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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Jun 08. 2023

뜻밖의 모임

내 사랑 강남 싸가지 번외편 (C-3)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97



그러고 나서 선배들과 간만에 저녁에 술을 마셨다.


“크아, 시원하다.

근데, A 친구 진짜 예쁘지 않냐?”


사람의 말에는 확실히 뉘앙스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분명 그냥,


“내가 보기엔 예쁜 것 같은데 니가 보기엔 어때?”

라는 보는 눈의 비교 같은 질문인데,


왠지,


“난 A 좋아하는데,

너도 좋아하냐?

그럼, 쫌 곤란한데.”


이런 요상한 행간이 읽혔다.


“잘 모르겠는데요.”


이렇게 원하는 대답을 해주니,

신나서 술값을 계산한다.


그러면서, 자못 심각한 목소리로,


“근데, 너희들 동아리에서 연애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지난 번에 B하고 C 사귀다가 헤어져서 다들 눈치보고 얼마나 힘들었지 말야.”


하며, 연애하고 잘 되면 좋은데, 깨지면 불편해져서 한 명이 나가고 어쩌고, 사례까지 들며 일장 연설을 늘어 놓는다.


이래서 난 그냥 내 돈 내고, 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사람들과 마시는 걸 좋아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뭐 좀 얻어 먹겠다고 붙어 있으면 이런 되지도 않는 말을 주구장창 들어줘야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이 먹을수록 지갑을 열고, 말을 줄이라고 하나.

내가 보기엔 진리라고 본다.


그렇게 단도리 아닌 단도리를 당하고, 집으로 가는데 이번엔 동기 녀석이 갑자기 고백을 한다.


“야, 나 그 누나 좋아해.

근데, 다들 좋아하는 것 같아서 미치겠다.”


“내가 미치겠다.

예쁘고 섹시한 건 좋은데, 왜 나이 많은 누나를 만나냐?

걍 또래를 만나. 너 그 누나 회사 다닌다고 밥 얻어 먹고 삐대려는 거냐, 설마?”


“삐대긴 뭘 삐대. 난 진심이라고.”


‘그래, 안다 알아.

니 얼굴에 여자한테 삐대는 게 말이 되겠냐 ㅎㅎ

너나 나나 공부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어야 하는 건 매한가지다. 흐


그러고 보니, 이 XX도 남자네잉.

순둥이 같이 생겨가지고, 꼴에 남자라고 섹시한 여자 좋아하네.

본능인 걸 어떡하겠냐.

점잖 빼는 할아버지들도 어린 여자애가 섹시한 옷 입고 가면 눈이 자동으로 거기로 가더라.


근데, 어떡하냐? 그런 섹시하고 꾸미는 것 좋아하는, 사회생활 이미 몇 년 한 누나가,

너 같은 못 생긴 어린 범생이를 좋아하려나 모르겠다.’


포기하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사랑에 눈이 멀면, 답이 없는 걸 조금이나마 아는지라,

잘해보라고 응원만 해줬다.


그때부터 이 친구의 지극 적성이 시작되었다.

그 누나가 야간 강의 끝나고 오는 시간도 기억해 두고 기다리곤 했다.


‘참, 피곤하게 산다.’


싶었지만, 지가 좋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나.


그 누나가 쓰는 향수 향이 좋다느니, 머릿결도 좋은데 샴푸도 엘라스틴을 쓸거라느니 남의 짝사랑 이야기를 틈만 나면 들어줘야 했다. 친구가 뭐라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연애수필을 쓰고 있나 ㅎ


순둥순둥한 녀석이 적극성을 발휘해서는 술자리에서 그 누나의 옆자리를 꿰차고 비키지 않곤 했다. 옆에서 숟가락 떨어지면 챙겨주고, 휴지 챙겨주고,


내가 보기엔 아주 그냥 꼴값을 떨었다.

지네 부모님에게도 저렇게 안 할 텐데 ㅎㅎ


전에 이 녀석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무뚝뚝한 아들 녀석 그 자체였다.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도 겨우 떠 먹는.

그런 놈이 좋아하는 누나한테는 찰싹 붙어서,

지 딴엔 뭘 챙겨준다고 그러고 있는 걸 보면 재미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그 누나가 몸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들었다.


며칠 동아리 방에 안 나오더니, 감기에 걸렸는지 몸이 안 좋아서 동아리는 커녕,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나중에 회사를 다니면서 석사 학위를 땄는데, 죽는 줄 알았다.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저녁에 강의를 들으러 가고,

일주일 동안 일하다 주말에 하루 종일 강의를 듣다 보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역시 사람은 직접 겪어 봐야,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하나.

그때도 막연히 회사 다니면서 학교 다니면 힘들겠다 싶긴 했다.


“야, 오늘 수업 끝나고 뭐 하냐?”

친구가 물었다.


“몰라, 집에 가서 잠이나 자야지.”


“너 나하고 누나 집에 같이 갈래?”


“거길 왜 가?”


“병문안!”


“하이고, 무슨 큰 병 걸렸냐?

감기 조금 걸린 것 갖고 무슨 병문안이야. 오바 떨지 말고, 집에 가서 부모님이나 챙겨라.”


“I2C, 걱정되는데 어떡하라고!”


“그럼, 혼자 가지, 왜 나한테 같이 가자고 해.”


“혼자 갈려니까 좀 없어 보이고, 왜 왔냐고 하면 뭐라고 얘기하기도 그래서 그런 거 잖아.”


‘찐따’

친구라 차마 직접 대 놓고 말은 못 했지만,

내가 잘은 몰라도, 여자는 용기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같은 남자라도, 쭈뼛대면서 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고백도 못하는 쪼다보다,

까이더라도 진정성을 담아 “나 너 좋아한다”고 시원하게 말하는 인간이 더 좋지 않을까?

그리고 잘 안 되어도, 깔끔하게 인정하고 돌아설 수 있는 남자 말이다.


물론, 키 크고 잘 생기면 쭈뼛대는 것 조차 귀여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 친구나 나나 그런 기대를 하기에는 객관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그냥 혼자 가라.”


“이번만 같이 가자.

처음이라 좀 떨린단 말이야.

술 살께.”


술 산다는 말에 OK를 했다.


“맥주 사라. 소주 말고.

이번 한번 만이다.”


“그래, 그래”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지하철을 타고 가서 그 누나 집 근처로 갔다.


“와, 더럽게 머네.

이렇게 먼 줄 알았으면 안 왔는데 쩝”


“다 와서 그만 궁시렁 대고 가자 얼른.”


“그래, 근데 다 좋은데, 누나한테 인사할 때는 제발 너 혼자 가라.”


“왜! 같이 가자, 여기까지 같이 왔는데.”


‘나까지 졸졸 따라다니는 찐따 되라는 말이냐!’

라고는 말 안 하고,


“그래야 니 진정성이 더 돋보이잖아, 어?

찾아온 두 놈 중 한 명이 될래? 아님 유일하게 찾아온 한 명이 될래?”


“흐음, 그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 녀석 손에는 이미 종합감기약과 과일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한마디로, 작정을 한 거다.


“알았어, 한 쪽에서 잠깐만 기다려.”


“그래”


그리고, 그 누나에게 전화를 해서 불러 내려는 찰나,


많이 낯 익어 보이는 사람이 보였다.


감기약과 과일 바구니를 든 다른 남자.

평상시엔 후줄근한 츄리닝에, 담배는 멘솔만 피우는 쭈구리 복학생 형.


오늘따라 깔끔하게 차려 입고 머리에 비 맞은 것 마냥 무스인지 스프레이인지를 잔뜩 바르고 나타났다.

나도 남자지만,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은 가끔 저렇게 자신을 변하게까지 한다. 사랑을 하고, 그게 안 되면 가끔 소개팅이라도 해야 하는 이유라고 본다.


마치 한 회사에 오래 다녀도 이력서를 한 번씩 update 하고, 꼭 회사를 옮기지 않더라도 면접도 한 번씩 보는 것과 비슷하다. 나의 현재와 적나라한 시장에서의 가치를 알고, 마음 자세가 달라진다.


조금 놀라서 일단 숨었다.


“아이씨, 이게 뭐야.”


“흐흐 그러게 말이다.

저 형도 쫄랑 거리면서 누나 옆에 붙어 있으려고 하더니,

너처럼 여기 왔네 ㅋㅋㅋ”


“하아, 나 어떡하지?”


“뭘 어떡해. 기다려야지.

저 형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화해.

자체 번호표 뽑았네 ㅎㅎㅎ”


그렇게 그 멘솔 쭈구리 형이, 그 누나를 불러내서 가져온 과일을 전달하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는 걸 지켜보며 기다렸다.


다행히 대화가 길지는 않았다.


사실 그럴 것 같았다.

그 누나 입장에서 몸도 피곤한데, 별로 맘에 들지도 않은 남자가 찾아오면, 고맙긴 한데 그리 오래 있지 않을 것 같았다.


지난 번 동아리 방에서 누나의 이상형을 쭉 들어줬던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역시 이래서 사람은 겪어 보고, 대화를 해봐야 안다고 하나.


그 형이 가고, 이제 우리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파이팅 넘치는 경상도 싸나이 형이 나타났다.

동아리 내에서 연애 금지를 주구장창 외치던 그 형.


다시 몸을 숨기고 쳐다 보았다.


어쩜 그렇게 한결같은지.

비타민 C 등 약과 과일바구니였다.


“히야, 동아리 내 연애 금지라고 해놓고는,

남들은 연애 못하게 하고, 자기들은 하려고 저 XX 했던 거네, 참나.”


“그러게, 기가 찬다, 기가 차.”


하지만, 그 무대뽀 눈 작은 형도 분명, 세련미를 자랑하는 저 누나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기에 금방 사라졌다.


“어떡하지?”


“뭘 어떡해?”


“불러내 말아?”


하이고, 꼴에 셋 중 하나가 되긴 싫은가 보지 ㅎㅎㅎ

그래도 어쩌겠냐. 이거 주고 얼굴 한번 보려고 여기까지 기어 왔는데, 주고는 가야지.


“빨리 주고 가자.

저 누나도 피곤하겠다.”


“그래야겠지?”


결국 세 번째 나온 그 누나는 내 친구가 스스로 세번째 손님인 걸 이미 알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픈데 이어서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왔다.


서로가 세번째인 걸 아는 만남.

히지만 상대방은 모를거라고 생각하는 웃기는 만남 22

어쩔 수 없이 온 김에 불러내긴 했는데,

쑥맥에, 외모도 이 누나 스타일이 아닌 범생이 내 친구도 그리 오랜 시간을 갖진 못했다.


그래도 목표 달성은 했는지, 과일을 전달한 이 녀석 표정이 꽤나 밝았다.


“아이고, 속이 후련하네.

가자 한잔 하자.”


‘그러자, 사랑 한번 힘들다.’


그렇게 돌아가는데,

아뿔싸.


앞서 왔던 두 형을 만나고 말았다.


성난 표정의 수컷들.

편한 선배가 아닌, 이 인간들은 분명 암컷을 차지 하기 위해 전쟁에 나선 수컷의 그 표정이었다.


더군다나, 둘은 이미 자기들끼리 뭔가 말싸움까지 한 눈치였다.


“니가 여기 왜 왔노?”


“걱정이 되서요.”


“뭐가 걱정되었는데?”


“아니, 아프다니까.”


“별 걱정을 다하네.

그럴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공부나 해라.”


못 참고, 내가 질렀다.


“근데, 형은 왜 왔어요?”


“아니, 뭐 XXX”


그렇게 다들 되지도 않는 소리를 또 주구장창 늘어 놓았다.


대학 생활은 작은 사회생활이라고 하나.

정치인이나 회사 생활하면서 만난,

잘못하고도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하면서, 이상한 소리만 늘어 놓는 인간들을,

이미 만나서 예방주사를 그때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같은 동아리 선후배고,

이젠 같은 상대를 좋아하는 공감대까지 있지 않나.


그렇게 그 셋과 나는 지하철 역 근처 맥줏집에 앉아서 시원하게 맥주를 마셨다.


(나는 왜 이 집단에 끼어 있는 걸까?

가끔 이렇게 원치 않게 끌려 다니며 우연히,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할 때가 한 번씩 있다.)


동아리 모임을 굳이 학교 앞에서 하지 않고,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예쁜 누나 집 근처 맥줏집에서 하고 있다니.


그렇게 사랑에 대한 격정 토로를 이어가고,

집에 가려고 나왔는데, 병문안 온 다른 세 번째 선배를 만났다.


첨엔 놀랐지만, 이젠 그냥 그러려니 했다.


“여기 왜 왔어?”

하며 놀라는 세 번째 형에게,


모두들,

“그래, 다 알아.

힘들지?“


그리고 함께 2차를 갔다.


한잔 들어갔다고 다시 웃고 떠들며, 사랑이 어쩌고 운명이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 형님들이 얼마 전 진지한 목소리로 엄숙하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동아리 내 연애 금지”


속으로 생각했다.


X소리 금지.



끝.



아래 본 편 1화부터 보실 수 있는 매거진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loveingangnam


(사진 : 네이버 충남 피캬츄님 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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