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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나남 Sep 17. 2022

나는 가족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구나!

- 이야기 둘-

 딸아이가 여섯 살 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이집에서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담당하고 있던 교사가 아이를 안과에 데리고 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허투루 들었다. 전화 상담 중에 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왜 안과에 데리고 가야 하는지 세세하게 묻지도 않았다. 그 후 완전히 그 대화 내용 자체를 잊어버렸다. 


 그러고 나서 한 6개월 정도 시간이 흐른 것 같다. 학예발표회가 있어서 참석한 날이었다. 원장 선생님이 소영이 어머니 되시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니 원장실로 데리고 갔다. 보건소 선생님이 안과 검진을 했는데, 소영이가 눈이 나쁘니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고 전했다. 평소 어린이집 생활에서도 눈이 안 좋은 것 같아 보인다고 했다. 안과 검진을 꼭 받으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나는 어릴 때 안과에 간 기억이 전혀 없다. 그래서 딸이 눈이 나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엄마 아빠 다 안경을 안 끼고 있었다.  놀라면서도 부끄러웠다. 아이 눈에 대한 이상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6개월 이전에 어린이집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는 것도 생각났다. 원장님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종합병원 안과에 데리고 갔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6세가 되면 성인과 같은 시력 1.0이 나온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굴절성 약시라고 하였다. 어릴 때부터 양쪽 눈에 난시나 원시, 근시 등의 굴절 이상이 심한데도 교정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약시가 된다고 한다. 그러면 안경을 껴도 제대로 시력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무심한 엄마 때문에 딸이 약시가 되어 잘 보지도 못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다. '내가 정말 뭐 하고 살았나' 하는 자괴감이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그때부터 1년 동안 한쪽 눈을 번갈아 가면서 눈 가리고 시력을 회복시키는 가림 치료를 했다. 딸아이는 갑갑해하기도 하고 균형을 유지하기도 힘들어했다. 보면서 참 미안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지금은 난시와 원시가 있지만 교정시력은 나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이가 대여섯 살이 되면 안과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참 모르는 것도 많고 지나다 보니 어리석었던 일도 많았던 것 같다.  왜 그리 정신없이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살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다.


 어릴 적부터 연말이 되면 데리고 다닌 제야의 음악회 덕분일까? 아주 소소한 예술적 경험 때문인지, 대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내가 보고 싶은 영화나 음악회 가자고 하면 선뜻 따라 나서준다. 


 어릴 때의 감성 교육이 그래서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성인이 되어서 즐길 수 있는 감성이 살아있으니까 말이다. 인생을 풍요롭게, 자신의 감성을 즐기면서 살아가면 참 좋을 것 같다. '유희적 인간'이라는 말이 있듯이 놀고 즐길 줄 아는 인생이 멋진 인생 아닐까?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 후르츠>가 상연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되면 혼자 가지’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게 같이 보러 가자고 말을 툭 던져보았다. 

 다큐 영화이고 노인들의 삶을 다룬 영화라서 '젊은 아이들이 흥미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너무나 쿨하게 OK했다.


 후시하라 겐시 감독의 영화 <인생 후르츠>는 90세의 건축가 쓰바타 슈이치와 그의 아내 히데코의 느린 삶에 관한 이야기다. 나무들로 둘러싸인 단층집에 살면서 계절마다 70종의 채소와 50종의 과일을 키우고 그것으로 히데코가 요리를 하고, 남는 것은 여러 곳으로 나누어 주는 일상을 찍은 영화다. 


《밭일 1시간, 낮잠 2시간》,《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라는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알려졌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계속 되풀이해서 나오는 구절이 있다.      


 "바람이 불면 잎이 떨어진다. 

  잎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비가 내리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자란다. 

  차근차근 천천히...."

 

 “모든 해답은 위대한 자연 속에 있다" 라는 말과 “집은 삶의 보석상자"라는 말이 크게 와닿았다.  내가 이 두 가지를 놓치고 살아왔구나. 뒤늦은 반성을 했다. 삶의 보석상자를 아끼고 보살피는 일을 소홀히 하고 살아왔구나. 더 늦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족도 ‘시간을 함께 써야’ 친해진다. ‘이야깃거리’, ‘추억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후르츠>를 통해 가족 간의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지 깨닫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늘부터 더 늦어지기 전에 가족 간의 소소한 일상을 회복해나가자고 결심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차근차근…, 

   시간을 모아서,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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