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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Jul 04. 2023

비가 오니 글이 써지네요

전엔 비만 오면 한잔 생각이 났습니다.


파전에 막걸리 크으~


이제 나이도 먹고 술 마시면,

다음 날 속도 안 좋고 몸도 피곤해서 잘 마시지 않게 되네요.


이런 날은 무조건이었는데 말이죠 ㅎㅎ


희한하게 이런 날은 미리 약속을 잡지 않아도 여기저기 찔러 보면 한 명은 걸립니다 ^^


다들 비슷한 거지요.


유명한 막걸리 집이나, 족발집은 가보면 꽉 차 있고, 줄을 서야 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빗소리를 듣고, 비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실 수 있는 바깥 자리였습니다.


차가 잘 다니지 않는 곳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지요.

빈 속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쭈욱 밀어 넣으면 하루의 체증이 쑤욱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보기 싫은, 이기적이면서 겉만 친절한 척 하는 사람.

끝내고 끝내도 계속 쌓여 있는 일.

후덥지근한 날씨까지.


이래서 과거에 스트레스로 울화병 생긴 사람에겐, 시원한 탁주 한잔 먹이라는 말이 있었나 봅니다.


요즘은 ‘사이다’ 같다는 말을 하지요.


그렇게 한잔 때려 넣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금방 만든 뜨끈한 파전을 아무렇게나 찢어서 간장에 ‘탁’ 찍어서, 입에 야무지게 ‘앙’ 하고 구겨 넣으면 왜 그렇게 맛있을까요.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막걸리에 취하고,

이야기에 취하고,

빗소리에 취하다 보니,

그렇게 둘이서 8병을 비웠나 봅니다.


제가 왜 영탁의 ‘막걸리 한잔’을 좋아하는지 아시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어렸을 적 이야기지요.


요즘은 퇴근하고 나면 피곤해서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기 바쁩니다.


술은 커녕, 내 몸도 귀찮아지고,

비 오면 더 늘어지니까요.




요즘 이래저래 바쁘다 보니, 브런치 글을 예전처럼 자주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설렐 때가 제일 재미있지요.


거의 매일 쓰며,


조회수 폭발도 몇 번 당해보고,

구독자 급등 작가도 되어보고, 오늘의 작가도 되어 보고 좋았지요.


그 기세로 문단에 등단도 하고, 출간도 하고,

돈 되는 글쓰기 플랫폼도 해보고 말이지요.


그런데, 그것도 몇 번 해보니,

돈이 안 되어서 그런지, 예전 같지 않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제 글이나 브런치 북이 어디에 걸렸는지, 조회수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돈 되는 것도 아니고,


이래서 브런치 하다 사람들이 떠나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런 건가 ‘


하는 생각이 들곤 했지요.


연애수필도 퇴고를 마무리 하고 업로드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갑자기 현타 비슷한 게 와서,


‘아이고, 내가 나이 먹고 이런 글 쓰고 있는 게 맞나?’


하는 회의감도 솔직히 조금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돈 되는 전문 분야에 좀 더 치중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달랐습니다.


요즘 아침에 해가 빨리 뜨지요?


그래서 여름엔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하라는 말이 있지요.


오늘은 평소보다 더 일찍 눈이 떠져서,

출근을 더 빨리 했습니다.


요즘은 시차 근무제가 있어서 일찍 출근하면 더 일찍 퇴근할 수 있어 좋아졌지요.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한산한 지하철.


콩나물 시루떡이 되어서, 바로 옆에서 콜록콜록하고 큰 소리로 전화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이어폰으로 황급히 귀를 틀어 막지요.


상념은 커녕,


‘빨리 내리고 싶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는 생각 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아~ 살았다.’


그것도 잠시.


도심에서 모두 내리는 사람들에 떠밀려 걸으며, 앞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니 출퇴근 스트레스라고 하고,

재택근무를 하면 시간 절약하고, 스트레스가 줄어서, 워라밸이 더 확보된다는 말을 하지요.


재택근무 조건이 연봉 천만 원 이상의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찍 일어나서 한산한 지하철에 있으니,

저절로 뭔가 영감이 떠 오르더군요.


바쁘고 치이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고요함을 맞이하니,


‘아, 그동안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은 이런 것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쓰고 싶은 내용을 적다 사무실에 왔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숫자도 적고, critical 한 내용도, 급한 조치가 필요한 내용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순조로울리가 없는데.’


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하는 무슨 이벤트에 당첨되었다고 나름 고가의 기프트콘을 보내준다는 메일도 있습니다.


‘신기하네.

내 인생에 이런 일은 별로 없는데.‘


그러고 있는데, 휴대폰에 카톡이 옵니다.


”카톡 왔쇼.“


읔, 진동으로 돌려 놓았어야 했는데 ㅎ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다행입니다.


친구 녀석이 별 다방 까페라떼 쿠폰을 보내줬네요.

기특한 녀석 같으니라구.


조금 오래 앉아 있어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다 싶어,

그 길로 회사 옆 별 다방으로 갔습니다.


오늘따라 왜 이런 걸까요?


다른 날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줄 서서 기다리면서,


‘내 돈 주고 사 먹으면서 이렇게 오래 기다리면서 돈 써야 하는 건가.’


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도 없고,


다른 때 같으면 뒤에서,


‘왜 빨리 안 시키고 꼼지락 거려.

뒤에 사람들 줄 서 있는 거 안 보여.‘


라는 속마음을 여실히 얼굴로 보여주며 불편하게 하는 사람도 없네요.


여유 있게 시켜서 시원하게 첫 모금.


캬아~

역시 막걸리나 커피나 첫 입이 제일 맛있습니다.

막 끓인 라면도 그렇구요.


그렇게 하루를 잘 스타트 하니,

속 잘 비우고 나온 만큼이나 하루가 잘 풀립니다.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고,

할 일 잘 마무리하고,

좋은 곳에서 불러주셔서

맛있는 것 먹으면서 좋은 말씀도 듣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 와중에 전에 한 가지 일을 하고 돈 받을 것이 있었는데,


‘언제 입금되나.’


하다 반쯤 잊어 버리고 있던 돈이 입금되네요.


비가 많이 오네요.

예기치 않게 적셔진 통장만큼이나 촉촉하네요.


하지만, 걱정 없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사무실에 우산을 예비로 놔뒀거든요.


지난 번에 갑자기 비 와서 편의점에서 싸게 산,

트렌디한 비닐 우산 말이죠.


볼품 없지만, 이런 날엔 그렇게 반가울 수 없습니다.


출처 : 계룡아씨 네이버 블로그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도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적네요.


맛있는 샌드위치에, 차까지 주셔서 배도 든든해서 밥 걱정 없으니 좋습니다.


이래서 사람은 모름지기 배가 불러야 한다고 하나요.


그동안 메모해 둔 글들이 정리가 되며,

글을 쓰고 싶어 집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걸어 오는데,

낯 익은 공간에,

낯선 의자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여서 냅다 앉았습니다.

사납게 내리는 비도 피하고, 잦아지면 갈 요량도 있었지요.


그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차도 보고,

빗소리도 들으며,


‘나는 뭐 하고 사나.

내가 하고 싶은 건 뭔가.

내가 진정 쓰고 싶은 글은 무엇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그냥 적었습니다.


내리는 비처럼 술술 잘 써지네요.


헛, 그런데 인생이 그렇게 술술 잘 풀릴 리가 없지요.


그냥 봐도 동네 양아치 같은 녀석이 담배를 입에 뭅니다.


이럴 땐 남이 피우는 담배 냄새가 왜 이렇게 싫을까요?


대놓고 싫은 티를 내며 째려 보고 헛기침을 크게 내었습니다.


담배 피우는거야 기호지만, 굳이 내 옆에서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의 기호도 중요하지만, 내 몸 건강, 정신 건강도 중요하지 않니?


라는 합리적인 설명을 길게 늘어 놓는 것보다,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행히 자기도 미안한지 그냥 가네요.


총총거리며 빗속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이 갑자기 정겨워 보이네요.


‘전화번호 알면 아메리카노 쿠폰이나 하나 보내줄걸.


아니야, 여자 헌팅도 아니고, 아저씨가 전번 물어보면 이상하게 생각할꺼야, 그냥 접자‘


갑자기 너무 싫은 티를 팍팍 냈나 하면서 조금 미안해지지만, 다시 빗소리를 들으며 글을 씁니다.


역시 글은 쓰고 싶을 때 써야 맛입니다.

마감에 몰려서 쥐어 짜면서 쓰다 보면 그 또한 현타가 옵니다.


막걸리에 파전도 편한 친구와 먹고 싶을 때 먹어야 맛있지요. 불편한 상사에게 붙잡혀서 개 끌려 가듯 가서 비위 맞춰주며 매번 되풀이하는 똑같은 이야기 들어주며 먹는 막걸리는 개나 줘버리고 싶습니다 ㅎㅎ


그렇게 한참을 이것 저것 생각하고 적다 보니, 비가 소강 상태로 가고 있네요.


비가 잦아드는 이때.


이제 집으로 갈 시간입니다.


비가 쏟아 부을 땐 잠시 쉬어가도 좋습니다.

기다리다 보면, 이렇게 비도 쉬어 갑니다.

이런 것이 인생이고, 그래서 삶의 쉼표라는 여유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집에 가서 젖은 양말과 함께 하루의 피로를 벗어 던지고, 샤워를 하며 머릿 속 스트레스도 다 씻어 내렵니다.


그냥 제가 바라는 건,

이렇게 쓰고 싶을 때 쓰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비 오는 날엔 수채화도,

배민도 아닙니다.


바로 글쓰기입니다.

브런치에선 말이죠~


이만하면 브런치에서 조회수 올려주신 것에 대한 밥값은 한 거지요? ^^;


그 와중에 새로운 분들이 제 브런치 북도 좋아해주시고, 연애 수필엔 현실감 있다는 칭찬도 해주셔서 마음 고쳐 먹고 잘 써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칭찬은 중학 시절,

고래 잡은, 이상 작가도

춤추게 합니다 ㅎ


오늘은,


TV를 보는 것도,

넷플릭스를, 유튜브를 보기엔 아까운,

그런 날입니다.


글쓰기 딱 좋은 날입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대문 사진 출처 : 짱구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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