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존 로(John Law)'에 대하여

실패한 투기꾼인가, 현대 금융의 선구자인가

by 이근엽

위험한 혁신가의 등장


18세기 초 유럽에는 한 명의 위험한 혁신가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존 로(John Law, 1671–1729).


%ED%99%94%EB%A9%B4_%EC%BA%A1%EC%B2%98_2026-02-20_134454.jpg?type=w773 John Law의 초상화


도박사이자 금융 사상가였고, 중앙은행의 선구자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역사상 가장 극적인 금융 붕괴 중 하나의 중심 인물이기도 했다. 당대 사람들에게 그는 허황된 꿈을 팔아 국가를 혼란에 빠뜨린 투기꾼이었고, 후대 일부 경제사학자들에게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통화혁신가였다.


그러나 존 로는 단순한 버블 설계자가 아니라, 화폐와 신용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려 했던 최초의 실험가 중 하나였다.



도박사에서 금융 이론가로 (1671–1700년대 초)


1671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존 로는 젊은 시절부터 확률 계산과 금융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삶을 바꾼 사건은 1694년 런던에서 발생한다.


결투 끝에 상대를 죽이게 된 그는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탈출에 성공했고, 이후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를 떠돌며 금융과 화폐에 대한 독특한 사상을 발전시켰다.


이 시기에 그는 당시 지배적이던 금속(금과 은) 화폐 체계에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경제의 침체는 금과 은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신용의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화폐를 금속이 아니라 신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와 오를레앙 공 — 거대한 실험의 시작


1715년 루이 14세 사후, 프랑스는 전쟁과 궁정 지출, 그리고 과도한 국채 발행으로 인해 막대한 국가 부채에 시달리고 있었다. 재정은 사실상 한계에 도달했고, 기존 방식으로는 위기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섭정으로 권력을 잡은 오를레앙 공(Philippe II, Duke of Orléans)은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했고, 프랑스 금융을 새로운 토대 위에 재설계 하겠다는 존 로의 제안은 그의 관심을 끌었다.


%EC%98%A4%EB%A5%BC%EB%A0%88%EC%95%99%EA%B3%B5.jpg?type=w773 섭정공 오를레앙(Philippe II, Duc d'Orléans)


1716년 로는 오를레앙 공의 정치적 후견에 힘입어 파리에 방크 제네랄레(Banque Générale)을 설립한 후 지폐 발행을 시작하고, 다음 해인 1717년에는 미시시피 회사(Compagnie d’Occident)를 설립한다.


미시시피 회사는 북미 루이지애나 지역의 미시시피 강 유역에 펼쳐진 광대한 토지에서 새로운 정착지를 건설하고, 농업과 무역을 발전시켜 장차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것을 핵심 사업 목적으로 하였다.


화면 캡처 2026-03-13 154753.jpg 미시시피회사의 상징


존 로는 미시피회사의 주식을 발행하면서 당시 투자자들이 보유하던 프랑스 국채로 주식 인수대금을 납입(현물출자)하도록 유도하였고, 회사의 비전에 이끌린 다수의 투자자들이 국채와 주식을 맞바꿨다.


주식 발행을 통해 프랑스 국채를 확보한 존 로는 오를레앙공과 사전 합의된 대로 국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음으로써 프랑스 정부의 부채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대신 그 대가로 정부로부터 해외 식민지와(루이지애나)에 대한 개발 및 무역 독점권과 더불어 조세 징수 등 세입 관련 권리를 부여받았다.


이어 1718년 방크 제네랄은 국유화되어 방크 루아얄(Banque Royale, 왕립은행)로 전환되고, 왕실이 신용을 보증(guarantee)한 방크 로열 발행 지폐는 사실상의 '국가화폐'가 된다.


화면 캡처 2026-03-13 154931.jpg 방크 루아얄의 인장


그리고 프랑스 정부가 방크 루아얄 발행 지폐에 대한 사용과 유통을 강제하자, 시민들은 자신들이 보유하던 국채와 금은을 지폐와 교환했다.


1720년, 새로운 화폐 발행과 국채와 주식의 교환을 통하여, 미시시피 회사, 방크 루아얄, 프랑스 국가 재정을 하나의 금융 시스템으로 통합해낸 존 로는, 마침내 재무부 장관(Contrôleur général des finances)에 오른다.



신용의 폭발과 거품의 형성


왕립은행이 발행한 지폐는 곧 프랑스 금융 경제 시스템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1719년에 이르러서는, 미시시피 회사가 여러 해외 식민지 개발 및 무역을 수행하는 회사들을 통합하며 Compagnie des Indes로 확대되었고, 국채 관리와 세입권 등 국가 기능의 상당 부분을 맡게 된다.


설립 초기 자신들이 보유하던 프랑스 국채를 회사 주식으로 교환했던 투자자들은, 미시시피 회사의 원대한 비전에 점차 환호하며 왕립은행 발행 지폐로 주식 대금을 납입하기 시작했다.


방크 루아얄이 국채와 금·은을 기초로 발행한 지폐가 다시 회사 주식으로 흘러 들어갔고, 결국 투자자들은 국채와 금·은으로 미시시피 회사의 미래 수익을 산 셈이었다.


이 과정에서 존 로는 열정적으로 루이지애나를 황금 땅으로 포장하며 투자자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주식의 가격이 연일 치솟자 귀족, 상인, 장인, 하인, 군인 등 신분과 직업에 상관 없이 캥캉푸아 거리(Rue Quincampoix)에서 주식을 사고 팔며 투자 열기를 증폭시켰고,

존 로는 이를 더욱 부채질 하기 위하여, 주식가액의 일부(약 10%)만 먼저 납입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주식을 매도할 때 완납하는 방식을 허용하였다.


846_1284_3942.jpg?type=w773 1720년 캥캉푸아 거리


그러나 그 열기는 프랑스를 넘어 영국, 네덜란드 등 다른 나라의 투자자들에게까지 확산되며, 역사에 잊혀지지 않을 거품(Bubble) 경제의 시작을 알렸다.



붕괴 — “바람을 팔려 했던 남자”


투자자들이 상상했던 루이지애나는 현실과 크게 달랐다.


미시시피 강 유역의 많은 지역은 잦은 홍수로 물에 잠기기 쉬웠고, 유럽에서 기대했던 것처럼 즉각적으로 농업이나 상업적 개발이 가능한 땅은 아니었다.


풍부한 금과 무한한 자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선전과 달리, 실제로 이주한 일부 사람들은 낯선 환경 속에서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 식량 부족, 혹독한 자연 조건에 직면해야 했다.


JohnLawCamp-Biloxi-1720.jpg?type=w773 존 로 당시 미시시피 정착지


실질적 경제성과가 기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방크 로열이 발행한 지폐의 팽창 속도는 실물경제가 가진 실제 크기를 한참 넘어섰다.


1720년, 투자자들이 지폐를 다시 금·은(금속) 화폐로 교환하려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방크 로열에 대한 신뢰는 급격히 흔들렸고, 결국 방크 로열 발행 지폐와 사실상 동일한 의미를 가졌던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은 하루가 다르게 곤두박질 쳤다.


투자자들은 남들보다 먼저 주식을 팔려 캥캉푸어 거리로 몰려들어 압사 사고가 발생하고, 극심한 손해를 본 데 분노하여 금융 중개인을 공격하거나 폭동을 일으켜 경찰과 군대가 출동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왕실의 보증을 근거로, 은행으로 달려가 지폐를 금속화폐로 교환하려 하였으나 거부되자 고함, 난동을 부리고 창구 직원을 위협하거나 폭력을 휘둘렀다.


picard4.jpg?type=w773 버블 붕괴 이후 재앙적 상황을 묘사한, Bernard Picart, 『후세에 바치는 기념비적 작품』


사회전체적으로는 금속 화폐를 숨기고 지폐 사용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퍼지고, 한때 부의 상징이었던 미시시피 주식은 사회적 분노의 대상이 되며, 그렇게 버블은 금융 시장을 넘어 프랑스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남았다.


존 로에게는 조롱하는 풍자화와 만평이 쏟아졌다.


그중 일부는 로를 보이지 않는 부를 약속하며 허공을 가리키는 인물로 묘사했고, 그는 “바람을 팔려 했던 투기꾼”으로 기억되었다.


Bernard_Picart_-_The_Perfumer.jpg?type=w773 Bernard Picart, 『The Perfumer』, 주식을 똥으로 비유하며 미시시피 버블을 풍자


그는 살해 위협 속에 간신히 프랑스를 탈출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광기(mania)와 공포(panic)가 만들어낸 버블의 붕괴(crash)였다.



실패한 투기꾼인가, 시대를 앞선 실험가인가


존 로는 당대에는 실패자이자 희대의 사기꾼으로 평가절하되었다.


그러나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새로운 금융 사상은 현대 금융 체계의 밑바탕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중앙은행과 같은 지폐 발행, 국가 부채의 금융화, 신용창출을 통한 경제 활성화라는 그의 실험은 오늘날 세계 금융 시스템의 핵심 구조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이 시리즈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한 인물의 극적인 실험을 따라가며,

그는 현대 중앙은행의 선구자였는지,

미시시피 버블은 남해회사와 무엇이 달랐는지,

그리고 토지는 어떻게 현대 금융의 기초가 되었는지


차례로 살펴보려 한다.


그 출발점은 ‘신용’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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