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상한 고집이 있는데, 배우는 것은 좋지만 판단은 나의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권위를 들먹여서까지 판단하고 싶지는 않아서 지식과 지혜가 계승되는 것과는 별개로 철학책에는 거부감이 있었죠. 내가 의심해서 만들어진 나의 잣대가 불완정할지언정 지금의 나에게 맞는 판단이라고 믿는 거죠.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고, 나의 세계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표지의 말에 가볍게 도발당해 버렸어요. 왜 힘들지 않아야 하냐니...
아파하고 싶지 않다면 아픔과 친해져야 한다
5부작으로 여러 소주제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독백과 관찰자적인 시선이 적혀있는 구성이에요. 관계에 대한 회의감, 사회에서 어떤 나라는 존재로서의 무력감, 어떤 구조에 대한 체념, 정의에 대한 반항, 자기 자신에 대한 조소 같은 얘기들이 적혀있어요. 어중간한 태도가 아니라 어떤 확신에 차 있는 모습이 보이면서도,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쇼펜하우어를 위대한 철학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볼 수 있게 되는 느낌이었죠.
저의 마음속에 미움이 넘쳐날 때, 세상을 저주할 때 생각했던 것들. 놓아버린 것들도 있었고, 다르게 생각하게 된 것도 있었지만 아직 미워하고 저주하는 것들도 남아있겠죠. 매몰찬 독설이 고통스러워하는 쇼펜하우어로 비춰서, 그 시절 고통스러웠던 나도 바라보게 되고 슬퍼했던 것들이 떠올라 위로받는 게 가장 큰 것 같았어요.
다 읽고 나서는 깊게 들여다볼수록 더 아픈 부분들을 대신 보고 정리해 준 그에게 감사함을 느꼈어요.
세상을 저주하고 싶고, 미워서 미쳐버릴 것 같고, 억울해서 눈물이 나는 사람... 이 아니더라도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요. 쇼펜하우어의 대표작으로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있대요. 읽어보지는 않았어요. 어려워 보이잖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편역서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냥 번역이 아니라 여러 자료나 작품을 선별해서 주제별로 관련 내용을 모으거나, 원전에 없는 내용을 추가 수정해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거래요. 개인적으로 편역 하신 김욱 작가님의 말에서 쇼펜하우어에 대한 애정과 아파하는 사람들에 대한 응원이 느껴지는 게 좋았던 책이에요.
나의 세계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이어서 하자면, 나의 이 세계조차 누군가의 파편이 모여 형성된 나의 모습이라고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게 답답할 따름인데요. 생각해 보니 당연하게도 나는 '순수한 나'일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가끔은 굳이 '나'일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내가 살고 싶은 모습만을 지향하며 살아나간다면, 흔적과 파편이 모인 모습도 결국 내가 아닐까 생각하죠. 주저리 주저리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지네요.
그만큼 생각할 거리가 정말 많은 책이었어요. 언젠가 행복을 선택할 사람에게 아픔의 총량은 행복의 총량과 비례한다고 생각해요. 고통을 응시하는 것은 무섭죠. 하지만 충분히 아파하고 기꺼이 행복을 선택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어떤 행복이 있다고 믿어요.
아파할 이유의 대부분, 성장통 같은 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