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치나남 Sep 17. 2022

나는 가족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구나

- 이야기 하나

 우리 집 연례행사는 매년 12월 31일 부산문화회관에 가는 것이다. 제야의 음악회에 가는 것이다. 이 행사는 젊은 시절 클래식에 대한 동경과 새해를 맞이하는 이벤트를 갖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다. 

 작은 아이가 네 살 정도 되었을 때부터 해온 나만의 소박한 행사였다. 데리고 가서 잠자던 아이를 업고 나온 기억도 있다.


 평소에는 아이에게 예술적 소양을 맛볼 기회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보상 심리에서일까? 아니면 한 해를 돌아보니 특별히 신경을 써준 일이 없는 엄마 역할에 대한 반성에서였을까? 

  작은 아이가 네 살 되던 무렵, 바쁜 와중에 새해맞이 이벤트 겸해서 음악회를 가자고 힘들게 티켓 4장을 구매했다. 그런데 남편은 안가겠다고 했다. 이런 일이 두세 번 반복되자 나도 포기하고 아이 둘만 데리고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가면 될 것을.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족 행사를 하고 싶다고 하는데, 왜 따라 주지 않는 것일까.  정말 속상하고 원망스러웠다.


 조금 나이가 드니, 영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다. 남편은 사람 많고 갑갑한 곳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음악을 듣는 것이 고역인 것이다.  'TV로 편안하게 누워서 제야의 종을 들으면 되는 데, 왜, 돈 주고 사서 고생하느냐? '는 것이었을 거다.      


 세월이 가니 이해 못 할 일도 없고 이해 안 되는 일도 없는 것 같다. ' 나도 참 가족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라, 문득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뭐가 그리 바빠서 정신없이 살아왔을까? 가족을 돌보지도 못하고… '


 큰 아이 건우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참 많았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 배려심이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그리고 스포츠로 다져진 리더십도 큰 역할을 한 것도 같다.  그래서인지,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책가방 안에는 가방 가득 초콜릿으로 넘쳐났다. 그것을 보고 딸과 종류별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자질이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계속 반장을 하게 한 것 같다.


 중학교 졸업식 때였다. 단상에 올라가서 대표로 상을 받는 자리였다. 담임 선생님이 다른 친구 교복을 아이에게 입혀 올려보냈다. 교복 단추 두개가 뜯겨나가 있어 친구 교복과 바꾸어 입힌 것이다. 아이는 단추 달아달라는 소리도 안 했고, 나는 보지도 못했다.  배려심이 큰 아이가 엄마가 항상 바쁠까 봐 말도 안 한 것이다. 

 

 남자아이들은 원래 어지간한 것은 말을 잘 안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편한 부분도 있지만, 나중에 크게 일을 터트리기도 한다.  아직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조금 안쓰럽고 미안하다. 쉰이 넘으니 내가 철이 드는지,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들이 빛 바랜 사진처럼 문득문득 떠오른다.     

작가의 이전글 내 삶의 북 리스트(BOOK LIST)_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