 동아리 회원 모집 시즌에, 친절하고 예쁜 누나들의 꼬임에 빠져 버렸다.


“신입생이에요? 우리 동아리 어때요?”


“밥 먹었어요?”


“대학생활 시작하니까 잘 모르겠고 쉽지 않죠?”


이상한 집단을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예쁜 누나들이 나쁜 사람들의 사주를 받고 작정하고 날 꼬드겼다면…


요즘 사회문제들을 보면 아찔하다.

당시의 나였으면 좋다고 헤~ 하면서, 제 발로 끌려가 한복으로 갈아입고 제사를 지내거나, 목청 높여 거기서 부르는 노래를 같이 불렀을 것 같다.


암튼, 예쁜 누나가 밥 사주고, 친절하게 대학생활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걸 듣고 있으니, 단과대 사회 정의에 불 타는 선배들과 같이 할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물론, 그렇게 홀려서 가입한 중앙 동아리에도 아저씨 선배들과 나같이 홀려서 들어온 남자 새내기들이 많았지만, 여학우들이 차이가 있었다.


내가 속한 단과대의 여학우들은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다들 ‘무늬만 여자’ 였다. 공부하느라 꾸미는 것에 관심도 별로 없었고, 꾸며도 꾸민 것이 티 안 나는 그런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중앙 동아리에서 만난 여학우들은, 단과대에서 만난 친구들처럼 무늬만 여자도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꾸미는 데에 관심이 많고, 세련된 친구들도 꽤 있었다.


지금이야 나이도 먹고 해외 어느 나라를 가서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필요하면 먼저 말을 붙이고 다가가고 경험도 해서 이렇게 연애 수필도 쓰고 있긴 하다. 하지만, 스무 살 때의 나는, 남중 남고를 졸업한 쑥스러움 많은 말없는 청춘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자 동기들이나 누나들에게 말도 잘 못 걸고, 한 두 마디 걸어도 금세 할 말이 바닥나 버리곤 했다. 불편하고 어색한 침묵.


그래서, 나처럼 말을 잘 못 붙이는 여자 친구들보다는 활달한 친구들을 좋아했다. 내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들어주기만 하면 되어서 그런지 그런 친구들과 같이 있으면 왠지 편안했다.


그런데, 살가운 정도를 넘어 팔짱을 끼면,


“앜” 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게도 해서 그건 조금 불편했던 것 같다.

어색해지고 얼굴 빨개지고 참 순진했지.


지금은 제발 누가 팔짱 쫌 끼워졌으면 좋겠는데 ㅎ

아니, 팔짱이고 뭐고 뭘 해도 얼굴 빨개지진 않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아, 빡 받거나 해서 혈압 올라가면 얼굴 벌개지긴 하겠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이 먹고 그러려니 하는 게 많아져서 평온하고 무탈한 삶을 살고 있다.


암튼, 그땐 그랬다.


그렇게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여성은 더더군다나 잘 모르던 그때 당시의 나에게 센세이셔널한 여자를 만난 적이 있다.



(아래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97



아래 본편 1화부터 보실 수 있는 매거진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loveingan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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