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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Jul 07. 2023

7. 사건은 언제나 방심할 때 일어난다.

일본 | 때 아닌 논란

놀랍게도 이 글을 적기 시작한 지 몇 번째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출발을 못했다.


그래서 이제는 출발하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앞서 그렇게나 첫 번째 나라로 멕시코를 가게 되었다, 그때를 말렸어야 했다, 했지만

사실 나의 첫 번째 나라는 멕시코가 아니라 일본이었다. (!)


내 주변에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이 이야기를 하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나의 국적에 대해 의심(너 일본인이야?)하거나, 혹은


  '그러고 보니 약간 일본 스타일이네'


라고들 했다.


하지만 이건 명확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

난 일본 스타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공항에 앉아있으면 한국인 빼고 다들 자기네 나라 언어로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기다린다고 마닐라 공항 바닥에 앉아있었다. 어떤 필리핀 여자가 따갈로그어로 말을 걸어왔다.

라오스 길가에 앉아 있었다. 한국인이 라오스말로 인사해 왔다.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서 중국인 무리가 나에게 중국어로 길을 묻는다.

시드니의 한 숙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더니 어떤 여자가 나의 국적을 물었다. 왜 묻느냐니까 자기네 나라 사람 같아서 물었다고 했다.

일본인 Yoko는 내가 태극기 커버의 여권을 보여주기 전까지 나의 국적을 의심했다.

내 이탈리아 친구 Emma가 이탈리아에 가면 나 같이 생긴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크로아티아 두브루브니크에서 만난 한 아시아인이 내가 아프리카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그 정돈 아닌데.)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한 한국인과 한국어로 대화를 했다. 한참 뒤 '저, 근데 어떻게 그렇게 한국어를 잘하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I'm from Daegu.)


...


그냥 한국인같이 덜(?) 생긴 거뿐이다.


어쨌든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나의 국적에 대해 해명을 해보자면(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태어나서 지금 이 순간까지 단 1초도 한국인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으며, 단 한 번도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방, 교육, 근로의 의무를 다 했고,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있다.

(내가 낸 세금이 얼만데.. 일본인이냐 소리 들으면 내가 낸 세금 때문이라도 서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한국에 왔으니

약 7년이란 시간을 일본에서 보냈음을, 그리고 거기에 대한 추억과 향수가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세계일주의 시작을 그곳에서 하고 싶었다.

한국에 온 지 17년이 넘었고 그 사이에 몇 번인가 일본여행도 다녀왔지만 그럼에도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나의 어릴 적 추억의 장소에서.


그렇게 일본으로 출국했고 기억을 더듬어 나의 어릴 적 살던 동네를 찾아갔다.

2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 나라의 특성 때문인지 작은 동네라서 그런지 바뀐 곳이 많이 없었다.

동네를 걷다 보니 '어 여기에 뭐 있었는데!', '어 이리로 가면 뭐가 나왔는데!' 하며 그 시절의 나와 기억을 공유하는 경험을 했다.


내가 살던 동네의 역. 그곳에서 보이는 풍경이 낯이 익었다. 맥도날드가 보인다.

엄마와 친구들이 저 맥도날드에서 자주 모임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도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햄버거 세트를 하나 주문했다. 역시 맥도날드 햄버거는 맛있다.

맥도날드에서 조금만 옆으로 들어가면 초등학교가 나온다.

비록 한 학기뿐이었지만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1학년 4반.

초등학교를 등지고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다녔던 보육원이 있다.

보육원에 들어가 보았다. 모르는 선생님이 계셨다.

그 선생님에게 20년 전에 내가 여길 다녔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시절 내 기록 같은 게 있으면 보고 싶다고 했다.

개인정보라서 안된단다.(그 개인이 전데요?)

아쉽게도 내 정보를 개인정보보호에 의해 열람하지 못했다.

보육원을 나왔다.

나는 당시 보육원 바로 뒤에 있는 집에 살았다.

작은 마당과 방이 2개, 그리고 주방이 일자로 이어져있는 작은 집. 내가 기억하는 그 집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아주 조금 쓸쓸해졌다.


조금 더 마을을 걸었다.


우연과 인연이 겹쳐 나를 기억하는(나는 기억 못 한다는 소리다), 혹은 내가 기억하는 그 시절 친구들을 열댓 명과 당시 보육원 담임 선생님들과 연락이 닿아, 때 아닌 보육원 동창회도 이루어졌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


어릴 적 유년 시절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애틋함으로 시작한 첫 여정은 뜻하지 않은 만남과 행복한 추억들을 주었다.

여행의 시작이 좋았다.

느낌이 좋았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될 세계일주 중에 좋은 일들, 좋은 만남들이 가득할 것 같았고,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진짜 첫 번째 나라(사실은 두 번째) 멕시코에 가기 위해 나리타 공항에 가기 전까진.



사건은 언제나 방심할 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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