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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나남 Jan 03. 2021

'바꾸거나, 받아들이거나, 떠나거나'

 그 두번째 이야기

나는 2002년 월드컵이 한국과 일본 공동으로 개최될 때 일본에 유학 중이었다.

일본 문부성 초청 교원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H대학교에 파견을 갔다.

교사가 된 지 10년 차에 접어들 즈음이었다.

대학 때부터 꿈이 일본유학이었는데 교사가 되고 그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내가 배치된 대학은 동경에 있는 H대학교였다.

이 대학교는 사범대학으로 유명하고 학교 안에 초·중·고가 있었다.

내가 생활한 기숙사에는 한국에서 온 교사뿐만 아니라, 문부과학성 석·박사 프로그램으로 오는 대학생들도 있었다. 


나와 같은 지도교수 아래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 K가 있었다. 

그 친구는 오다가다 가끔 마주쳤다. 

그런데 항상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안경을 끼고 있었다.

왜, 저렇게 얼굴을 다 감싸고 다닐까? 라고 언뜻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밤 지도교수로부터 밤늦게 전화가 왔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노래방 주인이 K가 밤늦도록 혼자 노래를 불러서 경찰에 신고했고 일본에서 신분 보증인인 지도교수가 노래방에 가서 K를 기숙사에 데려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K가 잘 있는지 방에 가서 보고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그 방에 들어가니 방바닥에 걸을 수 있는 틈이 없을 정도로 모든 물건이 다 펼쳐져 있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놀란 건 처음이었다.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쓰레기 더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겁이 날 정도였다. 


 “교수님이 가보라고 와서 왔어. 차 한 잔 줄까? ” 라고 말을 걸었다.

K는 평상시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았다. 

P대에 간 동생에 대한 콤플렉스, 한 달 동안 미국에 여행 갔다 온 이야기 등, 두 시간가량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방이 엉망진창인 것만 빼고는 크게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난리가 난 것을 알았다. 

그날 새벽에 K가 밖으로 물건을 마구 던졌다고 한다.

같은 층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이 다 깨어났고 기숙사 사감에게 신고하여 경찰이 오고 병원에 실려 갔다고 했다. 

그 이후 K의 방이 K의 머릿속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물건을 던지는 것이 자신의 몸도 던지고 싶다는 징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마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긴장에서 놓여나고 외국에서의 혼자 생활하면서 느낀 외로움, 어릴 때부터 쌓아왔던 열등감이 폭발하여 마음의 병으로 나타난 것 같았다. 


그 뒤 지도교수의 적절한 대처로 8개월 정도 입원하고 한국에서 1년 정도 휴양하고 다시 일본에 돌아와서 무사히 나머지 학기를 마쳤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인생에 한 두번 K와 같은 정신적인 감기가 온다고 한다. 

이때는 가족과 주변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호르몬 과다 분비로 오는 경우가 많고 스스로 통제하기 어렵다고 한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와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현실에서 도망치고자 한다. 

순간적인 쾌락과 망각에 빠지고 싶어한다.

그 결과 게임 중독, 과음, 과식, 과소비, 마약 등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K의 경우 본인이 생각했던 이상과 현실과의 차이가 컸던 걸까?

외국에서 혼자만의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이 원인이었을까? 아니면 쌓여온 콤플렉스가 폭발한 걸까? 

나는 K를 통해 30대 초 귀중한 자산을 얻었다. 

콤플렉스는 딱 잘라 내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코 인생에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경험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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