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의 유대인들(The Money Kings)

대니얼 슐먼

by 이근엽

<월스트리트의 유대인들(영제 : The Money Kings)>은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금융계를 형성한 유대계 금융 가문들의 기원을, 한 편의 역사 드라마처럼 풀어낸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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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셀리그먼(Seligman) 가문, 로브(Loeb) 가문과 시프(Schiff) 가문(이들이 파트너십을 맺으며 '쿤 로브'가 탄생), 골드만(Goldman) 가문과 삭스(Sachs) 가문(이들 결합해 오늘날의 '골드만삭스'가 탄생), 그리고 리먼(Lehman) 가문, 워버그(Warbrug)가문 등 월가를 호령하는(했던) 금융가문들의 초기 미국 이주부터 금융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기까지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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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출발이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금융 엘리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입니다.


책 속의 금융가문들을 개척한 1세대 주인공들은 대부분 떠돌이 행상이나 소규모 상인으로 미국 사회의 변두리에서 출발해, 금융이라는 영역을 통해 가문을 일구고, 혼인과 파트너십을 통해 그들만의 촘촘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산업화, 전쟁, 금융위기 같은 국내외 주요 사건들마다 이들이 그 이면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며 성장해 왔는지가 이 책에서 차분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책의 큰 장점은, 거대한 금융 가문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지 않고, 각 가문에 속한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따라 시선을 전환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감으로써 흥미를 돋는다는 점입니다.


파운더들(founders)이 정든 유럽—주로 독일 함부르크 내지 프랑크푸르트—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에서 겪은 실패와 좌절, 도전과 극복, 운과 불운, 인간관계와 사랑, 상실과 아픔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이 잔잔한 톤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과장과 상상력을 조금 보태자면, 금융사를 읽고 있다기보다 대하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남북전쟁, 서부 개척과 골드러시, 철도 붐과 도금시대, 대공황, 두 차례의 세계대전 등 미국과 세계사의 주요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겹쳐집니다.


교과서에서 한 줄로 지나쳤던 사건들 이면에서 실제로 어떤 선택과 거래, 이해관계가 오갔는지,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미국과 세계의 금융 제도와 경제 정책에 어떤 변화로 이어졌는지를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알게 되는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세계사의 주요 전환점마다 등장하는 구체적인 에피소드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러일전쟁의 종전을 이끈 '포츠머스 회담'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만주 지배권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충돌이 전쟁으로 이어지자, 두 국가는 막대한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럽과 미국 자본시장에서 국채를 발행하려 총력을 기울입니다.


당시 일본은 재무장관인 다카하시를 급파하여, 미국 유대 금융계의 핵심 인물이자 '쿤 로브'를 이끌던 제이콥 시프에게 접근해 일본 국채 인수를 요청합니다.


제이콥 시프는, 당시 '주피터'라고 불리며 미국 금융계를 지배했던 JP모건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금융계 거목으로, 초대 유대인의 리더였던 조셉 샐리그먼의 바통을 이어 받아 금융계에서 뿐만 아니라 유대인/비유대인을 가리지 않고 자선, 교육, 병원 사업에 헌신적이었던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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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정 하에서 벌어지던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집단적 학살에 깊은 분노를 느끼고 있던 시프는, 일본을 돕는 데 그치지 않고 러시아의 전쟁 자금 조달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힘을 쏟씁니다.


시프는 미국 내 유대계 금융가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JP모건과 같은 경쟁 관계에 있던 금융 세력까지 설득해 미국 시장에서 러시아 국채 발행을 좌절시키고,

더 나아가 유럽 금융계의 지배자이자 유대인의 상징적 지도자였던 네이선 로스차일드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유럽 자본시장에서도 러시아의 자금 조달을 막아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결과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전쟁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실패했고, 흔히 ‘전쟁의 힘줄’이라 불리는 금융 역량에서 밀린 채 육지와 해상 전투에서 연이어 패배하게 됩니다.


전쟁은 포츠머스 회담을 통해 종결되는데,

이 과정에서 시프는, 전쟁을 지속하면 월가는 더 이상 전쟁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며 일본 측에게 러시아에 대한 전쟁 배상금 요구를 그만 포기하고 협상안을 수용할 것을 권고했고, 일본이 이를 받아들인 결과 종전협상이 타결되게 됩니다.


그 결과 일본과 러시아는 종전에 합의하지만,

열강이 참석한 이 회담에서 조선은 일본의 지배권이 인정되는 대상으로 취급되며 식민지화가 국제적으로 사실상 공인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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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는 총성과 외교 문서 뒤편에서 누가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누가 그 흐름을 차단할 수 있었는가가 세계사의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면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 즉 오늘날 세계 금융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유대계 금융회사들을 세운 인물들의 행적을 따라가며 세계 금융시장에서 발생한 일들과 역사의 진행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어 왔는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금융 제도나 숫자 중심의 설명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의 선택과 제약, 우연과 시대적 조건이 쌓여 금융 질서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에, 추상적으로만 느껴지던 금융사의 장면들이 구체적인 얼굴을 갖게 되는 것이죠.


이 점에서 <월스트리트의 유대인들>은 특정 집단을 신화화하거나 음모론적으로 묘사하는 책이 아닙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유대인에 대해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오해—마치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악마적 권력을 가진 집단이거나, 선민의식에 기대어 오직 돈과 이익만을 좇는 이기적인 세력이라는 인식—가 얼마나 근거 없고 편향된 것인지를 이 책이 차분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인데요,


책 속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금융은 특권적 선택지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택할 수밖에 없었던 거의 마지막 생업 수단에 가까웠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유럽 각지에서 반복된 박해와 차별, 추방을 겪으며 정착과 이주의 역사를 되풀이해야 했습니다.


새로운 땅에 도착할 때마다 다시 밑바닥부터 삶의 기반을 닦으며 신뢰를 쌓아야 했고, 법적·사회적 제약 속에서 허용된 영역 안에서만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금융은 토지나 길드, 공직에서 배제된 이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영역 중 하나였을 뿐이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단지 개인적 부를 축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차별과 박해가 일상인 유럽을 떠난 새로운 기회의 땅 미국에 정착하면서,

철도 건설과 산업 자금 조달, 전쟁 국채 인수, 공공 프로젝트 지원 등을 통해 새로 정착한 사회에 기여하려는 시도를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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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유대인들이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편견과 음모론에 왜 깊은 분노와 억울함을 느끼는지,

그리고 정치적·제도적 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왜 적극적으로 로비에 나설 수밖에 없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 책은 특정 집단을 미화하거나 변호하려 하기보다는,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오해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인물들의 삶을 통해 조용히 좁혀 나가며,

금융이 언제나 정치·사회·역사적 맥락 속에서 작동해 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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