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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Sep 10. 2023

신통 방통 선생님

삼국지 봉추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554


다른 글에 적은 것처럼, 이제 매주 일요일 글을 업로드 하려 합니다.


일요일의 남자가 되는 건가요? ㅎㅎ

(스페인어로 Sr. Domingo 입니다.

Sr. 는 영어로 Mr. 이고, Domingo가 Sunday 입니다.)


짜파게티도 제법 끓이는 편이니 한번 가보겠습니다.


오늘은 지난 번, 장비와 술에 관한 역사 이야기에 이어, 이번 글에서는 “방통” 이라는 분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신통 방통한 이분은, 촉한 유비군의 부군사로 삼국지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삼국지 최고의 책사를 말한다면, 단연 제갈 공명이고, 그와 대적한 위나라의 중달 사마의 (결국 최종 승자가 되었지요) 를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형주의 현인 수경 선생이 (사마휘) 말하기를,


“와룡과 봉추 둘 중 한 사람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와룡은 누워있는 용을 뜻하고 제갈 공명을 말하는 것이고,

봉추는 봉추찜닭이 아니라 봉황의 새끼를 뜻하는데, 와룡과 더불어 멋진 비유적 표현입니다.


(와불은 누워있는 불상을 말하지요. 태국 방콕에서 근무할 때 본 기억이 나는데, 항상 정자세로 앉아 있는 불상을 보다 나름 놀랐던 것 같습니다. 친근하면서 서민의 일상과 가깝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랬나 봅니다. 너무 근엄하기만 하고 천편일률적인 것보다 이런 것이 기념비적인 것이 되고, 이렇게 관광 볼거리로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이만 삼천포에서 돌아오겠습니다 ^^;)


봉황은 왕가의 상징으로 쓰일 정도의 영물로 통하며, 삼국지 최고의 지략가 제갈량과 같이 언급되니 방통은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봉추에 들어간 ‘추’ 자가 잘못 들어간 것인지 무척 추한 외모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래서 이름을 함부로 짓지 말라고 했나 봅니다.


예로부터 인재를 등용할 때 ‘신언서판’을 보라고들 했지요.


신체, 쓰는 말, 글 그리고 판단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일번으로 나오는 ‘신’에서 탈락이었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었지요. 요즘 유행하는 ‘외모지상주의’ 얼굴만 딱 보면 3초 안에 결정 난다는 첫인상이 그때도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방통은 능력에 걸맞는 자리에 등용되지 못했습니다. 오나라에서도 세련되고 똑똑한 주유와 비교되며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사실 재능으로 보면 주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인데 말이지요.


적벽대전 당시 연환계를 통해, 조조군 북방 군사들의 배멀미를 해결해 준다고, 배들을 묶어 놓아 화공을 받았을 때 큰 혼란을 만들고 작전을 성공하게 만들었지요. 매까지 맞으며 고육지계를 선보이고 선봉장으로 크게 활약하고 인정받은 황개 정도로 큰 역할을 했지만, 방통은 중용되지 못했습니다.


유비에게 가서도 공명이 써 준 추천서를 유비에게 보여주지 않고 만났다가 유비마저 외면해서 작은 고을인 뇌양현의 현령으로 임관 시킵니다. 와룡은 삼고초려를 해서 모셔오고, 동등한 수준으로 소문 나 있는 사람은 제 발로 찾아왔는데도 현령이라니요. 국무총리를 시킬 사람에게 군수 자리를 준 것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방통은 뇌양현에 가서 일은 미뤄두고 술 마시고 놀다가 고자질을 당해, 전편에서 다룬 무서운 장비가 혼을 내주러 쫓아가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방통은 ‘이까짓 작은 고을의 일’ 하며, 반나절만에 그동안 밀렸던 일을 모두 처리해 버리고 장비는 놀라게 됩니다. 머리가 부족한 장비니 머리 좋은 방통의 수준에 혀를 내둘렀겠지요.


어쩌면 이런 이야기도 방통의 뛰어난 면을 보여주기 위해 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부터 중용되었으면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렇게 부군사가 된 방통은, 적벽대전으로 피는 손권이 흘리고, 실속은 그들이 챙긴 제갈량 그리고 유비와 함께 합니다. 이때가 사실 유비가 가장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반전과 아쉬움이 기다리고 있지요. (이미 결말을 알고 계신 분들은 감이 오시지요?)


형주의 유비는 좋은 기회를 잡아 천하삼분지계를 이루기 위해 서촉 땅의 유장에게 갑니다. 한중의 장로와 위나라 조조의 위협에 동족인 유황숙에게 도와줄 것을 요청했지만, 유장의 부하들은 작은 적을 막기 위해 되려 큰 적을 불러 들여 땅을 빼앗길까 노심초사합니다.


물론, 유비 측에서도 공명을 위시해서 형주의 유표 케이스처럼 망설이다 조조에게 뺏길 뻔 하지 말고 우리가 서촉을 빼앗아야 천하삼분지계 이후를 도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유비는 이번에도 어떻게 동족을 치느냐 면서 우유부단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입니다.


출정 때부터 문제의 가능성이 비치는데요. 서촉 출정 길에 제갈량은 가지 않고 형주를 지키고, 방통이 유비를 수행해서 출진합니다. (삼국지에서 공명이 가지 않으면 꼭 촉군에게 뭔가 문제가 생깁니다. 전의 글에서 말씀 드린 유비의 오나라 정벌길도 그랬지요.)


순조롭게 촉을 점령할 줄 알았지만, 지금도 험하기로 유명한 그 동네에서 쉽지 않은 진군이 계속되고,

별 운세도 잘 보았던 공명은 떨어지는 별을 보며 출정을 중지하라고 급히 전갈을 보내기도 하지요.


방통이 이를 보고 속단해서,

'내가 공을 세워 공명이 군사 자리를 뺏길까 봐 경계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자신도 별 운을 볼 줄 안다고 진군하자고 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방통은 유비를 안심시키고 진군을 했고,

촉의 맹장 장임이 숲 속에서 시행한 매복계에 걸려 결국 방통은 죽고 맙니다. (향년 36세)

그 숲의 이름은 '낙봉파'

공교롭게도 앞서 말씀 드린 봉황이 떨어지는 곳이란 의미였지요.

뒤늦게 숲의 이름을 알고, 공명의 예언이 진짜 였음을 깨닫고 도망가려 했지만, 비극을 피할 수 없었지요.


더욱이, 방통이 원래 타고 다니던 말이 문제가 있어, 유비가 딴에는 생각해 준다고 자신이 타고 다니던 말로 바꾸어 줬는데, 적군이 유비의 말을 보고, 저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유비니 집중사격하라고 해서 방통이 죽었다는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방통의 삶을 보면, 천재의 비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공명과 비교되며 그 안타까움이 더하지만,

공명도 결국 오장원에서 삼국 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향년 54세)


마지막까지 자신을 이용해서 안전하게 퇴각하도록 한 작전을 펼친 것이 이야기가 되었듯이,

방통의 이야기도 아쉬움을 함께 남기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못 생긴 책사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요.


바로,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라는 이정재의 대사로 유명한, 수양대군을 조선의 왕 세조로 만든 king maker 한명회입니다.


칠삭둥이로 (10개월을 어머니 뱃속에서 충분히 자라서 나오지 못하고 7개월 만에 나온 미숙아)

죽을 뻔 했지만, 유모의 도움 등으로 살아남아 키 작고 못 생긴 이미지로 많이 회자됩니다.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그려지기도 하는데요.


실제로는 키도 크고 준수하기까진 않지만 평범한 외모였다고 합니다. 아마 부관참시를 당했던 것처럼, 쿠데타를 일으키며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영의정 등 오랫동안 권력의 핵심에 머물며 미움과 시기를 받았기 때문에 못 생긴 이미지, 나쁜 놈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칠삭둥이, 못 생기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 계유정난의 설계자로서 최고 권력의 중심에 위치해서 세조와 사돈지간이자, 예종, 성종의 장인이 되는 드라마틱한 전개와 결과를 위해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는 여행 다니길 좋아하는 한량으로, 과거 시험에는 계속 낙방하다 37세에 음서를 (조상 덕에 관직을

차지하는 것) 통해 개성의 경덕궁직이라는 하급관료가 됩니다. 한양 출신으로 개성에서 근무하는 관료들의 모임 송도계에도 너무 낮은 지위라 멸시를 당하고 끼지 못할 정도였지요. 뇌양현 현령 방통이 그래도 더 낫나요?


하지만, 그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지요.

문종이 죽고 그의 아들 단종이 12세로 즉위하며, 수양대군 (훗날 세조가) 그 자리를 노립니다. 친구인 권람이 이미 수양대군 측 거사에 가담하고 있어 그 줄을 타고 수양대군을 만나 그의 책사가 됩니다.


수양대군이 그를 보고 ‘그대는 나의 장자방‘이라고 했을 정도지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책사 장량을 말하는 것입니다.

태조 이성계에게 정도전이 있고, 태종 이방원에게 하륜이 있는 격이지요.


그렇게 그는 인생에 모험을 걸었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살생첩을 만들어 계유정난 당시 많은 사람을 죽였고, 유명한 충신 사육신을 만든 것도 그의 집요한 의심과 감시 때문이었지요. 지방의 궁직에서 공신이 되고 나중엔 영의정까지 되고 왕가와 사돈을 맺었으니 말입니다. 방통과는 달리 성공해서 권력을 누리고 72세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말년엔 요즘 핫한 ‘압구정’을 지어 권력에 배제된 채 한량의 삶을 살았습니다. 결국 인생은 그렇게 돌아와 젊었을 때의 한량으로 돌아온 것인가요? 같은 한량이지만 나이를 먹었고, 파란만장한 일들을 겼었고 권력 무상도 느꼈을 테니 감회가 새로웠을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시절엔 지기와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게 살았으니 어쩌면 그때가 더 좋았을려나요? ㅎㅎ

이런 걸 보면 ‘압구정 날라리’가 괜히 나온 노래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못 생겨도, 뭔가 부족한 면이 있어도,

인재를 알아보고 능력에 맞는 적합한 자리에 앉혀서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정도로 의미부여를 하며 이번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이야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


PS. 상산 조자룡도 원래 하북의 원소 휘하에 있다가 대우를 받지 못해서 공손찬 밑으로 갔다가,

결국 유비에게 가서 활약하고, 관우, 장비, 마초, 황충과 함께 촉의 '5호 장군'이 된 것을 아시나요?


만일 원소의 조직이 썩지 않아서 조운을 알아보고 중용해서, 후에 조조 군에 배속된 관우가 원소의 맹장 안량과 문추를 베었을 때, 조운이 원소군에 배속되어 관우와 한판 붙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조운이 이기고 병력 면에서 우위에 있던 원소가 조조군을 밀어붙여, 원소가 강북을 점령했다면 중국의 역사가 바뀌지는 않았을까요?


인재를 제대로 등용할 줄 아는 리더의 안목과 조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대문 사진 : 네이버 삼국지 유비 유허웨이 형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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