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탄핵
아침에 출근길에 탱크와 장갑차 그리고 군인들이라도 깔려 있을 줄 알았다.
다행히 없었다.
미친 계엄 선포가 다행히 국회의원들의 민첩한 행동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계엄해제요구가 155분만에 가결되어 해제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이것저것 할 것도 많고 챙길 것도 많아, 12월 3일 화요일 밤 중요한 일을 하나 끝내고 일찍 잠들었다. 10시 전에.
피곤한지 금방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전화기가 불이 나기 시작했다.
비몽사몽 간에 깨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문자와 카톡 등이 많이 왔는데, TV를 켜서 뉴스를 보라는 것이었다.
비현실적인 내용과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군인들이 국회에 헬기를 타고 들어와 내부까지 진입하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일터인 국회에 담을 넘어 들어가고,
시민들과 보좌관 등이 뒤엉켜 군인들을 막고.
현실이 더 적나라해서 영화가 망한다더니,
서울의 봄의 연기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비상계엄 선포.
바로 욕이 튀어 나왔다. 이런 미친.
윤석열 대통령이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 라는 말.
군인들을 동원해서 국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도록 지시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 그를 긍정적으로 표현했다. 단서를 달긴 했지만, 부끄럽게도 같은 법을 전공한 내가 보기엔, 단서는 욕 먹기 싫어서 그냥 단거고 하고 싶은 말은 전두환이 정치를 잘했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잘하는 걸 보면 어떤가?
따라 하고 싶어 진다.
그래도 설마 했는데,
설마가 사람 잡아 먹어버렸다.
정말 계엄을 선포해 버렸다.
극우 유튜버 같은 사람들과 군 출신 중 정신 상태가 안 좋은 극소수가 계엄 선포를 해서 종북 좌파들을 싹 잡아 들여야 한다고 했을 때, 그냥 미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슈퍼 챗 받고, 조회수, 구독자 장사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관심 받고 돈 벌고 싶어 하나 보다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사람들은 계엄을 선포할 권한도 없고,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완전히 오산이었다. 국군통수권자가 그런 유튜브를 자주 본다는 말도 믿지 않았는데, 지금 일이 터지고 보니 사실일 확률이 아주 높아졌다.
민주당 국회의원 등이 계엄 선포 가능성을 언급했을 때 좀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기무사의 계엄 선포 계획을 수립했지만 실행하지 않았다. 스마트폰, SNS, CCTV 등이 도처에 깔려 있고,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2024년 대한민국에서 1979년, 1980년의 전두환 때처럼 하긴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그땐 스마트폰은 커녕, 핸드폰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삐삐도 상용화되기 전이었다.
더군다나, 이런 의혹 제기에 대통령실과 여당 그리고 국방부 장관 후보자들은 일제히 유언비어라며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주요 보수 언론에서도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며 꾸짖기도 했다.
그렇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민주당 의원들도 정부를 견제하는 건 좋은데, 저건 너무 나간 것 아닌가 싶었다.
대통령실 대변인과 우리나라 국방부 장관을 하실 분이 공식석상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겠어.
더욱이, 집권 여당의 대표까지 함께 계엄을 왜 대비하느냐고 그럼 외계인 대비법을 만들자는거냐며 큰 소리쳤다.
그렇게 장관 후보자에서 장관이 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계엄을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지금은 긴급체포되어 있다.
아무리 사기꾼 천국이라지만 대통령실과 일국의 장관의 말을 믿지 못하는 나라에 신뢰라는 것이 있을 수 있나. 다단계 조희팔 같은 인간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쳤는데, 세금으로 월급 받고 대우 받는 고위 공직자가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처버렸다.
도대체 누굴 믿어야 하나.
결국 이렇게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살다 보면 이 꼴 저 꼴 다 보게 된다는데, 직접 눈으로, 실시간으로 계엄이 선포되고 군인이 국회로 난입해서 국회의원들을 체포해서 끌어내려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참 안타깝고, 우리나라를 이 꼴로 만든 사람들에 대해 철저한 진상 조사와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올해 연말에 우리나라 이 땅에서 일어난 쿠데타를 보기 전에 다른 나라에서 주재원을 하면서 쿠데타를 직접 본 적이 있다.
2016년 터키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군부 등에 의한 쿠데타였다. 하루도 걸리지
않아 진압되었다. 너무 빨리 진압되어 사전에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금도 터키 대통령을 하고 있다 헐헐) 알고 있었는데, 일부러 반대파들을 모두 색출하기 위해 쿠데타가 일어나도록 일단 놔뒀다는 설까지 있었다.
의도야 어쨌든 그때 본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장갑차가 돌아다니고 군인들이 총을 들고 다니며, 에르도안 지지자들이 터키 국기를 들고 모여서 다니고, 하늘에선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두환 시절에 이랬을까 하며, 터키도 아직 나라가 이렇구나 싶었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오늘,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국회 다수당인 야당 정치인 등이 맘에 들지 않고, 자꾸 자신이 임명한 관료들을 탄핵하고, 예산을 삭감한다며 말이다. 헌법에 위배되고 심지어 계엄법과 계엄실무편람 등 절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하긴 요건 자체가 성립하지 않은데 무리하게 추진하려고 했으니 밤 10시가 넘어서 급습한 것이겠지. 검찰이 기업 등 압수수색할 때 사람들이 다소 느슨해지는 금요일 오후에 치는 것처럼. 강아지도 자기 하던 버릇은 남에게 잘 주지 못한다.
검찰공화국이라고 할 때, 정부 요직에 검사 출신들이 쌩뚱맞게 꽂히는 걸 보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회사원의 삶을 살고 평범한 직장인을 검사들이 공격한 적은 없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똑똑한 사람들이니 잘 할 수도 있으려나 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날 밤은 국민의 일상을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 넣어 버렸다. 다음 날 정상 출근해야 하는건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더욱이, 거짓말을 하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사람이 국힘 국회의원들의 투표 불참으로 대통령직을 아직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 국민의 대표라고 선거로 뽑힌 사람들이 가든 부든, 국가 중대사인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앞두고 투표도 하지 않고 단체 퇴장해 버렸다.
이 상황에서 김건희 특검법과 탄핵소추안 모두 부결로 당론으로 정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아니, 윤 대통령이 탄핵되면 다음 대선에서 질 것이 거의 확실해지니 그랬겠지만) 탄핵소추안은 이탈표가 생길까 봐 아예 투표 자체를 하지 못하게 했다. 3명은 그래도 양심에 따라 투표를 하긴 했다. 한 명은 부로 투표했다고 밝혔는데 그래도 투표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리고 추경호 원내대표는 사임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직만 내려 놓는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계속 한다)고 하는데, 왜 속된 말로 빤스런으로 보일까. 그에 앞서 국회에 군인들이 들이닥칠 때 국회에 들어가서 위헌적인 계엄을 해제할 생각은 하지 않고 국힘 국회의원들을 자신들의 당사로 불러 모았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국회의장이 빨리 와서 표결에 임하라고 하니 안전해진 다음에 갈 테니 표결을 미뤄달라고 했다 한다. 그러니 야당이 시간 끌기한 내란 동조자라고 비난하고 고발했다. 그리고 나선 재추대한다고 쌩쇼를 하고 있다. 저런 사람이 집권 여당 원내대표이고 우리나라 전직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었다. 안타깝다.
탄핵 표결일 오전 윤 대통령은 2분짜리 쇼츠 담화를 했다.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 무성의한 사과를 했다. 3분 카레만도 못한 어쨌든 사과 및 변명이라는 평가가 많다. 친위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고, 잘못하면 체포하려 했던 한동훈 대표 같은 사람들이 돌아서 탄핵소추가 가결되어 직무가 정지되면, 가뜩이나 내란 혐의 때문에 조사 받을 것이 겁났을 거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어쨌든 억지로 사과하는 것이 보였다. 여론 무마와 탄핵 부결을 위한 여당의 요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뒤에선 야당 놈들 혼 좀 내주고 겁 좀 먹으라고 그랬다고 했다는데 기가 막힌다. 그 와중에 계속 발언을 바꾸는 한 대표를 보는 것도 당황스럽다. 전직 검사장,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이었으며 현 여당 대표다.
윤 대통령이 군경을 투입해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막아보려 했으나 사전 준비가 확실하지 않았고 수많은 시민들이 막고 국회의원들이 담장을 넘어가 의결을 했는데도, 즉각 계엄을 해제하지 않고 몇 시간이 지나서야 어쩔 수 없이 해제했을 때와 비슷해 보였다. 그 와중에 밤 중이라 국무회의 소집 및 의결이 어려워 조금 이따 하겠다라고 했는데, 그러게 왜 애초에 밤 중에 그런 이상한 짓을 해서 국민들 불안해서 잠도 못 자게 하고, 외국에 창피한 나라로 만들었나 참. 글로벌 스탠다드 운운하더니 쩝. 외국인 친구들이 North Korea가 아니고, 정말 South Korea에서 일어난 political risk의 발현이라고 물어봐서 설명하며 찾다 보니 martial law 라는 걸 알게 되었다. 덕분에 하나 배웠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자신의 임기 단축 등은 국회가 아닌, 우리 당인 여당에 일임한다고 한다. 자신이 감옥에 넣은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도 못한 사람. 이재명과 민주당 의원들에게 맡겼다간 살아남지 못할 걸 알기 때문에 그리했겠지만, 참 못났다.
한때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수사 외압에 굴하지 않는다며 기개 있는 모습을 보이다 좌천되는 모습을 보며, 좋게 봤다는 게 창피할 지경이다.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고 해놓고,
자신의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에 대해 계속 거부권을 행사하는 걸 보면, 상황이나 이익에 따라서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기개 있고 공정과 원칙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속았구나 라고 생각될 정도다.
이렇게 거짓말을 많이 하고, 대통령이나 되는 사람이 말을 이렇게 쉽게 바꾸는데, 2차 계엄 선포는 없다는 말을 어떻게 믿나. 북한 오물 풍선 원점 타격까지 전 국방부 장관이 말했다가 합참의장 등이 기겁하고 반대했다는 말까지 있다. 이 땅에서 있어서는 안 될 국지전과 전쟁이 지척에 있었다.
대통령과 현 집권 세력이 알아둬야 할 게 있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곧이곧대로 믿거나 어떤 이익이나 자리가 제공되어서 따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아주 많다.
바빠서 브런치도 자주 못하고 있는데, 이 사건만큼은 이렇게 기록해 두어야겠다.
훗날 이 희대의 사건을 두고 어떻게 기억할지.
앞으로 추이도 지켜보고 박근혜 탄핵 시위 때처럼 가봐야겠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다.
헌법 1조, 맨 첫 번째 조항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헌법은 영어로는 constitution인데, 즉, 국가 체계의 구성이자 근간이다.
그걸 제일 잘 아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9수 끝에 사시 패스해서 검사, 그것도 검찰총장까지 하신 분이,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싸잡아 싸그리 척결하겠다며 이런 짓을 벌였다.
좋은 대학교 나오고 똑똑하고 많이 안다고 지혜로운 건 아닌가 보다.
아니, 사리분별이 정확한 건 아닌 것 같다.
제발 이러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법은 원래 좋은 말,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거고, 난 그런 거 사실 잘 몰라, 그냥 내 맘대로, 내 이익대로, 하고 싶은대로 할거야. 법은 그냥 지배자의 도구야 (tool) 라는 생각이라면 꼭 버렸으면 한다.
이 일이 수습되려면 당분간 많이 시끄러울 걸로 보인다. 아마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같은 일이 이어지겠지. 퇴진 시위, 국회에서의 연이은 탄핵 소추, 대통령 직무 정지
(헛, 국무총리가 대통령 역할을 대리해야 하는데, 내려가려고 했는데 내려가지도 못하고 있는 지금 국무총리가 황교안 님처럼 대통령 역할을 하시다니. 황 전 대표도 검사 출신이었지. 세상이 웃기다. 더욱이,
탄핵 관련 국무회의에 참석해서 수사를 받아야 하는 분이 이 난리를 어떻게 수습하겠다고 쩝. 황교안 씨도 이후 당 대표까지 했던 양반이 아직도 극우 유튜버들이 말하는 부정선거에만 빠져있다. 아쉬운 건 알겠는데 정신 차리는 게 좋지 않을까. 관심 받고 돈 벌면서 영향력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그만하고 말이다.)
그리고 헌재의 탄핵 심판
(윤 대통령이 심어 놓은 분들은 과연 어떤 판결을 내릴까. 어차피 짜여진 판에서 탄핵 인용은 안될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똑똑하다고 하며 배울 만큼 배웠으며 합리적이고 칼 같은 이성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이 하는 대표적인 어리석은 짓을 목도하고 말았다.
(검사 출신 강원도지사님도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 신용시장을 박살 내면서 경제를 절단 낸 건 이제 애교가 되어버렸다.)
이래서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주변에 다양하게 의견도 묻고 들어야 한다.
아집과 독선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낳는다.
이번 일로 한 가지 분명히 깨달았다.
대통령 잘 뽑자.
현재 진행형인 이 사태를 주의하자는 의미로 12시 12분에 업로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