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v LG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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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부진, 야구 선수들의 음주 파문 등으로 올해 프로야구는 죽 쑬 수도 있었습니다.
저도 사실 정규리그는 회사 일이나 다른 일들도 바쁘기도 했지만, 눈이 가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런지 리그 초반엔 TV로 지나가다 보아도 관객들도 생각보다 많아 보이지 않았어요. 아마 프로야구 역대 최다 관중 기록 경신과 같은 말이 안 나왔던 걸 보면 흥행이 예전만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시안 게임에서 초반엔 헤매다가 선전해서 결국 좋은 성적을 내고, 정규리그 막판 치열한 순위 경쟁을 하다 보니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시작했지요.
과천 경마장 같은 곳에 가보면 원래 그렇거든요. 처음 시작할 때 기대로 시작하고, 마지막 결승선에 다가올수록 순위가 정해지니, 함성 소리가 커져갑니다.
그리고 시작된 가을 야구.
역시 서사가 있는 팀들이 타이틀을 걸고 하는 단기전이 재미있지요. 왕가 재건을 위한 신임 이승엽 감독의 두산이 천신만고 끝에 와일드 카드 전에 올라왔고, NC가 SSG를 누르고 KT와 멋진 승부를 펼치며 분위기를 한껏 끌어 올렸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핑크뚱 작가님이 NC 홈구장 창원 쪽에 사시는데, 그쪽 분위기가 뜨거웠다는 말씀을 전해주셨지요.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저도 그런 분위기의 일원이 되어 본 적이 있어서 조금은 예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시리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요.
원래 한국 시리즈 티켓 구하기가 어려워서 불법 암표가 기승을 부리기도 합니다. 이번엔 100만 원 암표가 나올 정도였다고 하니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서 선수들이 추워서 경기를 제대로 하겠나 싶을 정도인데, 만원 관중들이 담요를 싸매고 밤 늦은 시간까지 구장에 가서 보시는 걸 보니 인기가 실감이 났습니다.
저도 매번 야구 글을 올리는 건 회사 다니고 다른 것도 하고 있어서 한국 시리즈 끝나고 나서 정리 글을 하나 올려야 겠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이번 시리즈는 재미있어서, 특히 어제 3차전은 너무 흥미로워서 붓을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는 분이 저에게,
“히야, 이번 경기는 저렇게 고생하고 덜덜 떨면서 봐도 재미있었겠다. 특히, LG 팬들은”
이라고 말씀 주셨는데 공감이 갔습니다. 그래도 전 실시간으로 본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
1, 2차전도 상당한 접전이었고 재미있는 경기였지요.
현역 한국인 최고 투수 중 하나라는 고영표와,
광고를 너무 많이 봐서 이름을 들으면 저절로 맥주가 생각나는 켈리가 선발로 등판한 첫 경기.
2-2로 팽팽히 맞서다가,
9회 KT의 문동현이,
150 킬로의 fast ball을 던지는 신뢰의 구원 투수 LG 고우석을 상대로 결승타를 때려내, 3-2로 승리합니다.
KT가 NC와 접전으로 지쳐서 어려울 거라는 예상을 보란 듯이 뒤집어 버렸지요.
고우석은 4차전에 8회에 나와서 9회까지 가지 못하고 교체되었는데, 그 자신감 넘치던 친구가 부담감 등으로 불안한 눈빛을 보이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마치 2002 월드컵 스페인 전에서 승부차기가 우리 이운재에게 막힌 호아킨의 눈빛이었어요.
포스트 시즌 KT의 필승 계투진의 선두인 손동현이 1차전 승리 투수가 되었는데, 4차전에선 한 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되었지요. 예상을 깨는 재미에 한국 시리즈를 보게 됩니다.
2차전도 접전이었지요.
KT는 마구맨 쿠에바스가 선발로 나오고, LG는 최원태가 등장했습니다.
KT는 1회부터 대거 4점을 뽑으며, 전날의 기세를
이어갔지요. 그 잘하던 최원태가 첫회부터 그렇게 두들겨 맞으며 바로 강판 당할지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요.
하지만, 29년 만에 한국 시리즈 정상을 노리는, 정규리그 1위 팀 LG는 쉽게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염경엽 감독은 고교 선배이자 전 직장 상사인 이강철 감독에게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겠다는 걸, 야구는, 특히 한국 시리즈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을 여지 없이 보여줍니다. 해태의 레전드 투수 출신 이강철 감독에게 말이죠.
이정용, 정우영, 유영찬 등을 적기 적소에 대거 투입하고, 함덕주는 한국 시리즈 승리 투수가 되고, 고우석은 세이브를 기록합니다.
그 사이 타선은 한 점 한 점 내며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따라갑니다.
오지환은 6회 쿠에바스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냈지요. 3차전 9회 투 아웃 상황에서 역전 쓰리런을 때려 낼 예고편이었을까요? 타자의 손맛과 감각은 이런 면이 있습니다. 4차전 이후에도 승부처에서 기대가 되는 이유지요.
포수 박동원은 8회 포스트 오승환이라 불리는 KT 박영현을 상대로 역전 투런 홈런을 쏘아 올립니다. LG 팬들 정말 야구 볼 맛 나겠어요 ㅎㅎㅎ
2, 3차전 이틀 연속 극적인 홈런 역전승이라니.
이러니 안 그래도 인기가 좋은데, 유광 잠바 물결과 어마어마한 티켓 예약율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
박동원은 이날 병살타를 친 적이 있었는데, 프로 선수들은 이런 실수를 만회하려고 절치부심을 정말 강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3차전에서 실책한 오지환이 결국 역전 홈런을 쳐내는 걸 보면요.
그렇게 우리의 박영현은 패전 투수가 되며, LG가 5-4로 승리하며 시리즈 균형을 맞춥니다.
불금에 맞이한 3차전.
1차전은 야근하느라 제대로 못 봤지만, 3차전은 다행히 제때 퇴근해서 밥 먹으면서 경기를 보기
시작했고,
반 건조 오징어에 맥주를 마시며 마지막까지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저녁 6시 반 시작한 경기가 밤 10시 반 정도까지 이어졌으니 대장정이었네요. 그래도, 중요한 승부처에선 눈을 떼지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가기도 했으니, 회사에서 일하면서 4시간이나 시험 준비하며 공부하는 4시간과는 왜 이렇게 다른지.
불금아! 오늘만 같아라!
LG 선발 임찬규와 KT 선발 벤자민의 투수전 양상으로 흐를 것 같았던 경기는 3회부터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서막의 불을 당깁니다.
3회 LG 용병 오스틴은 KT 벤자민을 상대로 3점 홈런을 쏘아 올립니다. 이날 이 홈런을 포함, 2안타를 더 쳤지요. 이 친구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KT 최강 투수들이 불안해 한다는 게 화면을 통해 느껴질 정도로 성적도 엄청 났지만 존재감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KT가 한방 맞았다고 물러설 팀이 아니지요. 그럼요. 파죽의 NC에게 PO에서 초반 2연패를 당하고 3연승으로 한국 시리즈에 진출한 것만 보아도 이 팀의 저력을 알 수 있습니다. 정규리그에선 꼴찌에서 2위까지 도약하기도 한 마법의 팀이지요. 3회 한 점, 5회 3점을 내며 경기를 뒤집습니다.
이때부터 경기는 예측할 수 없는 난타전 상황으로 갑니다. 보는 사람은 재미있지만, 투수들은 죽을 맛인 그런 경기였지요.
6회 홈런 포수 박동원이 나올 때가 되자 이강철 감독은 80개가 넘는 공을 던지며 다소 흔들리고 힘이 빠져 보이는 벤자민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당연히 그리 하는 게 맞았지요. 그리고 필승조 손동현을 투입합니다. 사실 이게 야구의 정석이지요.
그런데, 정석대로만 흘러가면 그게 야구인가요. 교과서지. 역시 이론과 현실은 달랐습니다. 무려 이번 한국 시리즈 1차전 승리 투수인 손동현이, 박동원에게 2점 홈런을 맞고 바로 강판 당합니다. 포스트 시즌에서 그렇게 멋진 모습을 보여줬던 손동현이 이렇게 굴욕적인 강판을 당하다니. 최고의 무대 한국 시리즈는 이렇게 살벌합니다.
그리고 올라온 이상동, 박영현은 선전하며 LG 타선을 잘 막습니다. 정규리그 1, 2위 최상위 팀 간 최고 무대에서 양보 없는 경기에서, LG 염경업 감독은 고우석 조기 등판이라는 강수를 띄웁니다. 이정용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고우석을 더 믿는다고 느끼는데요. 마지막을 책임지라고 마운드를 맡깁니다.
그런데, 아뿔싸 고우석도 결국 손동현 꼴이 되어 강판 당하고 맙니다.
그동안 잠잠했던 박병호가 한 건 해버립니다. 8회 고우석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날려 버리지요. 사실 박병호는 그동안 꽤나 부진했습니다. 대한민국 현직 거포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요. 이번 코시에서 LG 김현수도 그렇구요.
하지만, 이강철 감독은 박병호에게 강철 같은 믿음을 그대로 보여주었지요. 알포드를 7번으로 내리면서까지 말이지요. 오랜 경험을 통해 이강철 감독은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슈퍼스타 거포는 조용해도, 자기가 이름값 몸값 못하고 있는 걸 알고 있고, 절치부심하며 꼭 필요할 때 한방 터트린다는 걸요. 8회 홈런 전에도 박병호의 호쾌한 스윙에서 그런 면이 느껴졌습니다. 맞으면 넘어가겠구나.
그렇게 불안한 눈빛의 고우석이 홈런을 맞고 겨우 8회를 정리하고 9회로 넘어갔습니다. 2점 차 마지막 회에서 역전은 쉽지 않아 보였지요.
그러나, 9회에서도 여지없는 역대급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9회 마지막 공격 투아웃 상황에서 오지환의 3점 역전 홈런.
9회 KT의 마무리는 역시 김재윤.
그런데, 홍창기가 안타를 치고, 무시무시한 오스틴이 볼넷으로 출루합니다. 그 대단한 수호신 김재윤도 한국 시리즈에서 흔들리는 듯 이상한 볼이 늘어났지요.
오지환만 잡으면 되는 상황에서, 장성우 포수는 흐름을 끊고 김재윤을 다독이려고 마운드로 올라갑니다.
“자신감을 가져. 니 패스트 볼은 아무도 못 쳐. 한 명만 잡으면 오늘 끝이야.“
그렇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자신 있게 주특기인 패스트 볼을 스트라잌 존에 꽂아 넣으며 자신감을
되찾으며 경기를 종료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LG 주장 오지환이 보통 사람인가요. 이미 한국시리즈에서 홈런 손맛을 봤고, 베테랑답게 필요할 때 해주며 기어코 역전을 시키고 맙니다. 미친 듯이 좋아하는 LG 덕아웃과 표정 변화는 크게 없지만 침울해지는 8회 홈런의 주인공 박병호의 얼굴이 대비되었습니다.
맞자마자 홈런을 직감한 듯 주저앉는 김재윤.
결국 패전 투수가 되었지요.
9회 KT의 마지막 공격에선 이강철 감독은 대타를 기용하며 LG 마무리 이정용을 공략해서 어떻게 해서든 동점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방망이가 돌아갔다는 심판 판정에 어필하려고 갔다가 퇴장 당하기도 했지요. 제가 보기엔 오심이었는데, 이런 중요한 경기에선 판정이 정말 완벽해야 경기의 공정성이 지켜지며 재미가 살지요.
포볼로 1사 만루 상황까지 가서 끝까지 KT 팬들을 기대하게 만든 재미난 경기였지만, 마지막은 병살로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접전에 접전을 거듭, 마지막 위기까지 극복하고 승리라는 결과를 거머 쥔 LG 선수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포효하고 얼싸안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누가 보면 우승한 줄.
KT 팬은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LG가 방심하면 KT의 마법으로 4차전에서 균형을 맞출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엔, LG 팬들이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말씀하시려나요.
결과는 곧 두고 보면 알겠지요.
이제 4차전의 날이 밝았네요.
어제 밤 늦게까지 경기를 한 선수들은 피곤하겠지만, 중요한 경기이고 이제 몇 경기 안 남았으니 최선을 다하리라 생각합니다.
LG 팬들은 첫 경기를 아쉽게 패배 후, 2, 3 경기를 연속으로 따내서 이번까지 3 연승을 외치실 겁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KT가 오늘 경기를 잡고 균형을 맞춰줘야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네요.
혹시 이 글을 읽으실 LG 팬분들의 속 마음이 들리네요.
(LG 팬 : 치, 하나도 재미없어. LG 3연승 가즈아)
힘들어 하는 선수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최고 수준의 팀들이 저마다의 서사를 갖고, 각본 없이 최선을 다한 경기가 재미 있습니다. 그래야 뻔하고, 싱거운 경기가 되지 않지요. 그런 경기를 누가 기대하고 보겠습니까.
3차전까지와 같이 재미있게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7차전에 가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치면 이건 암표가 200만 원 이상으로 치솟을 수도 있겠지요. 그만큼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지요.
그렇게 마지막에 웃는 팀은 그날 저녁엔 파티를 하며 축배를 들 것입니다. 최강의 팀을 상대로 힘든 과정을 겪고 따낸 승리는 정말로 달콤하거든요. 그리고, 이어지는 상금과 연봉 인상은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의 긴장과 힘든 훈련 그리고 지친 체력과 부상에 대한 보상이 될 것입니다.
한국 시리즈 트로피를 들어 올린 팀의 팬들도 그날 저녁 흥분된 마음으로, 자신들만의 잔치를 벌일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 그랬거든요 ^^
오늘 주말 여유로운 날,
한국 시리즈 4차전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