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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의 역사 - 이승만과 김구 (1)

by 철가면

1. 들어가며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저평가되고 많은 욕을 먹는 인물을 뽑으라하면 필자는 주저없이 이승만을 뽑습니다.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반대로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필자는 반민특위 강제 해산을 꼽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저평가되었지만, 또한 그의 행적 중 하나가 가장 비판 받을 행적이 한 인물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그만큼 복합적이고 명과 암이 뚜렷한 인물임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뉴라이트부터 시작해서 2024년 초에 개봉된 ‘건국전쟁’ 논란은 이승만이 얼마나 평가절하 당해왔고 현재 진행형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승만은 왜 이렇게 심하게 평가절하를 당할 뿐 아니라 온갖 모욕적인 언사를 한몸에 받아야만 하는 걸까요.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 과도하고 무분별한 비난을 받고 있는 이승만을 보고 있자면, 안타까움과 인간적 연민 이전에 궁금증이 생깁니다. 도대체 이승만의 어떤 행적으로 인해 이토록 과도한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어째서 이승만은 어떤이들에게는 한국사 최악의 인물로 뽑히는 것일까요. 그와는 반대로 김구는 진정한 반일투사이자 애국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구야말로 진정한 대한민국의 국부가 될 수 있는 인물이며, 거기에 더해 이승만과의 비교가 김구에게는 치욕이라는 등의 평가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김구의 어떤 행적이 그를 이토록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로 평가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재미난 것은 조금 깊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승만이 얼마나 과소평가 당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깊게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김구의 행적에서 아쉬운 점과 한계점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이승만을 과대평가해서도, 김구를 과소평가해서도 아닙니다. 이승만과 김구는 각자의 위치에서 나라의 독립과 건국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이들입니다. 특히나 김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거의 나홀로 지키다시피 하며 항일 항쟁을 주도했습니다. 이 공은 그 어떤 논쟁과 반박의 여지도 불허합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이 있고, 과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는 이승만에게는 유독 과가 집중되고 있는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김구에게는 유독 공만이 집중되는 현상 역시 발견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승만과 김구는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사와 한국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김구를 빼놓고는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와 항일항쟁을 논할 수 없으며, 이승만을 빼놓고서는 해방 이후의 한국 현대사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지 못하고 그저 감정적인 대응과 그들의 몇몇 과에만 치중하며 눈을 감고 귀를 닫는 면이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김구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조금 더 냉정하고 국제관계와 복잡한 세계 정세에 접근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냉철한 시대 인식과 국가 발전을 위한 비전,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뚝심과 그것을 밀어부치는 행동력과 정치력에서 김구는 이승만에 비해서 부족한 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우리는 김구가 ‘남북협상’에 임하여 통일 정부를 이루려고 했다는 부분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필자도 그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는 김구의 정치적 식견의 부족함이 있었다는 부분을 쉽게 간과하고 김구가 통일정부를 수립하려고 했다는 행적에만 집중하고 그것을 들어 김구를 찬양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김구가 김일성에게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는 부분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승만은 정읍 발언을 통한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주장하는 것과 그로 인해 분단이 이루어졌다며 비판하지만, 왜 이승만이 단독정부를 주장했는지에 대한 당시의 해방 정국과 국제 정치사에 대한 이면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필자가 이 책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역사적 상대성과 다양한 관점을 모두 놓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빠지지 말아야하는 부분은 한국현대정치사의 특이점입니다. 왜 이렇게 한국현대정치사는 대립과 갈등의 연속이어야만 했을까. 흔히 이야기하는 진보 세력은 왜 그렇게 독재타도와 민주화를 외쳐야만 했을까. 또 흔히 보수세력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왜 그렇게 반공을 울부 짖었어야 했는가. 그러나 이것에 대해 속시원한 대답을 해주는 이는 없습니다. 그저 이승만을 비판하고 비난하며, 김구를 찬양합니다. 반대로는 이승만을 찬양하며 건국의 아버지라 추켜세우길 주저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이승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평가절하 합니다. 서로가 눈과 귀를 닫고 상대의 의견에는 귀 기울이려 하지 않고 오직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피반과 비난에만 집중합니다.


보수진영이나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모든 이야기와 주장들은 각각의 진영논리를 빼고 생각해보자면 그 주장의 근거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에는 충분히 타당한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서로의 이야기에 대해서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전히 대한민국은 과거 40-50년대를 거쳐 60~70년대의 노동운동, 그리고 80년대에 NL세력에 의한 과도한 진영논리, 더 나아가 내편이 아닌 너는 적이다라는 흑백논리에서 한발자국도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번 머리말은 그 어떤 챕터보다 길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이승만과 김구를 다루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고 민감한 주제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꼭 다루어야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해서, 필자는 이승만과 김구, 이 챕터를 쓰고 연재하는 것에 있어 엄청난 고민을 했을뿐만 아니라 수없이 검수와 검토를 진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편을 연재함에 있어서 신중하게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번 챕터에서는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한국현대정치사의 특이점에 대해서 서술해보고자 합니다. 아마도 이번 챕터에서는 많은 비판, 그리고 비난이 있을 수 있으며 정당한 비판은 얼마든지 수용하고, 비난조차도 감수하고자 합니다.


2. 한국 현대사의 편향성


이 원고를 집필하는 시점이 2024년 8월 15일입니다. 하필이면 광복절과 건국절 논란이 시끄러운 시점에 이 원고를 집필하게 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요. 네, 현재 이 책, 그리고 이 챕처를 쓰는 시점에 임명된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 문제로 한창 시끄럽습니다. 또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위안부 발언으로 윤석열 정권의 인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검토를 하는 현상황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과 탄핵, 그리고 조기 대선과 이재명 대통령의 시대에 있습니다. 탄핵 정국은 온 나라를 반쪽으로 갈라놓은 시기였습니다. 또 역사 강사로 이름 높은 전한길 강사와 황현필 강사가 서로를 향해 날선 비난을 가하며 대립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최종 검수와 검토를 진행하는 현재는 건국전쟁 2편이 개봉하기도 하는 등 여전히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탄핵이라는 역사적 실책을 저지른 윤석열 정권이 탄핵과 더불어 무너지고, 새로운 이재명 대통령의 시대가 다가왔으며, 새로운 대통령 본인부터가 화합의 정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변한 것은 없습니다. 새롭게 선출된 거대 정당의 민주당과 국민의 힘 당대표는 여전히 서로를 박멸하기 위한, 그리고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강성 지지층의 호응을 얻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 의한 강경 발언만을 연일 쏟아내고 있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양보하며 건전한 토론을 통한 협치와 화합이 아닌, 상대를 박멸하고 나와 생각이 다르면 몰아내고 함께할 수 없다는 양 극단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더욱더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책을 최초 구상하고 자료를 수집하던 시기는 이승만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건국전쟁’ 으로 엄청난 논란이 일던 시기입니다. 또한 검수를 하고 있는 현재는 ‘건국전쟁’ 2편이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몇몇 유튜버들이 이승만에 대한 과도한 비판과 함께 유튜버들간의 역사 토론이 개최되느니 마느니등의 문제들도 있었죠. 편향된 역사관으로 점철된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환호하고 사이다라며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다양한 역사적 시선을 제공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왜 이토록 양 극단으로 나뉘는 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먼저일 것입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좌우의 대립은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왜 이렇게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필자는 이런 상황을 편향된 역사적 인식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사는 언제나 강자와 약자, 다시 말하면 선악의 프레임으로 발전했습니다. 권력을 잡은 이는 악한 이이며, 이 땅에 자유를 실현하는 세력은 선한 이로 민주화 투쟁을 그려나갔습니다. 여기서 불행한 사건이 수도 없이 벌어졌으며,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민주화 투사들이 공권력에 의해 희생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선악의 프레임이 다양한 교육과 미디어 매체에서 편향적이고 감정적인 소재로 활용되어 소개되고 강의되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보다 다양한 시선과 당시의 시대상황, 정치, 국제관계 및 각각의 이해관계는 무시당하고 감정적 접근으로만 역사를 바라보게 되는 우를 범합니다.


물론,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과 그들의 저항이 없었다면 이 땅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악랄한 독재자들이 등장했고 그들이 반공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반대 세력을 모두 빨갱이 몰이, 즉 색깔론에 집착했다는 사실에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런 색깔론은 극단적 선악의 이분법적 프레임의 시작이며, 이에 대항하고 정당한 자신의 권리를 얻기 위한 일환으로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 역시도 사실입니다. 보수 세력들에 의해 진보 세력들이 빨갱이로 폄하하고 탄압받았다는 것 역시도 엄연한 사실이며 여기서 수많은 무고한 이들이 발생하였고 이 과정에 많은 억울한 이들이 존재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또한 이들의 희생을 통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것 역시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들이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공고하게 성립된 선악의 이분법적 논리가 현재까지 이어져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찬양하는 이들에 대한 수많은 조롱과 비난이 이어지는 것 역시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서로가 인정하지 않는한 그 어떤 논의와 토론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과를 먼저 인정하고, 그로 인해 어떤 사회적 갈등과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객관적으로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봐야만 합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영원한 평행선의 갈등만이 존재할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 흔히 진보세력은 보수세력에 비해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보수세력을 친일세력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특히나 홍어드립이나 혹은 토착왜구와 같은 극도의 인격비하의 멸칭은 필자가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한발 더 나아가 매국좀비 등과 같은 조롱과 비하의 발언을 역사 강사, 100만 유튜버라는 사람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1찍이니 2찍이니, 영포티라느니 온갖 저주와 비난 섞인 발언을 하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한국사회의 갈등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는지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비하적 발언도 문제이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극단적인 이분법적 논리로 인하여 나와 생각이 다른 너는 우리의 적이다라는 편향적이고 극단적인 전체주의적 사고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유튜브나 각종 커뮤니티와 같은 매체들로 인해 극단적 역사관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한국사는 많은 부분에서 편향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어 왜곡된 형태로 대중들에게 투영됩니다. 이런 편향적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과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감정에 치우쳐 역사를 바라보게 되는 문제점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감정적 역사관이 자리잡게 된 이유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감정적 역사관이 자리잡게 된 근본적인 원인으로 일제강점기 시절을 뽑습니다.


경술국치로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기기 전부터 한국인들은 많은 패배주의에 빠집니다. 연개소문과 김춘추편에서도 다루었지만, 이런 패배주의는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강제로 나라가 합병당한 이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실의에 빠진 민중을 깨우치고 자긍심을 깨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강한 리더쉽과 함께 이 국난을 극복할 수 있는 영웅과 그 영웅과 함께 뭉치는 하나의 민족, 즉 민족주의 사상입니다. 이런 민족주의 사상의 선봉장은 당연히 단재 신채호 선생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도 이런 일제강점기 시절에 민족성을 고취시키기 위한 일환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민족주의 역사관과 함께 조선에 새롭게 유입된 사상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회주의 사상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방침과 함께 많은 민중들은 독립에 대한 갈망을 이어나갑니다. 그러나 민족자결주의는 오로지 패전국의 식민지에게만 적용되는 부분들을 보면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자유 민주주의 사상에 실망감을 드러냅니다. 이런 틈을 타서 러시아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만든 레닌에 의해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사회주의 운동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에 실망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영향을 줍니다. 미적지근한 지원이 아닌 독립을 위한 화끈한 지원과 교육을 아끼지 않은 소련의 사회주의 사상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빠져듭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주의 사상은 광복이후 38선을 중심으로 소련과 미국의 군정하에 이은 신탁통치안이 발발하면서 심각한 이념적 대립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의 심각한 프레임이 미국과 이승만에게 씌여집니다. 바로 미국과 이승만이 통일 정부 구성을 방해했다는 프레임이죠. 역사를 자세하게 공부하지 않은 이들에게 이런 프레임은 매우 잘 먹힙니다. 거기다가 이승만의 가장 큰 실책 중 하나인 반민특위 해체와 3.15 부정선거로 불명예 하야를 한 이승만에게 이런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매우 손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 현대사의 해석은 전술한 바와 같이 대체적으로 하나의 절대악적 인물에 대한 투쟁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 등의 거대 악의적 인물을 만들어내기에 이릅니다. 국내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전쟁입니다. 거대한 적을 만들어 우리를 하나로 뭉치는 전략인 것이죠. 그들과 싸우는 동안은 우리의 승리를 위해서는 적어도 우리편끼리 분열하는 일은 없을테니까요. 그리고 이런 전략을 가장 잘 써온세대들이 86세대들입니다. 이 86세대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중심에 있는 이들이기도 하며, 또한 그들의 투쟁과 저항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의 86세대, 즉 현대 한국의 정치의 중심이 된 그들은, 이승만의 토지개혁과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성장한 이들입니다. 그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재정적 바탕에는 이승만의 토지개혁으로 인한 완전한 신분제 철폐와 사유 재산 확보에 있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분명히 있을 수 있지만, 이승만의 토지개혁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 교육적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이승만의 강력한 국민교육 정책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문맹에서 벗어나고 더 나아가 지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고등교육을 학습하는 기회 역시도 제한적으로 주어집니다. 대한민국의 현 과도한 교육열은 바로 이 시점에 교육과 공부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고 더불어 부와 명예를 얻은 이들이 많이 등장했다는 것에 기인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승만의 개혁의 성과로 성장하고 공부한 이들이 지금은 이승만을 악의 존재로 규정하고 심지어 그의 공적마저 지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가 개인적 사관으로 보았을 때, 한국 현대사를 좁은 의미의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민주 투쟁의 역사”입니다. 한국 민주화 투쟁의 역사는 4.19 혁명으로 성공을 맛보았으나, 5.16과 유신헌법으로 인해 짓밟힙니다. 10.26 사태로 박정희가 서거한 이후 서울의 봄이 올 것을 기대했으나 전두환의 불법 정권 찬탈로 인해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고 폭력적 정권에 맞서며 기어이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군사 정권의 종언을 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민주화 역사에 길이 남을 오점의 역사적 야합이 벌어집니다. 바로 노태우와 김영삼을 위시로 한 3당 합당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김영삼의 3당 합당으로 인한 정권 창출, 즉 노태우와 김영삼으로 이어지는 정권을 민주적 평화적 정권이양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민주화 세력은 이 3당합당이라는 역사적 야합속에서 노무현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을 발굴합니다. 다만 그가 빛을 보는 것은 그 이후이지만요. 아무튼 김대중 정부에 의해 한국사 최초의 평화적, 민주적 정권이양을 이루어냅니다. 이후 새롭게 등장한 민주화 세력의 아이콘 노무현을 통해 정권 재창출을 이루어 냅니다. 그리고 이후에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의 재창출을 허용하지만, 초유의 비선실세 정치로 인하여 박근혜의 퇴진을 촛불혁명이라는 평화적 시위를 통해 끌어냅니다.


이는 위대한 민주세력의 승리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거대한 적입니다. 이 거대한 적에 맞서서 우리가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라는 대전제는 필연적으로 선악의 이분법 논리가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권력자는 악, 이에 맞서는 이들은 선이라는 구도가 발생할 수 밖에 없으며 이 과정이 오래될수록 사람들에게는 권력자는 악이라는 관습이 뿌리깊게 자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분법적 논리는 2025년 현재에도 통용됩니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찬성하는 입장과 탄핵을 반대하는 입장으로 나뉘어 극한의 갈등을 겪고 있는 현재와 같이 말입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수많은 생각과 사상, 주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주관을 하나로 뭉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거대한 적의 존재입니다. 이 과정에서 소수의 의견들은 무시됩니다. 그중에서도 이승만은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광복과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속에서 그가 이루어냈던 업적은 가려집니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하에 자행된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그리고 이어진 이승만의 하야는 온 국민에게 우리가 승리했다는 기쁨을 안겨주고 거대한 민주시민의 힘으로 타락한 독재자를 몰아냈다라는 거대한 의의가 씌여집니다. 거기에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는 또다른 군부 독재자의 존재들로 인해 이승만은 이들과 동급으로 묶이며 평가절하 당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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