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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Dec 12. 2023

18. 내가 품지 못한 색은 어떤 색일까?

과테말라 | 호주남자, 플로레스 그리고 갈색 눈동자의 여행자

세상에는 참 많은 색이 있다.

그리고 모든 사물은 각자 고유의 색을 품고 있다.

바다는 파란색, 사과는 빨간색, 나무는 초록색.


나는 색을 받아들임에 있어 다른 사람에 비해 스펙트럼이 넓은 편인 듯하다.

다양한 색을 잘 알고 구분할 줄 안다는 의미가 아니라, 넓은 범위의 동일 계열 색상을 하나의 색으로 구분한다는 의미로.


나는 빨간색을 안다. 빨간색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사실도.

그래도 잠깐 빨간색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빨간색 종류'라 검색해 보았다.)


빨간색(Red), 마젠타(Magenta), 플레임 레드(Flame Red), 상그리아(Sangria), 베네티안 레드(Venetian Red), 스트롱 레드(Strong Red), 핫 레드(Hot Red), 진홍색(Crimson), 다홍색(Scarlet)...


.. 그만 알아보기로 했다.(아찔하다. 와 이래 많노?)

저걸 적으면서도 무슨 색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저 많은 빨간색을 얼마나 구분하고 살지 잘 모르겠지만(그런 분들을 존경합니다.), 이름을 지은 사람들의 수고에 죄송스럽게도 나에게 있어선 저 많은 색은 그냥 빨간색 한 가지 색일 뿐이다.

빨간색도 빨간색이고, 마젠타도 똑같은 빨간색이고, 다홍색도 똑같은 빨간색이다.

여러 개 나열해 놓고 보면 '그러네, 조금 다른 빨간색이네.' 정도로 인식하려나.


빨간색을 예시로 들긴 했지만, 다른 색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가 보는 세상은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 흰색, 검은색, 회색.. 등등 몇 개 남짓한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금 더 색에 대한 표현이 필요할 땐 '파란색에 초록색이 20 정도 들어간 느낌?' 같은 추상적인 표현이 대부분이었다.(그마저도 실제로 저렇게 섞어보면, 내가 본 색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색을 받아들이는 스펙트럼이 남들에 비해 더 넓은 편인 것은 어쩌면 색에 무관심하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성격과는 반대로 나는 어떤 장소나 만났던 사람들, 그 순간의 느낌을 색깔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장소, 모든 사물, 모든 사람이 색으로 연상하는 건 아니지만 왠지 색으로 표현하는 게 잘 어울리는 그런 것들이 있다.


안티구아를 생각하면 나는 빨간색이 떠오른다.

멕시코시티는 초록색이고, 호주는 황토색과 회색이 공존해 있다.

Taki는 남색이, You는 흰색에 하늘색이 아주 조금 찍혀있는 느낌이다.


문뜩, '나는 어떤 색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동굴투어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왔다.

어제까지 혼자였던 방에 룸메이트가 한 명 생겨있었다.


금발의 머리를 어깨까지 멋들어지게 기른 호주남자였다.(아쉽게도 잠깐 방에서 이야기만 해보고 각자 볼일 보러 나가서 보지 못했다. 따로 페이스북 친구등록도 하지 않았기에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단 두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호주남자라는 것. 그리고 포클레인을 운전하는 것이 직업이라는 것.

머리색 때문인지 직업 때문인지, 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호주남자를 노란색으로 기억한다.

노란색이 기억에 남아서 이 사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직업을 이야기할 때의 태도가 인상적이었기에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이리라.


부끄럽게도 당시의 나는 직업에 귀천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도 있었다.(물론 지금은 없다. 오히려 현장의 중요성을 알기에, 존중하고 존경한다. 무엇보다 나보다 고액연봉...)

본인의 직업이 포클레인을 운전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는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본인의 직업에 자신감과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다.(Why not?)


내가 포클레인을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어디 가서 저렇게 스스로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본인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당시의 내 대답은 당연히 No일 것이다.

아니, 지금 직장인으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아도, 직업의 귀천을 떠나 내가 선택한 이 직업에 대해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아마 No일 것이다. 그만큼 요즘의 나는 하루하루 출근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무기력하고, 지쳐있다.(나만 그러니?)


그래서 그가 멋있어 보였다. 부러웠다. 그때도 멋있어 보였는데, 지금 보니 더 멋있다.

나도 언젠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까?

(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내 직업이 떳떳하지 못하거나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논란이 있는 직업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그를 노란색으로 기억하는 건, 머리색깔도, 포클레인의 색깔도 아닌, 그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밝은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랑킨에서 세묵참페이와 동굴투어를 끝내고, 호수가 아름다운 플로레스(Flores)로 향했다.

다행히 숙소에서 플로레스로 향하는 밴도 운행해서, 한 큐에 다 끝냈다.(편리한 숙소구만)

사실 호수가 예쁜 것도 있지만, 플로레스에서 티칼(Tikal)을 갈 수 있다는 이야기에 혹했다.

이집트에만 있는 줄 알았던 피라미드는, 멕시코에도 있었다. 그리고 과테말라에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티칼. 이번엔 마야 문명의 피라미드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갈 수 있으랴? 내가 고대도시를, 피라미드를 놓칠 수 있으랴?


랑킨에서 머물렀던 숙소에서 바로 세묵참페이가 보였다면, 플로레스의 숙소에선 바로 호수가 보였다.

플로레스는 나에게 파란색으로 기억이 남는다. 사진을 보면 왜 그렇게 기억에 남는지 이유를 알 수 있으리라.



사진 같은 하늘이 비친 그림 같은 호수는 그 자체로 한 편의 훌륭한 작품이다.



플로레스에서 티칼에 가는 투어를 신청했다.

티칼을 방문하기 위해선 새벽 일찍 일어나서 출발해야 한다. 밴을 타고 깊은 정글 속으로 들어간다.

해가 뜨기 전에, 아직 온 세상이 깜깜한 어둠에 덮여있을 때, 오로지 손에 든 한줄기의 빛을 뿜어내는 손전등에 의지해 가이드를 따라 걸어간다.

손전등 하나 달랑 들고 정글을 헤쳐나가다 보면 살짝 겁도 나지만, 고대문명이라는 그 이름과 정글이라는 대자연의 압도감에 두려움보다도 특유의 엄숙함과 경이로움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갑자기 방금까지 아무것도 없다 생각했던 곳에, 눈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렇게 티칼의 피라미드는 내 눈앞에 그 웅장함을 드러냈다.

아직 검푸른색의 하늘과 짙은 안개로 자욱한 그곳은, 겨우 하늘과 하늘이 아닌 곳의 구분이 갈 수준의 밤과 새벽 그 사이 어딘가의 순간이었다.

그런 어둠 속에서 환상처럼 갑자기 나타난 티칼의 피라미드는 나에게 커다란 감동이자 신비였다.

(멕시코의 테오티와칸에서도, 훗날 가게 될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도 이런 감동은 없었다.)


티칼의 피라미드가 점차 눈에 익어올 때쯤 검푸른색의 하늘도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했다.

가이드는 우리를 재촉했다. 어서 피라미드에 올라가라고.

생각보다 가파른 피라미드에 올라가니 주변의 정글이 내 눈 아래에 있다. 사방이 정글이고, 그 정글에서 정글의 나무보다 키가 큰 피라미드의 중턱에 내가 걸터앉아 있다.

정글이란 이름의 대자연에 둘러싸인 것만으로도 경이로운데, 그런 정글이 내 발아래 있다는 것.

그리고 저기 멀리에 정글 위로 또 다른 피라미드가 솟아 올라와 있는 모습을 본다는 것.

그 너머로 올라오는 태양을 보면서 왜 우리가 그토록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새삼 이 여행길에 오르길 백번, 아니 백만 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정글 속에 있는 마야 유적지 티칼은 내가 여행하면서 갔던 유적지들 중에서 그 어떤 곳보다 가장 중남미와 잘 어울리는 유적지였다.

그렇게 티칼은 내 안에 짙은 녹색으로 칠해져 있다.




고등학생 때 지독한 편견으로 인해 지극히 문과스러웠던 나는 이과를 선택했다.(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언급해볼까 한다.)

지금까지 문과스럽게 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이번엔 조금 이과스럽게 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빛은 물체에서 반사되거나 투과되는 성질이 있는데, 우리가 물체 고유의 색깔을 느끼는 것은 가시광선의 특정한 색을 물체가 반사하면 눈이 그 반사된 빛을 고유 색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눈은 그 사물이 품지 못한 색을 그 사물 본래의 색으로 보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서두에서 떠올랐던 '나는 어떤 색일까?'라는 의문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내가 품지 못한 색은 어떤 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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