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만의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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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승부는 시작 전에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5차전을 앞두고 어떤 분석에선 LG가 이기고 통합 우승할 확률을 93 퍼센트로 보기도 했습니다.
아시지요?
십중 팔구 라는 말.
80-90 프로라면 거의 그 일이 일어난다는 건데,
93 프로라면 거의 이변은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사실 그랬지요.
3차전에서 격전 끝에 9회 투 아웃에 역전 홈런을 맞고 KT가 고개를 숙였을 때,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힘들어도 다시 힘을 내려면 흐름을 타야 하는데, 되려 좌절을 해버렸으니, 다시 일어나려면 마법이 필요 해야 했지요.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KT는 NC라는 파죽지세의 팀을 2게임 지고 나서, 3게임을 내리 이기며 한국 시리즈에 극적으로 올라왔습니다.
대단한 성과임에 틀림 없지만, 열심히 하면서도 수세에 몰리다가, 죽어라 열심히 해서 뒤집은 것이지요.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그리고, 다시 만난, 더 강한 적. 정규 리그 1위 LG
우수한 선발진과,
공략하기 어려운 중간 계투진,
그리고 입증된 팀 타격.
푹 쉬면서 혈전을 치르고 있는 상대들을 보며 웃음 짓고 있었을 겁니다. 훈련을 하며 칼을 갈면서요.
KT는 뒤집기 3연승으로 기적적으로 한국 시리즈에 올라와서, 잠시 쉬고 가진 1차전에서 흐름을 타고 LG를 이겼습니다.
3-2로 격전 끝에 이겼지요.
하지만, LG는 29년 만의 기회를 호락호락 방심하며 날릴 정도의 그런 팀이 아니었습니다. 1차전에서도 실력을 보여줬지만,
어, 이래선 안 되겠는데.
하며 각성을 하고 2차전에는 더한 격전을 펼쳤지요.
KT가 1회에서 4점을 먼저 냈지만, LG는 끈질기게 공격했고, KT 투수들의 공은 점점 약해졌습니다. 피로 누적이 눈에 보였지요.
2차전에서 4-5로 신승한 LG는 기세를 잡았고,
3차전 드라마 같은 난타전에서 9회 오지환의 투아웃 쓰리런 역전 홈런을 지친 KT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야말로 악전 고투였는데, 다 이겼다고 생각한 게임을 졌을 때 충격과 이어온 피로감은 어마어마 했을 것입니다.
홈런을 맞고 털썩 주저 앉은 김재윤과,
전 회에서 경기를 뒤집는 홈런을 때려 낸 박병호의 촛점 흐린 눈빛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었지요. (8-7 LG 승)
4차전은 KT의 피로와 좌절이 드러나는 경기였습니다.
계속 점수를 주다 7회 한국 시리즈 MVP 오지환의 쓰리런 홈런을 포함, 대거 7점을 내주며 KT 투수진은 무너졌지요. 야구는, 단기전인 한국 시리즈는, 투수 놀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한 경기였습니다. 패전투수가 된 선발 엄상백을 비롯, 김재윤, 김영현, 김민, 주권, 배제성까지 중간 계투진 모두 짧은 시간 동안 점수를 허용하며 피로와 흐름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결과는,
15-4 LG 승리
LG는 방심할 생각이 없었고, 지친 상대를 끝까지 밀어붙였고 KT는 대패했습니다.
개인적으로, 3차전에서 역전패 당했을 때 이번 한국 시리즈 승부는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4차전에선 그걸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지요.
5차전을 앞두고, 힘이 있고 상승세를 탄 LG가 한 게임만 잡으면, 정규 리그와 한국 시리즈 통합 우승의 금자탑을 들어 올릴 것이라고 모두 말했습니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었지요. 지칠 대로 지친 KT 투수진이 최고의 팀 타격을 보여주고 있는 LG를 3경기를 연속으로 틀어 막고, KT 타자들이 강력한 LG 선발과 계투진을 무릎 꿇릴 가능성은 개인적으로 7 프로가 아니라, 0.7 프로 이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야구는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기적적인 뒤집기 명승부를 기대하며 5차전을 보았습니다.
오늘 지면 끝이라는 각오로 KT는 토종 ACE 고영표를 투입했지요. LG는 잠실 홈 경기에서 유독 강하다는, 맥주를 사랑하는 남자 켈리가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그 둘이 아니었지요.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 박해민이었습니다.
3회 박해민은 적시타를 기록해서 0-0 균형을 깨며 3-0으로 앞서 가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합니다.
그리고 박병호가 수비 실책을 할 때, 4회엔 다이빙 캐치를 해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켈리의 포효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지요.
와~ 쟤 때문에 살았다. 아자~
투수는 스스로 경기를 control 할 때도 좋지만, 동료들이 멋진 수비로 피안타나 피홈런을 막아주면 그렇게 좋아 합니다. 믿음직한 동료애가 피어나는 순간이지요.
여기서 그치지 않고, 5회 살아난 김현수의 안타 때는 멋진 주루로 추가 점수를 내는 데에 기여했습니다.
그야말로 잠실벌을 자기 안방처럼 휘젓고 다녔습니다.
그 활약을 보는 KT 선수들과 팬들은,
'신났네, 신났어.
혼자 다 해먹어라.‘
하면서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지요.
어쩌면, 상대라서 미우면서도,
‘근데, 진짜 잘하긴 잘하네.
얄미울 정도로‘
라며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KT가 5회에 1점 내며 따라 가려고 마지막 힘을 내보았지만,
그렇게 LG는 한 치의 양보 없이 5회에 2점, 6회 1점으로 앞서 나갑니다. (6-1)
그리고 켈리에 이어 나온 유영찬, 함덕주 중간 계투진은 갈 길 급한 KT의 마음은 몰라주고,
전혀 틈을 보일 생각이 없어 보였지요.
반면에, KT는 고영표가 5 실점하고, 이상동도 실점을 하며 흔들렸지요.
손동현도 점수는 주지 않았지만, 그 잘하던 친구가 그리 위력적이지 않았고,
박영현도 구위가 떨어졌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고 천만 다행 점수는 주지 않았습니다.
그에 반해, LG는 켈리가 한 점, 유영찬이 한 점 주긴 했지만,
KT 타자들을 쉽게 쉽게 공략하고 이닝을 빨리 접었지요.
갈 길 바쁜 KT 타자들이 회가 지날수록 힘들어 보였지요.
그리고 고우석의 등판.
KT가 7회 한 점을 내며, 6-2가 되어 있었지만,
4점 차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고 고우석도 이전 한국 시리즈 패배 때의 불안한 눈빛과는 달랐습니다.
9회 아웃 카운트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관중들의 휴대폰 카메라들이 눈에 띄게 보였었지요.
그 순간을 담으려는 기대의 순간이었지요.
LG 선수들도 밝은 표정으로 뛰어나갈 태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투아웃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친 공이 힘 없이 내야에서 잡히면서 경기는 끝났습니다.
우르르 몰려 나오는 LG 선수들의 29년 한이 느껴졌고,
저것이 팀이라는 거구나
라는 걸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화면에 잡힌 LG 팬 할아버지는,
추위와 밤 늦은 시간 그리고 나이도 잊은 채 엉엉 울고 계셨지요.
4승 1패.
LG의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염경엽 감독이 예상했던 6차전까지 가지도 않았지요.
3차전 9회 역전 스리런을 포함, 거의 매 경기 결정적인 홈런을 때려낸,
주장 오지환은 MVP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LG 선대 회장이 약속한 롤렉스 시계의 주인공이 되었지요.
구본모 선대 회장님이 1988년 당시 8천만 원을 들여 KS MVP에게 선물하겠다고 마련해 둔 롤렉스 시계였지요.
하지만, 오지환은 그 시계마저 회장님 유품이라며 구광모 현 회장에게 전달하겠다고 했습니다.
29년 만의 코시 우승과 롤렉스 그리고 박해민 등 많은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에게는 어제가 일 년 중 가장 슬픈 날이라고 합니다. 프로 야구가 끝나서라네요 ㅎㅎ
언젠가 LG가 우승한다고 나한테 돈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뭘 저렇게 죽자 살자 응원할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LG의 멋진 우승을 축하하고,
어제도 여운과 뒷풀이가 있었던 시간을 기억하고,
프로 야구와 프로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한번 다루겠습니다.
우승 감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염경엽 감독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우승을 이어가겠다며 명가 건설을 약속했습니다.
기분 좋은 김에 한 말인지,
희망사항인지,
진짜 그렇게 될 것인지
이곳에 기록해 두고 지켜보겠습니다.
기아 타이거즈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