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시끄럽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과 한덕수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 대행에 대한 탄핵, 그리고 빠른 탄핵가결과 조기대선으로 가기 위해 속도전을 펼치는 더불어민주당, 이에 대한 반발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 힘의 지지율 상승, 거기에 제주 항공기 무안 공항 참사, 그리고 카톡 검열과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등, 12월 3일에 벌어진 비상계엄 이후 정국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혼잡합니다. 거기에 대해 원화가치 상승에 의한 요동치는 환율 등, 대한민국의 1월은 춥고 어둡기만 합니다.
필자가 연재하는 편견의 역사의 첫 번째 장에서 다룬 것이 바로 명분과 정통성입니다. 명분과 정통성은 정치가와 정치 집단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명분 없는 정치적 행보는 곧 정적에게 공격받을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한 정치가와 정치 집단의 정치적 생명을 끊어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정치적 자살골이자 자충수로 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돌아가는 상황을 보자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정치적 승부수로 보이는 효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민주당의 속도전과 대처를 예상이라도 한 듯 거침이 없습니다. 물론 이는 필자의 뇌피셜일 뿐입니다.
격변하는 정치 상황에 시비를 가르고 싶은 생각도, 왈가왈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자신에 대한 정치적 비판과 국민적 저항이 있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비상계엄이라는 승부수(처럼 보이는 자충수)를 던졌고, 그에 대한 책임은 온당히 스스로 지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전례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총 50회에 달하는 탄핵시도가 있었습니다. 탄핵은 헌정사상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졌습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시도까지 총 15번의 탄핵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기각되었으며, 대통령의 대한 탄핵 소추가 기각되자 정치적 소용돌이로 몰아쳤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초의 탄핵 가결과 인용이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결정되자,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탄핵의 광풍이 불어닥쳤습니다. 대통령마저 탄핵으로 파면되었는데, 다른 이들에 대한 탄핵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 이미 대통령 파면이라는 전례가 남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정치에서 전례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가 12.12 쿠데타를 벌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전례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당시 상황은 10.26 사태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에 기습적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파로 밀어붙인 전국적 비상계엄과 광주 5.18 민주화 운동으로 정통성과 명분을 잃었던 5 공화국은 1987년에 벌어진 대규모 민주항쟁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못했습니다. 명분과 정통성을 잃었던 정권의 말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후의 6 공화국에서는 비상계엄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고 정치적 부담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또한 대한민국은 그로 인해 평화와 민주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가장 염려하는 부분도 바로 이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와 내란죄 등의 각종 범죄혐의가 인정이 되든, 인정이 되지 않든 이미 전례가 남아버렸습니다. 대통령이 탄핵이 된다고 하더라도 남겨진 전례로 인해 새로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이들은 그들의 처벌이나 관련 법안들에 대한 정치적 부담감을 안고 출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현재 유력 대권후보로 평가되는 이재명 대표나, 국민의 힘 측의 다른 후보들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와 내란죄의 각종 범죄혐의가 각하, 또는 기각이 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윤석열 대통령은 그의 비상계엄이 정치적 승부수로 완전히 인정받게 됨을 의미하며, 그로 인한 정치적 명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벌어진 비상계엄이 두 번이라고 벌어지지 않을 리가 없으며, 윤석열 대통령 이후의 차기 대통령과 정치집단에게도 진지하게 고민될 수 있는 수단이 돼버리는 위험요소까지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전례라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여러 정치 평론가, 그리고 뉴스와 유튜브에서는 이런 내용을 필자가 읽거나 본 것들 중에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그저 윤석열 대통령을 수호해야 한다와 끌어내려야 한다는 극한의 갈등만이 남아버렸습니다.
이제 이것을 현명하게 수습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설사 복귀한다 하더라도 대통령 본인이 이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재발 방지를 위한 법안이 나와야 하며, 그의 임기 이후 이에 대한 처벌은 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어 파면된다고 한다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관련 법안을 강화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을 신속하게 처리해야만 할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정치적 정적 제거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