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에 대한 불만은 여기저기 넘쳐납니다.
다양한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그 이야기 일일이 다 하려다가는 날밤 샐 정도지요.
축약해서 근본적인 이유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남의 돈 받고 시키는 일 하는데 좋기만 하겠냐?”
맞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는 게 아니라,
(심지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하다 보면 지겹기도 하고 지치기도 합니다. 그래도 밥 벌이 때문에 하기 싫은 일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보단 백번 낫지만요.)
때로 하기 싫은 일도 시키면 해야 하고, 잘 했는지 보고하고 검사까지 받아야 합니다. 안 맞아서 틀어진 상사에게 되지도 않는 지시를 받으며 comment 랍시고 이상한 소리를 늘어 놓아도 들어주고 받아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사는 여러 사람이 모인 위계가 있는 조직이고 취업규칙을 포함한 rule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돈 내고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지요. 내가 돈 내는 경우에도 맘에 안 드는 경우가 있는데, 돈을 받으면서 시키는 일을 할 때는 오죽하겠습니까.
지금 하는 일이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고, 리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일하고 성과를 내고 만족스러운 보상까지 받으면 참 좋겠지요. 그래서 저녁에도 늦게까지 일하고 퇴근하고 나서는 설레서 다음 날 아침이 빨리 밝았으면 좋겠다는 사람.
주위에서 많이 보셨나요?
다들 아시다시피 그런 경우는 무척 쉽지 않습니다. 한 때 그럴 수 있지만, 직장생활 내내 그런 사람은 드물거라 생각합니다. 2천만 직장인 중 2000명 정도 될까요? 그건 너무 심한가요? 한 2만 명 정도까지는 안 될 것 같습니다. 1000 명 중 1명 꼴이지요. 이 정도도 쉽지 않을 거라 봅니다.
요즘은 유연근무제나 재택근무 등이 도입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9-6, 주 40 시간 정해진 시간에 사무실에 앉아서 지시를 받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근로 의무라는 것으로 그 시간에 다른 데 가서 딴 짓 하면 ‘근무지 이탈’ 등으로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적성에 진짜 잘 맞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선택해서 하더라도, 회사라는 조직에서 단언컨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지속적으로 좋은 성과가 나오면 그럴 수 있겠지만, 사실 그러기도 힘들고 시장 환경의 변화나 조직의 목표나 방향에 따라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할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리더가 이상한 짓을 하자고 해서 억지춘향 격으로 참고 해야 하는 경우도 참 많지요.
더욱이, 조직을 만든 이유인 해당 사업을 하기 위해, 사람들과 협업도 하면서 회의도 하고 회식도 하며 인간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서 나와 맞다고 생각해서 사귄 친구들도 맘에 안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동료를 내가 고를 수 있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안 맞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지요. 흔히 말하는 직장 생활에서의 bad luck 이란 어찌 보면 피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제목은 회사 생활이 고맙다고 해놓고, 쓰다 보니 제목을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드네요. 부정적인 면을 그만큼 구구절절이 길게 쓰고, 여기저기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다 다루려면 책 한 권도, 영화 한 편도 부족한 것이 힘든 회사 생활의 현실입니다.
얼마 전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사내에서 무슨 이벤트를 한다고 메일이 왔습니다.
‘아, 바빠 죽겠는데 이런 쓰잘데기 없는 일 벌이면서 불필요한 메일 보내서 사람 또 귀찮게 하네.
뭐 또 서베이 조사 같은 거 있나? 좋게 써달라고 단도리 할려나 보네. 모여서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그냥 돈으로 주지. 이런 짓 할 돈으로 연봉을 올려 달란 말이다.‘
라는 말이 튀어 나오려다가,
“사장님이 직원들 위로 차원에서 하시는 거래요.”
라는 한 마디에 바로,
“그럼, 참여해야지.”
하고 참석을 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속으론 맘에 안 들었지만, 표정은 웃으며 사장님의 신이 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경품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당신은 좋겠수다. 회사 돈으로 사람들 모아놓고 폼 잡으면서 이렇게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할 수 있어서 ㅎ 그 맛에 사장하는 거고 그러려고 다들 아등바등 임원 되고 사장으로 승진하려고 야근까지 하면서 죽어라 일하고 필요하면 아부까지 하고 그런 것 아니겠소.‘
5000원 짜리 커피 쿠폰부터 5만 원짜리 커피 쿠폰 등이 상품으로 걸려 있었지요. 그리고 최고 상품으로 ‘사장님과의 식사’가 있었습니다.
‘저게 상이냐, 벌이냐.‘
이 행사 기획하는 놈들은 같은 회사 다니면서도, 희한하게 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한 번씩 느낍니다. 각 잡고 앉아서 불편하게 사장님이 사주시는 소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내 돈으로 맘 편한 사람들과 제육볶음 먹는 게 낫습니다. 회사에서 무슨 야망이 있는 것이 아니거나 공짜로 비싼 밥 먹는 것 좋아하는 것 아닌 이상 보통 그렇지요.
경품과 로또와는 거리가 먼 인생이라, 별 기대가 없었고 제발 ‘사장님과의 식사’는 걸리지 말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꽝‘ 걸려라 하며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5만 원짜리 쿠폰에 걸리니 기분이 급 좋아졌습니다.
이게 뭐라고.
앞으로 며칠 간은 커피 값 걱정은 없겠네.
아니지. 이거 팔아서 맛집 한번 가?
맨날 만 원짜리 김치찌개 먹다가 삼겹살 한번 먹겠네
하며 흐뭇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앉아 있는데, 옆 팀의 후배 녀석이 쭈뼛쭈뼛 다가옵니다.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으세요?
본부장님이 시간 되시는 분들 같이 회식하자고 하셔서요.“
아, 차라리 이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사장님과의 식사를 겨우 피했더니, 이번엔 본부장님이 저녁 먹자고 치고 들어오네.
이 사람들은 퇴근하면 집에 빨리 들어가서 가족들과 대화하고 밥 먹지. 뭘 이렇게 하루 종일 보고 있는 직원들하고 저녁 밥까지 먹자고 이러시나들.
집에서 사모님이,
‘밥 먹고 들어오지. 반찬도 준비 못했는데. (귀찮게스리)‘
하시는 말 들으며 눈칫밥 먹는 게 싫어서,
대우 받으면서 법카로 맛있는 것 먹는 게 좋아서 이러시는 건 알겠다. 근데, 그게 왜 하필 나하고 인가.
난 땡치면 그냥 집에 가서 편하게 밥 먹고 쉬고 싶다구욧!
이렇게 확 올라오지만,
말을 전하려고 온 후배가 무슨 죄가 있겠으며, 딴에는 챙긴다고 직접 와서 하는 말일수도 있으니 좋게 말합니다.
“안 괜찮지.
그래도 가야 하는 거 아니겠어? 밥 먹고 살려면 ㅎ“
하고 체념하며 당일 공지된 식사 자리에 끌려 갑니다.
마음은,
‘선약 있어요. (선약은 개뿔)
그리고 당일 약속 잡자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다들 스케줄이 있는데.‘
라고 하고 싶지요.
하지만,
‘여기 평생 다닐 것도 아니고, 이직해서 연봉 올리고 돈 벌어서 하고 싶은 일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다니는 어린 친구들처럼 하기엔, 다른 곳에서 잘 받아주지도 않는 나이가 된 사람에겐 쉽지 않습니다.
‘그래, 저녁 값 굳었다.
간만에 먹고 싶은 소고기나 실컷 먹자‘
하며 긍정 회로를 돌리고 체념하며 가서, 웃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먹습니다.
희한한 것이 막상 가서 먹으면 맛있고, 이야기 하다 보면 맨날 그 얘기가 그 얘기 같으면서도 가끔 새로운 이야기도 있고, 정보 교환도 되고 나쁘지 않습니다. 회사를 15년 이상 오래 다니다 보니 직장인이 정말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매일 적응 중이긴 하지만요.
잘 먹고 있는데 갑자기 옆 팀의 인턴 친구가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헛, 벌써 기간이 다 되었나.‘
싹싹하고 성실하게 다닌 친구 같았는데 정규직 전환이 잘 안 되었나 보구나 싶었습니다.
옆에 와서 한잔 따라준다며 인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눠보니,
“우리 회사에선 저를 원하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습니다.
워낙 기본이 잘 되어있는 친구라 앞으로 잘 될 거라 생각하고, 보란 듯이 더 좋은 곳으로 취직하라고 덕담을 건네고 말았습니다. 같은 팀도 아니고, 뭘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잠깐 사무실에 들어와서 정리를 하고 집으로 가려고 회사 정문을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아이고, 내일도 피곤하겠네.’
얼른 가서 씻고 자야지. 이런 마음 뿐이었지요.
그런데, 회사 앞에 그 인턴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 집에 안 갔어?”
“헛! 네, 사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아쉬워서 집에 가기 전에 한번 더 와 봤어요.”
그렇지. 그래도 매일같이 나와서 하루 종일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밥도 먹으며 거의 살던 곳을, 떠나면 아쉬움이 남지 하며,
“그래, 잘 들어가고.”
하며 피곤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그 친구가 회사 정문 사진도 찍고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정말 아쉬운가 보다. 고새 정이 들었나 보네.
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문득,
난 내일도 피곤한 발걸음으로 다시 여기 와야 하고,
아침에 저 문을 통과하며 하루를 어떻게 버티지 하는데,
누군가에게는 정말 다니고 싶은 소중한 직장이구나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순간 호주머니에 낮에 회사 이벤트에서 받은 5만 원짜리 커피 기프트 카드가 손에 잡히고,
‘그래, 때 되면 월급도 주고, 밀리거나 안 준 적도 없고, 가끔씩 이런 것도 챙겨주고 말이야.’
그래서, 오던 길을 되돌아가 그 기프트 카드를 그 인턴 친구에게 줬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챙겨주셔서.”
그게 뭐라고 갑자기 울 것 같은 표정에,
“더 좋은 곳으로 가던지, 다시 도전해서 우리 회사에 와서 같이 또 잘 해보자고. 열심히 해봐, 파이팅!“
하고 돌아왔습니다.
한결 마음도 편하고, 그 친구 덕에 회사에 대한 고마움이 쓰나미까진 아니고 소소하고 잔잔하게 밀려 왔습니다.
어차피 회사에서 월급 외적으로 받은 걸, 회사와 관련해서 쓰고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회사에 한 유능한 후배가 있습니다.
회사에선 보통 일 잘 하는 사람에게 일이 몰립니다. 결과가 보장되어 있고 일을 시켜도 인상 쓰거나 군소리 하지 않으니 계속 찾게 됩니다.
그 친구는 성격도 좋고 사람들과 관계도 좋아서 일이 더 많이 날아오고, 이런 저런 질문부터 커피 한잔 하자는 연락까지 자주 오니 하루 종일 정신이 없습니다.
하루는 가만히 보니, 한숨을 푸욱 내쉬며 지쳐 있는 게 보였습니다.
마침 다른 친구와 편의점에서 2+1 이길래 산 비타 500이 하나 남아서 그 친구에게 건넸습니다.
“힘들지?
이거 먹고 잠깐 숨 좀 돌리고 해.“
그리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일을 하고 있는데 그 후배가 메신저를 보내왔습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차 한잔 하실래요?“
그러자고 해서 나가서 커피를 마시는데 의외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저 내일 다른 회사에 면접 보러 가요.
근데, 이게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
능력이 부족한 친구들은 갈 데가 없어서 눌러 앉아서 아부를 떨며 민폐를 끼치는데, 이렇게 능력 있는 친구들이 떠나는 경우가 많아서 그때마다 무척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잡을 수도 없는 것이, 이직을 하며 더 높은 연봉과 대우를 받기도 하고, 다른 일을 하면서 성장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나야 너하고 같은 회사에서 오래 함께 일하고 싶지. 그런데, 한편으론, 너같이 좋은 녀석을 과연 이 회사가 품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더 나은 대우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이직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예전처럼 평생 직장 개념도 많이 사라졌지. 그리고 월급 적으면서 잘 올려주지도 않는, 미래 전망 없는 회사보다는 이직하면서 연봉 많이 올리고 유망한 회사로 가는 게 사실 낫다고 본다.
이직 제안을 아무나 받는 것도 아니고 일단 면접 보고 밖의 시장에서 니가 어느 정도로 평가받는지 객관적으로 이번 기회에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 면접 다 통과하고 final offer 받고 고민해도 늦지 않은 것 같다. 제시된 연봉과 대우가 낮으면 그냥 여기 다니면 되니까. 그 회사 drop 해서 안 간다고 해도 연봉 협상해서 대우가 안 맞아서 가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흔한 일이지. 그리고 능력만 있으면 그 회사 말고도 다른 기회 얼마든지 있으니 걱정 말고 함 해봐.“
그렇게 조언을 한 이후로, 인사 관련 사항이니 더욱 다른 사람에게 말을 옮기지 않았고, 그 후배에게도 먼저 본인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엔 묻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후배는 면접을 보았고, 붙었지만 이직을 하지 않았지요.
어느 날 저녁을 먹자는 이야기에 이직 관련 이야기를 할 것 같아 흔쾌히 그러자고 했습니다.
선배 대우 받으려면 밥 사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조언도 해주며 도와줘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안 하면서 선배 소리 들으려 하는 건 잘못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이지요.
“최종 면접엔 합격했는데, 제시하는 연봉이 기대보다 너무 낮더라구요. 협상을 하려고 그런 것 같은데, 저로썬 협상을 시작할 마음이 사라질 정도라서 바로 정리했어요.”
“거기도 budget (예산)이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유능한 외부 인재를 뽑으려고 하면서, 인정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오래 다닌 회사와 내부 network를 버리고 가는 친구에게 그 정도 인상 폭을 제시하다니. 그 회사와 특히 HR의 수준을 알겠다. 안 가길 잘했다.“
반주를 하며 조금 더 마시니 이 친구가 속 얘기를 합니다.
“선배 말이 맞더라구요. 제안도 받고, 최종 합격해서 연봉 제시도 받아보니, 마켓에서 (시장에서) 제 현재 position (위치)를 객관적으로 알겠더라구요. 요즘은 AI 역검 (역량 평가)도 하고 면접도 수차례 해서 힘들게 최종까지 합격했는데 제시하는 연봉이 고작 지금 받는 것에 비해 너무 적게 올려줘서 실망스러웠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내가 지금 당장 현재가 맘에 안 들던 찰나에, 들뜬 마음에 일단 회사를 때려치우고, 면접을 보고 offer (연봉과 대우 제안)을 받았을 때 이렇게 실망스러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말이예요. 퇴사를 물릴 수도 없는거고.
형님 말대로, 이렇게 말하면 조금 웃기지만 지금 다니는 우리 회사가 ‘보험’ 같이 느껴졌어요. 이직하려는 회사하고 대우가 안 맞으면 그냥 여기 다니면 되지. 하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너무 편한 거예요. 돌아갈 곳이 있는 거죠. 새삼 회사가 고맙게 느껴지더라구요.“
순간 그렇게 말하는 녀석과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난 선배가 얼마 전에 만나서 한 말이 겹쳤습니다.
퇴직 위로금을 받고 정년이 되기 전에 회사를 나간 선배가 회사 근처에 볼 일이 있다고 왔다며 점심을 먹자고 해서 만났습니다.
“잘 지내시죠? 식사 어디로 가시겠어요? 곰탕 한 그릇 하실래요?“
“괜찮으면 구내 식당 가서 먹자.”
“예?! 무슨 식판에 짬밥 타서 먹어요. 제가 살 테니까 맛있는 거 먹어요.”
“아니야. 오랜만에 가고 싶기도 하고. (돈도 아끼고)“
“ㅎㅎ 그래요 그럼“
희한하네.
구조조정으로 잘려서 나가면 저 같으면 구내식당은 커녕, 회사 근처에도 오기 싫을 것 같았는데 무척 의외였습니다.
그렇게 배식을 받아 밥을 먹으면서 그 선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회사 밥 먹으니까 맛있다. 더 맛있어진 것 같아.
회사 다닐 때가 좋았지. 그냥 시키는 일 하다가 시간 되면 밥 고민할 필요 없이 구내식당 내려와서 차려진 것 먹으면 땡이니까. 나 요즘 할 일 없어서 아침에 도시락 싸서 산에 가서 점심으로 먹기도 하거든. 회사 다닐 때 주말에 쉬면서 그렇게 먹을 때 하고 많이 다르더라. 쉴 때 한 번씩 그렇게 먹으면 운동되고 꿀맛이었는데, 거의 매일 그렇게 먹으니까 소태 같아. 먹다 보니까 목이 매이더라고. 나 뭐 하고 사나 싶기도 하고.
넌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갈 데 있어서.
난 아침마다 고민이야. 오늘은 어딜 가야 하나. 뭘 해야 하나. 불러주는 데도 없고 말이지.
올 여름엔 더 죽겠더라. 더워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데 전기세 올라서 에어컨도 계속 못 틀고. 회사 다닐 땐 에어컨을 너무 빵빵하게 틀어 놓아서 외투를 가져다 둘 정도였는데 말야. 그땐 그것도 불만이었는데 말이지. 요즘 애들은 그걸 두고 밖은 아프리카고 안은 시베리아라고 한다면서 ㅎㅎ
회사 다닐 때가 행복한 거야. 고마운 줄 알고 다닐 수 있을 때 잘 다녀. 회사 명함 없이 다니니까 어딜 가도 좀 위축되더라.“
요즘 힘들어서 죽지 못해 다니고 있었는데, 새삼 늘상 아무 생각 없이 먹던 식판이 새로워 보였습니다.
회사를 다니는 것이 무진장 행복한 일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힘들고 지치고 짜증 나는 일도 있습니다. 회사 밖에 나에게 더 잘 맞는, 좋은 기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성장하고 좋은 기회를 찾으려는 노력도 당연히 해야겠지요. 독립해서 내가 원하는 사업을 하는 것도 멋있는 일이구요.
하지만, 현재 다니는 회사가 내 삶의 소중한 터전이자 생계를 책임져주는 울타리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 선배의 마지막 말을 남기며 오늘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안은 전쟁터라고들 하지? 밖은 지옥이야.“
밖은 생각보다 지옥이 아니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옥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PS. 사장님이 이 글을 보셔야 할 텐데요.
블라인드는 가끔 들어가 보신다는데, 브런치는 누가 이야기하면 아마 먹는 거냐고 반문 하시겠지요? ㅎ
브런치 스토리를 알아서 들어오신다고 해도 제 필명을 모르실 것이니 소용이 없으려나요. 아니, 필명은 커녕 본명도 잘 모르실 수도 있겠네요 ^^;
월급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식판에 밥을 타 먹습니다. 선배 이야기를 듣고 보니, 회사 밥이 평소보다 맛있었나 봅니다. 식판 폭식을 하다니. 아직은 회사를 좀 더 다녀야 할 때인가 봅니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맛점 (맛있는 점심) 하셨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