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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Jul 07. 2023

이번 주도 제법 무탈하게 보냈네요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푸념을 많이 듣는다.


결혼 못한 (혹은 하지 않은) 직장 동료들이 있으면 이런 말을 한다.


“학창 시절 사고 안 치고 모범생으로 졸업 잘하고, 대학 잘 들어가서 학점하고 스펙 만들어 취직해서 안정적인 일자리 잡으면 좋은 이성 만나서 결혼할 줄 알았지.


그리고 집 장만해서 애 낳고 성실히 일하면서 오순도순 잘 살거라 생각했는데, 난 지금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일하고 달려오다 보니 돈은 그래도 좀 모았는데, 집값은 벌고 모은 것보다 더 뛰어버렸다. 좋은 이성은 이미 다른 사람이 다 채가고, 성격이든 뭐든 하자 있는 사람들끼리 마이너 리그에서 뛰고 있으니, 나이 먹으면서 본 건 많아져서 눈만 높아지고 그래서 서로 맘에 안 드는 것 같아.“

이러고 있다.


그러게.

사는 게 뭐라고 그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을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친한 선배 이야기를 해보면, 착하고 활기찬 노총각이다. 딴 짓 잘 안 하고 성실한 편이라 돈도 어느 정도 모아두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모임에서 알게 된, 그 선배와 나이 비슷한, 공기업 다니시는 여성분을 소개해 드렸다.


만나기 전엔 궁금하다고 이것저것 저에게 귀찮다 싶은 정도로 서로에 대해 물어보더니, 막상 만나서는 이게 맘에 안 든다, 저게 맘에 안 든다고 하며 돌아가며 나에게 엄청 뭐라고 했다.


좋은 마음에 소개해줬는데,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각자 열심히 살아오고,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특히 어렸을 때 만난 옛날 생각하며 비교하고 서로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다.


특히, 여성 분은 40대 중반이 넘어갔는데도 예쁜 편이셨다. 성격도 좋으시고.

20대 때 참 인기 많으셨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20대 때 자신이 만난 사람 그리고 대우받았던 생각을 하니, 그 노총각 선배가 눈에 안 찼던 것 같다.


"이 나이 먹고도 혼자인 것도 억울한데, 고작 저 정도 사람하고 평생 같이 살려고 이제까지 기다렸나."

대놓고 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왠지 그렇게 들렸다.


'누님, 지금 20대 꽃다운 청춘 그때요? 주름을 화장으로 아무리 가려도 나이 든 티는 나요.


김희애 님, 김태희 님, 전지현 님 보면 나이 먹고도 화장 잘하고 관리 잘해서 어려 보인다고 비싼 화장품 사라고 누님 꼬시지요? 어린 남자애들이 보기엔 다 그냥 아줌마예요. 광고에 속지 마시고 그냥 누님 나이에 맞는 좋은 아저씨 만나세요.'


회사에서도 40대 후반 노총각 선배가, 40대 초반 여직원분을 정말이지 오랫동안 쫓아다녔는데 결국 안된 일도 있었다. 그 노총각 선배는 일편단심 지극 정성으로, 그 여성분을 챙기고, 그분이 연애하실 때는 기다리고 헤어지면 다시 접근하고 참 노력이 가상해 보일 정도였다.


그 여성분이 몸이 안 좋았을 때도, 몸에 좋다는 걸 이것저것 얼마나 챙기시는지. 가끔 옆에서 보는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런데, 여성분이 조금 마음이 열릴까 싶을 때가 있었다.


그분이 과자를 먹고 싶다는 말에, 회사의 그 여성분 자리로 과자 종합선물 세트를 선물한 걸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원하는 것 해줬다고 뿌듯해하는 그 남자분과, 불편하게 이게 뭐야 애들도 아니고 하시는 여성분의 표정이 너무나도 대비되었다.


그쯤 되면 그 여성분은,


‘아이고야, 그냥 혼자 살아야겠다. 지금까지 남자 없이도 잘 살아왔는데 뭘. 시집가서 시월드에 시달리고, 남편이 사고 치면 골치 아프다는데 이리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애 낳고 키우느라 고생하느니, 조금 외롭긴 하지만, 강아지나 키우면서 살아야겠다.‘


하는 생각을 할 것 같다.


그런 것이 실제 통계에서 나타나, 안 그래도 결혼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비중이 과거에 비해 높은데, 여성분의 답은, 남성분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몇 번 이야기한 적 있는 남성의 번식 욕구 때문이라 생각한다. 없어도 하고 싶고, 자기 닮은 자식 낳고 싶은 마음.


'내가 고생할 건 아는데, 나도 닮고 너도 닮은 아이 낳고 싶다.

똑똑하고 잘 생기고 예쁘고 건강한,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운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재능 있는 그런 아이.

책임감도 있어 보이니 임신했을 때 내팽개치지 않고 나 잘 챙겨주겠지.'


이런 여성의 마음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즉, 그런 것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으면 주저하게 되어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러다 보면 아이 갖기는 힘들어지고, 결국 포기하게 되는 모습을 많이 본다.


더군다나, 집값이니 물가니 맞벌이는 기본인데, 애 맡길 곳도 부족하고 불안하며, 아프면 가야할 소아과도 줄어들고 있다. 또한, 사교육 등 들어갈 돈이 장난이 아닌데 사실 미리 현실을 적나라하게 알면 애 낳기 쉽지 않다.


어떤 유명한 교수님이 조금은 과장해서,


“지금 대한민국에서 애 낳는 사람은 사실 인구 감소하는 나라에는 굉장히 고맙지만, 본인은 엄청 용감한거다. 심하게는 바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겠다.“


라는 말을 들으며,

처음엔 충격받고, 나중엔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예전에 아이 한 명당 키울려면 기본 몇억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제대로 키우려면 그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한 번은 접대차 간 술집에서 도우미 친구가 술을 마시며 또 이런 푸념을 한다.


“오빠,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어.”


왜? 하면서도, 그러게 처음 보는 사람들 비위 맞춰주며, 술 따르고 마시며 웃어줘야 하니 속도 안 좋고 기분이 좋겠냐 싶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아이고 이분이 왜 이러셔. 이 보잘것없는 접대 때문에 끌려온 월급쟁이를 상대로 공사(?) 치려고 이러시나. 하면서도, 내 통장 잔액을 보니 공사 치려고 해도 견적도 안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더 들어줬다.  


음대를 진학해서 나름대로 대회에서 입상도 하고 괜찮게 살았다고 한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부모님 이혼하시고, 어머니는 생활력이나 경제력이 없는 상태에서, 큰 병에 걸리실 정도로 아프셨는데 보험도 제대로 들어 놓지 않아 돈 벌려고 이러고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작업하는 뻔한 스토리긴 했지만, 털릴래야 털릴 돈도 없는 나였기에,


‘아이고, 이렇게 예쁘고 젊은 데다, 음대까지 졸업한 친구가 어쩌다 이렇게 인생이 꼬여서 고생을 하나.’

싶었다.


말한 것이 다 사실이라고 전제하면, 그냥 적은 돈이라도 꼬박꼬박 월급 받으면서 밥 굶을 걱정 없으면서, 되도록 안 아프고, 아파도 치료받을 수 있는 보험이라도 잘 들어 놓고 살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회사에서 월급 적다고, 일 많다고 불만을 늘어놓지만, 자기들끼리 있을 땐 커피 마시며 누구 뒷다마를 까는 건지, 남자 친구 이야기를 하는 건지 깔깔거리며 웃는 친구들과 비교가 되었다.


‘그 불만 늘어놓던 친구들도 저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도 어찌 보면 복이구나. 저 친구들은 그래도 그럭저럭 저렇게 큰 고민 없이 사는데, 그 괜찮은 친구는 어쩌다 저 평범한 일상도 못 누리고, 그렇게 하기 싫은 일을 매일 밤 해야 하는 걸까?’


인생은 생로병사라고, 나도 회사를 오래 다니며 나이도 먹고, 부모님도 많이 나이가 드셔서 아프신 곳이 점점 늘어나신다.  


어머니가 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해외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지만, 슬퍼할 겨를 없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만 생각했다.


어머니는 집안이 어렵다 보니 식당일, 학교 급식소 일도 하고 그러셨다. 그래서 무릎도 안 좋으시고 건강이 전체적으로 좋지 않으셨다.  뉴스를 통해 보는 급식소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의 이야기가 나에게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다.


그 젊은 시절 코뿔소 같고, 무쇠 같으시던 어머니도,


"내가 식당일도 해보고 이래 저래 고생해 봤는데, 학교 급식소 일은 진짜 힘들더라."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엔 환경도 훨씬 더 열악했으리라.


해외에서도 정밀검사하고 수술을 빨리,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을 수소문했다. 그때도 공부 열심히 해서 괜찮은 대학 나와서 의사 친구들도 있고, 괜찮은 회사에서 돈도 벌고 도움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참 고맙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일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복귀할 수 없어서 결국 수술일에 곁을 지키지 못했고 동생이 어머니를 보살폈다.

이래서 애는 둘은 낳아야 하나.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나고 병원비도 보험을 들어 놓은 덕에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옛날 말로 집안에 암 환자가 있으면 아파트 한 채가 날아간다고 걱정하고 적금도 해약하나 하고 여러모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건 그야말로 옛날 얘기였다.


되려 검진을 해서 암을 초기에 발견하면 치료비는 물론, 진단금도 나와서 돈을 벌기도 한다. 그래도, 안 아픈 게 제일이다.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들어가셔서 회복하셨고, 나도 복귀해서 어머니를 뵙고 요양병원에서 나오실 때 모시러 갔다. 요양병원도 말이 요양병원이지, 각자 방이 (1인실)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명이 최소 6명 이상의 아픈 사람이 누워서 같이 생활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서 보니 군대가 생각날 정도였다. 더군다나, 같이 서로 위로하며 생활하던 사람이 갑자기 아프거나 암이 재발해서 실려갔는데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을 겪게 되니 많이 힘드셨던 것 같다. 그래서, 원래 있어야 할 기간보다 좀 더 일찍 나오셨다. 더 있다가는 원래 있던 병은 낫는데, 정신병 걸릴 것 같다고 하시면서.


그때 어머니가 혹시 몰라 남겨 두셨던 유서를 읽어보고 마음이 찡했다.


“집이 가난해서 잘 챙겨주지 못해 자식들에게 미안하다, 아버지에게는 없이도 서로 의지하며 같이 살아줘서 고맙다.”


그런 얘기였는데 어머니도 힘들게 사시고 큰 병까지 얻으셔서 얼마나 사는 게 어려웠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어머니도 다행히 관리를 잘하셔서 수술 후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잘 관리만 하면 괜찮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안도했다.


열심히 살아서 빚도 청산하고 깨끗한 아파트에서 좋은 차를 몰면서 큰 걱정 없이 살고 있어 다행이다.


가족끼리 한 번씩 외식하면 무척 행복해 보이시는 부모님을 보며, 자주 모시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럴 때면 별것 아닌 이야기를 갖고 즐겁게 웃으며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며, 저렇게 앞으로 행복하게 건강하게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저 오늘 하루도 무탈하고, 가족들 아프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빚 걱정 없이, 사치까지는 모르겠고 먹고 살고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는 정도의 돈 걱정은 없이, 다들 건강하게 특별한 걱정 없이 소소하게라도 하고 싶은 것 하며 살고 싶은 마음 뿐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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