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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Sep 28. 2023

휴가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긴 추석 연휴를 앞두고 기분이 좋습니다.


10/2 월요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다 보니,

당초 4일 그리고 징검다리 후 하루 휴일이라 휴가를 써야 하나 고민인 사람들에겐 좋은 연휴가 되었지요.


총 6일.

365일 주말과 공휴일 그리고 연차를 빼고 출퇴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겐 황금 같은 시간이지요.


(방학이 있는 선생님들이 부러웠는데, 요즘 교권 실추 사건들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차가 올라가면 받는 돈도 꽤 되고, 연금도 좋아서, 초반에 월급이 얼마 안 되어도 특히, 여성 분들에게 안정적이고 좋은 직업이라고 알려졌었지요. 하지만, 요즘 여러 사건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 방학도 있고, 안식년도 있는 교수님이 좋은 직업일까요? 이것도 힘들게 박사 학위 따고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1년에 만 단위로 박사가 배출된다고 하네요.) 정규직의 말단인 조교수가 되려고 해도 무척 힘들고 처음엔 박봉이며, 시간 강사로 적은 돈을 받으며 보따리 장사 생활을 오래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쉬운 일이 없습니다. 더욱이, 가르치고 논문도 써 내야 한다니. 뭘 하고 사는 게 제일 좋을지)


휴가가 길다 보니 해외 여행도 많이 간다고들 하고,

국내 여행지 숙박 시설은 잡기도 힘들고 잡아도 무척 비쌉니다. 이런 저런 꼼수와 상술로 광고하는 금액보다 더 큰 경우도 있구요.


어떤 분들은 6일 동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상한 푸념마저 하시는 분도 있으셨지요.


더군다나, 연휴를 보내고 3일만 일하면 또 다시

10/9 월요일 한글날까지 쉬는 3일 연휴가 기다리고 있어 마음도 편하고 설레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기사를 보니, 10/2에 쉬지 못하거나 연휴 기간 동안에도 일정 시간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거의 절반 가까이 된다는 내용을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명절인데.

다들 쉴 때 푹 좀 쉬어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솔직히 그래도 나름 괜찮은 회사 다녀서 이럴 땐 잘 쉬게 해 주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기사에서 큰 회사들은 쉬는 경우가 많은데,

쉬지 못하는 곳들은 작은 회사와 같은 곳이 많다고 하는 말을 들으며, 잘 쉬는 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명절을 맞이해서 그동안 연락이 소원했던 친구들에게 명절 인사 겸 연락을 했습니다.


“잘 지내지? 연휴 잘 보내.”


“응, 너두. 별 일 없지?”


“그냥 그렇지 뭐. 넌 어때?”


“난 바쁜 일 끝나고 지금 휴가야.”


“엥? 오늘 9/27 수요일인데, 추석 연휴는 28일 목요일부터잖아. 휴가 냈나 보네.“


“아~ 여름 휴가 제대로 못 써서, 9/22 금요일까지 일하고, 23일 토요일부터 쉬고 있어.

출근은 10/16에 해.“


”헐~ 도대체 며칠을 쉬는 거냐?

그래 가지고 일이 되냐?“


“우린 다 이렇게 쉬어.

일 마치고 할 일 없으면.


급한 일 있으면 중간에 노트북 켜고 일 하면 되긴 하는데, 생각보다 그런 일은 거의 없어.

한 번씩 회사에서 전화는 오는데, 근무 중인 사람이 보통 대신 처리해 줘. 내가 일하고 다른 사람이 휴가 중일 땐 내가 그렇게 하고.“


세어보니 calendar day 기준 24일이었습니다.

15년 넘게 회사를 다닌 제 연차가 20일 조금 넘습니다. 회사를 오래 다니지 않은 친구들이 연차가 20일이 넘는다고 하면 부러워 하기도 했는데, 이런 게 상대적 박탈감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외국계고 잘 나가는 회사라고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

더군다나 연봉도 나보다 더 많이 받는데.


(주의 : 외국계라고 다 그런 것 아닙니다.)


겨우 6일 쉰다고 좋아하면서,

그 6일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24일 연휴 앞에서 갑자기 저는 초라해졌습니다.


더욱이, 연말되면 크리스마스 기간과 연초를 포함해서 보통 2주, 길게는 한달을 쉬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 그랬죠. 저는 잘해야 일주일인데 말이죠.


사람은 평등하다고 했는데, 세상은 묘하게도 돈을 더 많이 받는 사람이 더 많이 쉬는 경우까지 있었지요.


보통 처음엔 시간과 돈이 동시에 없다가, (초짜라 연봉이 낮은데 잡일이 많아서)

점점 돈은 많아지고 시간은 없어집니다. (연차가 쌓이면서 연봉은 올라가는데 할 일은 더 많아지지요.)


그리고 어느 수준이 되어 좋은 조직에서 좋은 자리의 관리직 등이 되면 아랫사람들이 일을 잘해주면 시간도 많아지고, 쌓인 연차와 관리직 수당까지 받아 돈을 더 많이 받게 됩니다.


그러니 긴 휴가 동안 국내 여행도 다니지만, 해외 여행도 연 2회는 꼭 나간다는 말이 있는 것이죠. 그 친구를 보면 적어도 500, 보통 1-2천, 가족들 같이 나가고 현지와 면세점에서 쇼핑 좀 하면 그 이상을 쓰기도 합니다.


제가 올해 초 연말 정산을 하다 보니, 신용카드, 체크카드, 현금 영수증 합산 금액이 천몇백만원이더군요. 한번 해외 여행을 가면서 일년동안 제가 쓰는 돈보다 더 많이 쓰는 것이지요. 헛웃음이 납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런 여행을 크게 부담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천만원 단위가 넘는 월급이 매달 들어오고, 매년 성과급을 받을 땐 보통 몇천, 많으면 몇억을 받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여유있게 푹 쉬고 나면 사는 맛도 나고 일도 더 잘 되겠지요? 부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이런 순진한 생각을 한 때가 있었습니다.


돈 많은 사람은 많이 벌고 여유가 있으니까 은행에서 돈 빌릴 때 이자를 높게 받고,

없는 사람들은 힘드니까 이자를 적게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저소득층이나 취약 계층을 위해 저이자 대출을 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소액이고,

그마저도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사람들이 은행에서 받는 우대 금리보다도 높습니다.

실제 대출을 받아보면 높은 금리인 경우도 많구요.


집을 사면서 신용 대출을 받을 때 좋은 금리를 받아 잘 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1 프로 대 금리로 시중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한 고위직 분을 보며 좌절한 적이 있습니다.


“부럽다. 야”


“부럽긴.


요즘 강남에 pay doctor 하는 의사들 한 달에 얼마 버는지 알아?


(액수는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놀라실까 봐.)


그렇게 쎄게 받고 1년 일하고 그 돈으로 몇 달 쉬고 다시 일하는 친구들도 있어.


아니, 6개월 일하고 몇 달 쉬는 친구들까지 있다구.“


순간 멍 해졌습니다.


내가 그동안 잘못 산 것은 아니었을까.


의대 부럽지 않게 문과지만 괜찮다고 하는 과 나와서 큰 회사에서 성실하게 다니고 해외 가서 고생도 했지만 수당도 받고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딴 세상 이야기가 버젓이 저렇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해외에 있을 때, 자동차 부품 공장이 없는 나라에서, 한 분이 중국으로부터 컨테이너 선으로 부품을 사 오는 일을 하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돈을 내고 물건을 사며 운반할 배를 계약하고 선적과 통관을 업체를 써서 진행하고, 배가 도착하면 물건을 빼서 자동차 공장과 정비 회사 등에 파는 일을 하셨지요.


몇 억 정도의 자본금이 필요했지만, 워낙 수요처가 확실해서 6개월만 그렇게 고생하면 나머지 6개월은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여행 다니며 논다고 해서 부러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돈을 몇 억씩 쏟아 붓고 계약하고 운송, 통관 및 판매까지 일하고 리스크까지 짊어지는 사업도 아니고, 그냥 6개월 고용되어서 일하는데 이 정도라니, 이래서 의대 쏠림 현상이 나오는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어렵게 의대에 들아가고, 예과, 본과, 인턴, 레지던트, 군의관까지 공부 많이 하고 고생한 것은 알겠습니다. 국가 고시도 통과해야 하고, 의사 면허증이 장난인 줄 아느냐는 말도 알겠습니다. 히지만, 저도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괜찮은 직장도 다니고 있는데, 너무 차이가 난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럼, 너도 의대 가지 그랬냐?

이런 말이 나오는건가요 ㅎㅎ


그런 말은 왠지,

그럼 니가 사장하지 그러냐

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립니다.


SKY 신입생들이 잘 들어간 명문대를 때려치우고 다시 수능을 준비하고,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외모가 조금 떨어져도 의사라면 갑자기 인기가 올라가는 걸 보며 그런가 했는데, 추석 연휴를 이야기 하다 이렇게 소위 말하는 현타가 왔습니다.


6일과 24일을 비교하다,

6일과 6개월을 비교하게 되다니요.

그럼 그 6일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많은 분들은 뭐가 되나요.


회사에서 장기 휴가를 쓸 수 있는 건 해외 주재원으로 나갔을 때 4개월 동안 고생하고 들어와서 2주 쉴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 휴가만 기다리며 해외에서 힘든 일도, 외로움도 견디며 일했었지요.


다른 장기 휴가가 있다면, 근속휴가가 있습니다. 10년 다니면 며칠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있지요. 여기서도 갈리는데, 어떤 회사는 10년 다니면 3일, 5일 정도 쉬게 해 줍니다. 좀 더 길게 쉴 수 있는 회사는 10일 정도 휴가기간을 주지요. 정말 좋은 회사는 1개월, 길게는 3개월 이상 유급 휴가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회사는 이름만 대면 아는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인데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그런데, 그 회사의 몇 달 짜리 휴가를 부러워 하던 저에게, 매년 6개월 일하고 그때 번 돈으로 6개월씩 쓰고 쉰다는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요즘 어린 친구들 중엔 몇 달 편의점에서 일하고, 그 돈 쓰고 쉬면서 논다고 하는데, 쉬는 기간은 비슷할지 몰라도 의사와 비교하면 수입은 10배 정도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편의점 알바하고 쉬는 친구들은 별로 부럽지 않았지만, 의사의 6개월 휴식은 부러울 수 밖에요.


이 얘기를 회사 후배에게 하니, 돌아오는 말이

가관입니다.


“형, 그거 아무것도 아니예요.


우리 회사 결혼하면 휴가 일주일 주잖아요. 신혼여행 다녀오라고.


제 친구 신혼여행 한 달 넘게 다녀왔어요.


회사는 다니기 싫고 마땅히 할 건 없어서 아버지가 강남에 있는 건물에 와인 바 하나 차려줘서 그거 하고 있거든요.


똘똘하고 성실한 매니저한테 가게 맡겨 놓고 그렇게 여행 다니고 싶으면 다니고 그래요.

보면 그 와인 바로 크게 돈 벌고 싶은 생각도 없어 보이더라구요 ㅎㅎㅎ“


허, 그러네.

돈 많으면 생계 걱정할 필요도 없고, 그 돈 쓰면서 일년 열두달 계속 휴가네 ㅎㅎㅎ


결국 또 돈인가요?

자본주의 사회라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은 일들이 기승전 돈으로 귀결되는 걸 자주 봅니다. 그래서, 돈 돈 돈 한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즐겁게 연휴를 즐겨야 하는데, 좋은 마음에 친구와 전화한 게 잘못이었나 봅니다.


모르면 속이라도 편한데, 현실을 낱낱이 알고 나면 이렇게 불편해지곤 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불편한 진실을 알려드려서요.

하지만, 알아야 바꿀 수 있겠지요.


저야 이미 반쯤 버린 인생.

이제와 돌이킬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고 기회가 있으신 분들, 특히, 젊은 분들은 이런 현실을 잘 아시고 미래를 설계하시며 노력하셨으면 합니다. 저처럼 나중에 현실을 다 알고 후회하지 마시구요.


저 또한 이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삶을 바꿀 수 있다면 바꾸려 노력해 보려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순 없지만 작게라도 기여할 수 있으면 할 수 있는 걸 해보려고도 하구요.


이래서 인생은 쉽지 않다고들 하나 봅니다.


더군다나, 이 아름다운 자본주의 세상에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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