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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Jun 07. 2023

호피무늬 누나

내 사랑 강남 싸가지 번외 편 (C-2)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45


앞서 말한 우리 학교 옆 여대에는 야간 대학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하는 친구들.

엄밀히 말하면 누나들이 많았다.


하루는 동아리 방에서, 복학생 형들과 동기들과 기타를 치며 죽 치고 있는데,

웬 여성 분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저도 여기 동아리 가입 가능한가요?”


헐. 이런 걸 visual shock라고 해야 하나.

학교에서 추리닝이나 청바지 등 편하게 입은 여학생들을 많이 보았다.

화장이나 꾸민 옷 조차도 수수해 보였는데,

난생 처음 강렬한 호피무늬 옷을 입고 온 여성을 보았다.


원래 정말 예쁜 여자를 보면 잠깐 정신이 나가고, 평소 잘하던 말도 버벅거린다고 하는데,


순간 사고가 정지되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자꾸 시선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마침 그녀의 얇은 발목에 걸린 빛나는 발찌만 보였다.


사람은 첫 경험이 중요하다고, 만일 내가 처음 본 발찌가 소위 무다리 여성이 착용한 것이었다면, 꽂히는 아이템이 되지 않았을 거다.


그 뒤로 외모나 성격 등이 내 스타일이 아닌데도, 발찌가 어울리는 여성은 이상하게 매력적으로 보였다. 꽂히는 첫 경험은 오래 간다.


그러고 있는데,

한 예비역 선배가 일지매인양 튀어 나갔다.

평소엔 굼뜨기로 유명한 형이, 이럴 땐 왜 이렇게 빠를까?

여자는 남자를 만든다는 말.

명언이라 생각한다.


“아이고, 그럼요.

들어오세요.


여기 가입 원서 편하게 앉아서, 쓰시면...

아니, 쓰실 필요도 없구요.

불러만 주세요. 제가 받아 적겠습니다. 헤~“


역시 나이와 짬밥은 이런 곳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다. 충격도 많이 받아 봐야 무뎌지고 익숙해진다. 당연히 충격 후 회복력과 반응도 빠르다.


(그럼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지금의 난 어떨까? ㅎㅎ

그래봐야, 아직도 휴일에 연애 수필이나 쓰고 있다.)


그렇다.

그 분은 화장부터 입는 옷까지 강렬한, 자극적이고 섹시한, 요즘 말로 예쁜 쎈 언니였다.


톡 쏘는 진한 향수 냄새까지 빼놓지 않은.


동아리 가입 첫 날부터 그 누나는, 남자들을 몰고 다녔다.


남자 선배들은 학생 식당에서 남자 후배들 천원짜리 밥 사주는 것도 아까워 하더니, 이 누나에겐 잘 보이겠다고 학교 앞 꽤 비싼 밥집으로, 술집으로 모시고 나갔다.


형들은 어린 애들보다 성숙한 여자가 좋다며,

애들은 역시 섹시한 여자가 자기 이상형이라며,

그 누나가 오기 전엔 모여서 그 누나 이야기,

그 누나가 오면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여자에 정신 팔리는 건 사실 본능이라 볼 수 있는데, 그때를 돌이켜 보면 혈기왕성하기도 하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왕성할 때라 더 그랬던 것 같다.


나이 들어서 관심은 줄어든다고들 하는데,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서 관심이 떨어진 거라 본다.

가끔 내 몸 챙기기도 힘들다. ㅎ


그녀와는, 특히, 술자리가 대박이었는데,

무슨 여왕벌도 아니고, 호피무늬니까 여왕 호랑이라고 해야 하나.

형들이고 동기들이고 모두 그 누나 앞, 옆자리 근처에 앉으려고 그렇게들 적극적이었다.


사실 나는 수줍기도 하고, 왠지 저렇게들 개떼같이 몰려 있으면 그들 중 하나가 되어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어, 그러고 싶으면서도 하지 않을 때가 많다.

더군다나 그 누나는 알고 보니 나보다 5살이나 많았다.


대학 신입생에게 5살 많은 누나는 사실 대학을 졸업한 누나 뻘이라, 솔직히 여자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섹시한 스타일보단 귀엽고 수수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터라, 주위에 어슬렁거리는 호위대가 되기는 더더욱 싫었다.


특히, 이 누나는 목에 밴드 같은 걸 자주 하고 다녔는데, 그게 stylish 해 보이고 sexy 해 보이면서도, 어느 때부턴 왠지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아,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맘에 들지 않았다.


코 끝을 찌르는, 자극적인 향수 냄새도 사실 싫었고, 그 냄새 맡으면서, 쎈 언니답게 좋아하시는 매운 닭발 같이 먹겠다고 쿨피스 시켜 먹긴 싫었던 것 같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 쪽 누나들은 유독 매운 닭발부터 시작해서, 곱창, 생간, 육회 이런 걸 좋아한다. 소주 안주로 좋아서 그런가 ㅎㅎ


좋으면 이유없이 좋기도 한데,

싫으면 오만가지 이유가 덕지덕지 붙는 것 같다.

때로 딱히 없는 것 같으면 찾아서라도.


그렇게 나 같은 인간이나 경쟁을 포기한 친구들이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평범한 여자 동기들이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진짜 한심하지 않냐? 예쁘고 섹시하다고 다들 저렇게 들러붙어 앉아서 참.”


‘그게 본능인 걸 어떡하겠냐?

나라도 내 스타일이면 적극적으로 근처로 가겠다.

내 스타일도 아니고, 경쟁 치열한 레드 오션엔 가고 싶진 않아서,

여기서 그냥 편하게 너희들하고 술 먹고 있는 거지.’


그냥 못 생긴 너희들하고 먹는 게 맘 편하다라고 곡해해서 들을까 봐 굳이 말은 하지 않았다.


역시 말은 줄이는 것이 좋다.




그러다 하루는 동아리 방에 왔는데, 아무도 없었다.


다들 수업 가고 약속 있나? 알바 갔나?


평상시 북적거리는 곳에서 혼자 그러고 있는데, 그 누나가 불쑥 들어왔다.


“어머, 너 혼자 밖에 없어?”


우와, 그냥 사람이 들어온 건데,

어찌 보면 나보다 힘이 약한 여성인데도, 둘만 있으려니 왜 이렇게 무섭게 느껴지는지.

즐겨 입는 호피무늬 미니스커트가 오늘따라 더 짧아 보였고, 당장이라도 날 잡아먹을 것 같았다.


이럴 땐 피하는 게 상책.


나가려는데,


“어디 가?”


“약속이 있어서요.”


“나 혼자 심심한데, 다른 애들 올 때까지 같이 있자. 응?“


예쁜 여자들은 주변에 남자들이 꼬이는 경우가 많아, 심심하고 외로울 틈이 없기도 해서, 이렇게 혼자 덩그러니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누나와 둘이 앉아 있었는데, 급 어색하며 엉뚱하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지난 번 동아리 방에서 젊은 남녀가 참지 못하고, 이상한 짓을 하다 소리까지 내서,

다른 동아리 방에서 와 보니 옷 벗고 껴안고 있다가 난리 난 소문이 떠올랐다.


헐, 나도 오늘 그런 소문의 당사자가 되는 건가.


남자 머릿 속의 반은 여자 생각이라는,

번식 요정 라인 형님의 말을 듣고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혼자서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그 누나가 자리에 앉더니 화장을 시작했다.


여자가 아이라인을 그리는 걸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는데,

진심 눈을 까 뒤집는 줄 알았다. 좀 기괴한 모습이랄까.


“왜? 여자 화장하는 거 처음 봐? 순진하긴.”


‘누님, 이건 순진이고 뭐고가 아니고 그냥 무서운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회사 생활이 힘들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였다. 당시에 회사 생활을 모르는 나에겐 별 관심 없는 이야기라 우두커니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자가 말을 할 때는 들어줘야 하고,

적당한 호응을 해주면,


“너하곤 참 말이 잘 통해.”


소리를, 정작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듣게 된다고,

그날따라 회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별 이야기를 다했다.


하긴, 선배들은 어필한답시고 되지도 않는 허세 떠는 이야기만 늘어 놓고, 상대방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있었으니, 조급해 보이고 없어 보이면서 자기 말만 하는 촉새로 낙인 찍힌 것 아니었나 싶다.


대학 다닌 김에, 멋지고 잘 생긴 남친 사귀고 싶은데, 다들 약간 찐따 같은 애들만 많다면서 자신의 이상형을 구구절절이 듣고 있는데, 속으론,


‘하나도 멋지지 않고 잘 생기지도 않은 나한테, 왜 이렇게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시나.’

싶었다.


관심 없는 여자가 말하는 좋아하는 남성상을 들어주느라 힘들어서, 이젠 빨리 이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선배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다행이다.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어디 가?

같이 놀자.”


그 누나의 짧은 한 마디에,

남자 선배들의 표정이 제법 사납게 변했다.


'2C, 나는 그렇게 달라 붙어서 잘해주는데도 저런 말 안 하는데, 저 놈은 뭘 잘해주는 것도 없는데 말야. 언제부터 그렇게 친해졌다고 저렇게 챙기나.

꼴 보니까 단둘이 같이 있었네. 18, xx 부럽네.‘


이런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정확히는 남자 후배에게는 큰 관심이 없던 남자 선배들인데, 이 누나가 나에게 뭔가 친한 것 같아 보이자, 놀라움 반, 경계 반의 표정을 보였다는 게 맞을지도.


“아, 아니예요.

약속 있어서 지금 진짜 가 봐야 해요.

나중에 뵈요~”


황급히 나오는데, 남자선배들이,


“어, 어, 잘 들어가.”

하며


그제서야 안도감 섞인 표정을 보냈다.



(아래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98



아래가 본편 1화부터 보실 수 있는 매거진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loveingan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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