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서 삼국지의 봉추 방통 선생과 조선 시대 세종 (수양대군)의 책사 한명회에 대해 다뤘습니다.
수양대군이 한명회에게,
“그대가 나의 장자방이다.”
이라고 했다는 지점에서, 이번 글을 시작해 보려 합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603
역사는 한 나라와 한 인물에 대해 깊이 파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렇게 여러 나라를 넘나들며 비교학적 접근을 해보면 재미있습니다.
다 다르다고 하지만, 결국 사람 사는 곳이라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서로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장자방은 초한지에서 유방의 책사인 장량이지요.
다들 잘 아시겠지만,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먼저 조금 써보면,
우리네의 오랜 전통의 게임 중 하나가 장기와 바둑입니다.
그 중 장기는 잘 아시는 것처럼,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초한지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초패왕 항우와 한왕 유방 간의 천하를 놓고 벌인 한판 다툼을 두고 만든 것이지요.
삼국지에 비해, 초한지가 조금은 낯서실 수도 있는데, 이 이야기를 하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사면초가” “패왕별희”
많이 들어 보셨지요?
사면초가는 어려운 상황을 뜻하고, 패왕별희는 고 장국영님이 출연하신 영화로도 유명한데 이 두 가지가 연결된 것 아시는 분은 잘 아시지요?
사면초가는 동서남북에서 초가 즉, 초나라의 노래가 들려왔다는 뜻인데요. (네 방면에 초가집이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ㅎ)
역발산 기개세의 (산을 뽑아 올리는 힘과 세상을 덮는 기개) 항우가 삼국지의 여포만큼이나 힘은 센데 머리는 모자라서 책사 범증의 말을 듣지 않았지요. 초반의 더 많은 군사와 우세에서 지고 마지막엔 유방의 군사에 둘러 싸이게 되었지요.
그때 초나라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전략으로, 유방군은 마지막 일전을 불사하려던 초나라 병사들에게 그들 고향의 노래를 사방에서 들려줍니다.
마지막을 준비하며 독기가 바짝 올라있는데, 고향의 노래가 들려오면 어떨까요?
오랜 전쟁으로 인한 지침과 죽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어머니가 지어주시는 따순 밥 먹고, 가족과 함께 평온한 날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눈물도 나고 마음도 약해질 겁니다. 그렇게 초나라 군은 졌습니다.
그때 (초)패왕 항우가 최악의 상황에서 사랑하던 우희와 죽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극적인 상황에서의 애절함이 짙게 묻어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여포와 초선과 비슷하지만, 더 절절해서 중국에서 경극으로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오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힘과 세력의 우세를 점한 초패왕 항우를 물리친 유방의 책사가 장량입니다.
소하와 한신이 함께 '한초삼걸'로 불리지만, 수양대군이 한명회를 보고 당신은 나의 소하다. 한신이다 라고 말하지 않고 굳이 나의 장자방이다 라고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장량은 한나라 명문 출신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나라의 재상을 지냈지요.
한나라가 진나라에 멸망하고 장량의 집안은 몰락하게 되며 관직에도 오르지 못했다고 합니다.
진나라는 그 유명한 불로초를 찾아 헤맨 진시황의 그 진나라가 맞습니다.
그는 진시황을 죽여 복수하기 위해 암살 계획을 시행하는데 안타깝게도 실패하고 이름도 바꾸고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숨어 지냅니다.
그러다 진승 오광의 난 때 유방의 진영에 들어갔고, 후에 항우와 유방이 만난 그 유명한 ‘홍문의 회’에서 유방을 위기에서 구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유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시면 장량에게 얼마나 고마워하고, 이 사람을 아낄지 상상이 됩니다.
머리 좋고 눈치 빨라서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주고, 충성심 있고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 만나기 어렵겠지요? 머리가 똑똑하면 자기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 배신도 하는 세상에서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유방이 항우를 패퇴시키고 천하통일을 이루었을 때도, 유방은 장량에게 제나라 땅 중 3만호를 직접 골라서 봉읍으로 갖게 해주었는데, 장량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모든 공을 유방에게 돌리고 유방과 처음 만난 ‘유’ 땅을 봉지로 갖고 ‘유후’가 되어 은둔했습니다.
하지만 한신은 달랐습니다.
(참고로 한신포차 아닙니다. 지난 번 봉추 방통 편의 봉추찜닭에 이어 아주 그냥 ㅎ)
먼저 한신에 대해 살펴보면, 젊은 시절 평민 출신으로 가난하고 장사도 못해 남의 집에 붙어 먹으며 살아 많은 사람들이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때 불한당 다리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는 치욕을 맛본 고사가 있지요. (과하지욕)
나중엔 전쟁의 신이 되어 초한패권경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소하는 그를 국사무쌍이라고 불렀던 걸 보면 참 드라마틱한 인생입니다. (진삼무쌍 아시는 분?)
후에 한 고조에 의해 ‘상국’으로 임명될 정도로 신임을 받았던 소하의 천거로, 한신은 별동대를 꾸려 위, 대, 조, 연, 제나라까지 평정하고, 제나라에서 초나라를 급습하여 초한전쟁의 판도를 바꿔 패하기도 하고 수적 열세였던 한나라가 최종 승리자가 되는 전환점을 마련하고 마무리까지 짓게 됩니다.
잘 나갈 때 겸손했어야 했지만, 그는 장량과 달랐습니다.
한 고조가 한신에게 장군으로서 자신의 자질을 평가해달라고 하자,
폐하는 10만명 규모를 지휘하실 수 있다고 하고,
그러면 공은 어떻소? 하고 묻자,
그 유명한 ‘다다익선’ 이라고 답합니다.
그러면서 폐하께서는 많은 병사를 지휘하지는 못해도,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수들을 잘 거느리신다며,
하늘이 내린 분이라고 뒤늦게 유방을 치켜세우지만 의심 많고 변덕 심한 유방은 이미 삐진 상태였습니다.
그런 말 뿐만 아니라, 한 고조가 시켜줄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은데 공을 세웠고 필요하니 자신을 ‘왕’으로 봉해달라고 하고,
공동작전의 지시에도 참여하지 않아서 유방이 패하게 하는 등 한신은 신하로서 선을 넘어 버리기도 합니다.
여기서도 유명한 사자성어가 나오지요. 바로 ‘토사구팽’ 입니다.
장량이 한신이 공동작전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초왕이 없어지면 그의 지위가 흔들릴까 걱정하고 있어서라고 하며,
토끼 사냥이 끝나면 개를 삶아먹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합니다.
유방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병을 핑계 삼아 조회에 나가지 않고, 다른 장수들과 동렬에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인망을 잃어가다 결국 여태후를 통해 장락궁으로 소환되어 참수형에 처해지고,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게 됩니다.
일설에선 한신을 토사구팽에서처럼 끓는 물에 삶아 죽였다는 말이 있고, 한신이 소하를 마지막으로 믿고 갔다고 합니다.
소하가 ‘상국’에 봉해진 것도, 소하 자신이 천거하고 공을 세웠지만 말 안 듣고 나대는, 위험한 한신을 죽인 공로라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와 비정함을 여기서 다시 한번 느낍니다.
전쟁의 신이라는 평가를 받고 초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 공신이 되었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은 한신.
그리고, 전장에 나간 적이 없었지만 유방의 신임을 받았고, 모든 공을 유방에게 돌리고 홀연히 은둔하면서도 황제의 스승이 되기까지 한 장량.
지금도 허난성, 장쑤성, 후난성, 산둥성 등에 장량의 유적이 있다고 합니다.
너무 사자성어를 많이 써서 한글 문장으로 오늘 글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힘들겠지만) 박수칠 때 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