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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Dec 16. 2023

19. 이런 성당이라면, 새벽미사도 볼 수 있을 텐데.

엘살바도르 | 한 천주교 신자의 고백

 "니(네)가?"


살면서 많이 들어본 말이 있는가?

나는 "니(네)가?"라는 말을 특히 많이 들었다.

언제부터 이 말을 듣기 시작했나를 생각해 보니 고등학생 때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던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항상 가방에 읽을 책을 넣어 다녔다. 그러다 보니 애석하게도 교과서를 넣을 공간이 없었다. (?)

학교에서도 도서관을 자주 왕래하며 책을 빌려 읽었고, 수업시간에도 몰래 책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애석하게도 교과서를 볼 시간이 없었다. (??)

그런 나였기에,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이과 반에 있는 나를 본 친구들의 반응은 "니가?" 였다.

이건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당시 나는 이과/문과의 개념이 없었고 초등학교 시절 '남자 = 보이스카우트', '여자 = 걸스카우트'처럼 당연히 '남자 = 이과', '여자 = 문과'인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마! 남자라면 당연히 이과 아이가!?) 아무런 의심 없이 고민 없이 이과를 선택했던 것이다.(편견)


이런 무지와 편견 속에서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대학교에 간 날.

돌연 밴드가 하고 싶다는 충동적인 마음에 그대로 밴드 동아리 문을 두드렸다.(예전부터 행동력 하나는 남달랐다.)

동아리 가입신청서에는 좋아하는 밴드를 적는 란이 있었는데, 좋아하는 락밴드는커녕 아는 밴드라고는 버즈가 전부였다.(메탈리카나 레드제플린 같은 걸 적었던 친구들한테 두고두고 놀림당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락이라곤 들어본 적도 없었다.

기타랑 베이스의 차이조차 몰랐으니, 말 다 했다.


 '노랜 못하니까 보컬은 안 되겠고, 키보드는 악보를 못 보니까 안 되겠고, 드럼은 힘들어 보이니까 안 되겠고, 기타는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안 되겠고, 그럼 베이스 해야겠다.'


파트도 하고 싶은 파트가 아니라, 할 수 없는 이유를 빼고 보니 남는 게 베이스라 선택했다.

나의 목적은 밴드가 하고 싶은 거였지 어느 파트가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기에.

(결과적으론 베이스가 가장 적성에도 맞았고, 지금은 밴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악기이기도 하다. 해피엔딩.)

이런 나였기에, 밴드를 한다는 말에 주변의 반응은 "니가?" 였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 했다. 락 이라곤 전혀 모르던 나는 금세 밴드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락 스피릿에 충만해져 갖은 기행과 장난으로 똘끼(?) 가득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러다 정기기수 활동이 끝나갈 즈음 돌연 ROTC에 꽂혀 지원했다 덜컥 합격했다.


 "나 ROTC 하기로 했어. 장교로 군생활 할 거야."


또 들었다. 니가?


의외로 나는 그 순간 내가 입고 있는 옷에 걸맞게 잘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락 스피릿에 똘끼(?) 가득했던 나는 후보생이 되어 단복을 입고, 빡빡머리가 되니 더 이상 미쳐 날뛰지 않았다. 훈련 성적도 꽤나 준수했다.


이쯤 되면 이 뒤의 이야기는 안 해도 다들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름 군생활도 잘하며 주변으로부터 장기를 권유받던 내가 '세계일주'를 위해 전역한다 했을 때.

세계일주를 하며 만났던 친구들이 사실은 내가 '장교' 출신이란 걸 알았을 때.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와서 '교직원'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걸 이야기했을 때.


그때마다 나는 "니가?" 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많이 들은 "니가?"의 이유는 사실은 내가 천주교 신자라는 걸 들켰을 때(?)였다.




멕시코에서 브라질까지 쭉 남하하기로 결정했기에, 어떤 나라들을 거쳐가나 지도를 열심히 보던 중 발견했다.

엘살바도르.

엘살바도르? 조금 낯선 이름의 나라.(사실 난 이때 처음 알게 됐다.)

그래서 평소처럼 구글에 검색해 봤다.


 '엘.. 살바도르..'

 '어디 보자..'

 '세계 최악 치안..' (?)

 '범죄와의 전쟁...' (??)

 '세계 살인율 1위 국가....' (??!)  


.. 가지 말까..?


그러던 중 눈에 보이는 사진 하나.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작은 성당 하나.


Iglesia El Rosario


그런데. 그 성당의 내부가 미쳤다.

말도 안 되는 비주얼에 아까까지의 걱정과 우려는 이미 뒷전이었다.


 '어머 여긴 꼭 가야 해!'


그래서 오로지 성당 하나만을 바라보고, 엘살바도르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플로레스에서 출발한 밴은 어느새 과테말라의 국경마을에 도착했다. 긴장 빠짝 하고 입국했다. 엘살바도르. (Hola!)

국경을 통과하고, 국경마을 산타아나(Santa Ana)에 도착하니 이미 하늘은 어둑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수도 산살바도르(San Salvador)까지 가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다.(사실 무리하면 갈 수 있지만, 워낙 악명이 높은 곳이라 무서웠다. 무리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산타아나에서 숙소를 잡고 그날은 방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고(문도 잘 걸어 잠갔다.) 지난 여행의 여독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수도 산살바도르로 향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악명 높은 이름에 비해 수도 산 살바도르는 평범한 도시였다.

상인들은 평범하게 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있고, 회사원들은 각자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학교에 가는 학생들도 있고,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는 사람들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로사리오 성당을 가기 위해 앞만 보고 걷던 나는 그제야 긴장이 살짝 풀렸다.

그렇게 긴장이 풀려갈 때 즈음 사진으로 봤던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관은 의외로 평범(?)하다. 다만 약간 성당스럽지 않을 뿐.


어서 빨리 성당 내부를 볼 생각에 정신이 팔려, '저분들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두근두근)

와.. 나는 감동했다.

조용히 성호경도 그어보았다.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기도를 했다.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여행이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해주세요.'



평범한 외부와 그렇지 못한 내부. 미쳤다. 너무 아름답잖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렇게 보이진 않지만 나는 천주교 신자다.

중고등학생 땐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녔고, 대학생이 되고 나선 주임신부님께 속아서(?) 주일학교 교사도 했다.

성가대에서 베이스도 쳤었고, 청년회 활동도 했었다.

사실 신앙심이 깊어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기보단, 성당에 가면 보는 사람들이 좋아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즐거워서 성당에 다녔던 것 같다.


나름(?)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생각하는 나지만, 그럼에도 평일에 미사를 드리러 갈 생각은 잘하지 않는다.

하물며 새벽미사는.(절레절레)

그래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오색찬란한 빛이 가득한 로사리오 성당을 가만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성당이라면, 새벽미사도 볼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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