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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Apr 07. 2024

몸조심 & 말조심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의 계절이지요.


저는 금요일에 일찌감치 사전투표를 하고 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투표를 하러 오셔서 열기를 느낄 수 있었지요. 다른 분들처럼 저도 40번까지 있는 비례 대표 투표 용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걸 보며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어떻게 자리 하나 혹은 여러 석 차지해볼까 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야욕이 느껴졌지요.

 

4월 10일은 어떤 분들에게는 그저 하루 쉬는 날이고, 어떤 분들에게는 새벽부터 주권자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한 표를 행사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함께 기뻐하고, 반대하는 후배가 당선되면 낙담하기도 하지요. 사실 당장 뭐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생겨봐야 장기적인 것이지만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겠지요. 결국 우리가 낸 세금으로 공무를 하는 사람을 뽑는 일이니까요.

 

정치를 하시는 분들은 선거에 그야말로 사활을 겁니다. 본선에서도 정책 경쟁 뿐만 아니라 상대방 후보를 깎아 내리기 위한 흑색선전까지 마다하지 않지요. 사실 본선에 가기 전에 당 내 경선에서부터 피 튀기는 경쟁을 벌입니다. 사천이니 공정하지 못한 과정이라느니 말이 많지요. 자신이 속한 당이 유리한 지역에서의 경선은 보다 더 치열하지요. 경선에서의 승리가 사실상 본선에서 승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은 고액 월급이나 국고 보조금 같은 혜택보다 역할, 명예, 영향력 그리고 정치적 미래가 걸린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역사는 현재를 바라보는 거울이라고 하지요. 그런 관점에서 오늘의 역사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말씀 드린 경선과 본선 과정에서, 많은 설화들이 (舌禍)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 잘 못해서 곤욕을 치르거나 잘못하면 후보로 결정된 이후에도 공천이 취소되는 일들을 봅니다.

이것은 2024년 당장의 일 뿐만 아니라, 전에 한 발언까지도 함께 구설수의 대상이 됩니다.

요즘같이 SNS와 u tube 등 다양한 platform들이 있고, 말이나 영상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나중에 이렇게 될 지 모르고,

잘못된 말을 해두면 그 말이 자신을 향한 칼이 되어 돌아옵니다. 때로, 칼보다 붓이 더 무섭고, 붓보다 세치 혀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피부에 와 닿습니다.

 

진짜 CCTV도 경계의 기능을 하지만, 이런 platform도 그런 역할을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다급히 해당 wording이나 영상을 삭제하려 하지만, on line의 확장성은 무서워서 많은 사람들이 봐주기를 바라며 올린 영상이 퍼져서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여러 면에서 공을 들여 어렵게 공천을 받았는데 공천이 취소되면 받아들이기 어렵겠지요.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기도 합니다. 소속 정당으로부터 비판을 받지만 심정이 이해는 됩니다.


어느 당의 누가, 어떤 말을 해서 공천이 취소되었는지 등은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진 않겠습니다. 뉴스만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이야기이니까요.

 

전의 삼국지 이야기에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서촉의 유장은 장로를 막기 위해 유비를 불러 들이고, 유비는 방통과 함께 서촉 땅에 발을 들여 놓습니다. 처음엔 다 좋았지요. 형님, 동생하며. 유장이 직접 나왔을 때 연회를 베풀고 그때를 기회로 삼아 그를 죽여야 한다는 말도 유비는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떡합니까?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라고 하나요. 유장과 사실은 속으로 야심을 가진 유비는 결국 틀어집니다.

일촉즉발의 전쟁 상황이 되지요.

 

이때 제갈량이 백미 마량을 통해 편지를 한 통 보냅니다.

 

“간밤에 태을수를 셈해 보니 올해는 계해년이라 강성 (북두성)이 서쪽에 있고,

또 건상을 보니 태백성 (금성)이 낙성 어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으뜸 되는 장수의 신상에 흉한 일은 많고 길한 일은 적으리라는 조짐이니 부디 모든 일에 살피고 삼가는 마음을 지니시어 가볍게 나서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를 보고 삼고초려를 나서 제갈량을 모셔왔던 유비는, 마량에게 말합니다.

 

“자네는 먼저 형주로 돌아가게. 나도 이만 형주로 돌아갈 작정이더라고 공명에게 전하게.

서천을 뺏는 일은 가서 다시 의논해 보는 게 좋겠네.”

 

방통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공명은 내가 서천을 뺏어 홀로 공을 세우게 되는 걸 걱정하고 있구나.

그 때문에 이런 글을 보내 막으려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 역시 태을수를 셈해 보아 강성이 서쪽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공께서 서천을 얻게 되시리라는 걸 나태는 것일 뿐 주공께 흉한 일이 있으리란 뜻은 아닙니다.

 

또한, 천문을 보아 태백성이 낙성 어름을 쬐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만 마찬가지로 그게 반드시 우리에게 흉한 일은 있으리란 뜻은 아닌 듯 합니다.

 

먼저 촉장 냉포를 사로잡아 목 벴으니 그 흉조는 이미 풀렸다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공께서 쓸데없는 걱정으로 일을 중도에 그만두셔서는 아니 됩니다.

되도록 빨리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서천을 차지하도록 하십시오.”

 

이에 유비가 한번 더 말합니다.

 

“어젯밤 꿈에 한 신인이 나타나 쇠막대기로 내 오른편 팔을 후려쳤는데 꿈에서 깬 지금까지도 아직 아픔이 느껴지오.

이번에 나서는 길이 좋지 않을 조짐 같아 실로 걱정이오.”

 

회군의 결정이 공명의 편지 때문만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방통은 한번 더 말합니다.

 

“장사가 싸움터에 나간 이상 죽지 않으면 다칠 것은 뻔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까짓 꿈 속에 있었던 일로 어찌 그렇게 걱정하십니까?”

 

무리하게 정벌을 지속하다 결국 죽게 되는 결말을 보면, 방통은 이때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떠신가요?

거친 언변으로 자신의 생각이라고 마구 쏟아 놓았던 정치인들이 그 말이 자신의 발목을 잡아,

다 잡은 고기 (공천, 국회의원 직)을 놓치고, 나아가 정치 낭인이 되어 큰 꿈과 야망을 품고 여의도에 왔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모습과 겹치지는 않으신지요?

 

진군을 계속하던 방사원은 왠지 꺼림칙하고 살기 같은 것도 느껴져서 향도에게 묻습니다.

 

“이 곳 지명이 무엇인가?”

 

“낙봉파입니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소리쳤습니다.

 

“내 도호가 봉추인데 이곳이 낙봉파라면 어찌 되는 것이냐?

나에게 결코 이로울 수 없는 땅이다. 모두 어서 물러나라.”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습니다.

장임의 군사가 화살을 쏘며 급습하였고, 유비의 배려를 받아 그의 말을 탄 것이 집중 포화의 이유가 되어 죽었습니다.

 

향년 서른 여섯.

와룡과 봉추 둘 중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 라는 말을 듣던 천하 기재 중 한 명인 방통이 허무하게 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말조심으로 가볼까요?

 

급습을 받아 방통이 죽고, 서천에 출정한 유비군은 위기를 겪습니다.

 

바로 제갈 공명이 등판하지요.

 

형주를 떠나며 관우에게 뒷일을 맡깁니다.

 

관운장은 이렇게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지요.

 

“대장부가 이왕에 무거운 책임을 맡았으니 목숨이 남아 있는 한 저버려서는 아니 될 것이오.”

 

제갈량은 관우가 목숨부터 먼저 걸고 나서는 게 까닭 없이 불길했습니다.

 

공명은 그렇게 출정해서 결국 유장의 항복을 받아 내고 유비가 서촉을 차지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후에 관우는 조조군을 공격하며 기세를 올리는 듯 했으나 반격을 받고,

결국 오나라 여몽의 손에 죽습니다.

 

물론, 형주를 맡을 때 공명에게 한 말 때문에 죽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지요.

 

하지만,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은 맞아 들어갈 때가 많습니다.

 

조조도 적벽대전에서 패하고 도망가는 길에 여러 번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다, “이 곳에 군을 매복해 놓았다면 죽고 말았을 것인데, 하하하”

하는 말을 하며 주위를 놀라게 합니다.

 

그때 관운장이 나타나지요. 조조의 퇴로를 예상한 공명이 심어 둔 복병이 관우였습니다.

 

당시에는 조조가 죽을 때가 아니고 운이 다하지 않아,

공명은 관우가 그를 죽이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지요.

 

관우가 조조에게 잡혔을 때 환대를 받고, 유비에게 돌아가면서 그를 막아서는 조조의 부하들을 여럿 죽여 미안함도 있어,

은혜와 미안함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조조는 그때 관우에게 죽었고, 위나라 라는 것은 중국 역사에서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도 그렇구요.

 

단순히 몸 사리고, 할 말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란 것. 잘 아실 것입니다.

옛말에 경거망동은 하지 말고, 말은 아끼라는 말이 있지요.

 

역사학도를 꿈꿨던 법학도 답게, 정치의 계절에 현실을 역사에 비춰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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