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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Dec 08. 2023

17. 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할 일이 생겼다.

과테말라 | 후회라는 감정에 대하여 2

세계일주를 하는 동안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속에서 많은 감정을 느꼈다.

그 안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다. 지독하게 외로웠던 적도 있고, 몹시 화가 났던 적도 있다. 몹시 행복했던 적이 있었나 하면 누군가를 그리워한 적도 있었다. 내 피와 살이 잘려 나가는 느낌의 상실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움도 느꼈다. 그리고 한국에선 잘 몰랐던 '감동'이라는 감정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우유니 소금 사막에 갔을 때가 가장 큰 감동의 순간이었다.)


신기하게도 세계일주를 계획하던 당시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여행 중에 느낀 수많은 감정들 속에 '후회'란 감정은 없었다.(물에 빠져 죽어가는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순간의 선택에 의한 후회는 여전히 많았지만, 적어도 '내가 무슨 호사를 누리겠다고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나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라고 세계일주를 떠나 온 것 그 자체에 대한 후회는 없다.

여행을 하던 중에서부터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당장의 살 길을 찾았던 힘든 취준생 시기,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현재까지도 같은 마음이다.




물에 빠져 점점 죽어가는 그 와중에 '아무리 생각해도 동굴에서 물에 빠져 죽는다는 건 조금 부끄럽네'라는 생각을 한 나는 대단한 걸까? 한심한 걸까?


어쨌든 아직까지 이 생에 미련이 많아 허우적거리고 있던 중에, 갑자기 내 몸이 솟구쳐 올랐다.

정확하게는 내가 물에 빠진 것을 보고 Tim을 포함한 세명의 친구들이 나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들었고, 장신의 유러피언 세 명이 나를 물속에서 들어 올려 준 것이다.

그렇게 그들 덕분에 나는 '첫 번째'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잠시 차질이 생길 뻔했던 나의 '100살까지 살기' 프로젝트는 그렇게 다시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 고마워! Tim과 친구들!)


물에서 건져 올려진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어느샌가 아까 먼저 건너갔던 가이드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가이드는 나에게 괜찮냐는 말과 함께 나에게 동굴투어는 여기까지만 하는 게 어떻겠냐고, 여기서 나머지 일행들이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지금 동굴의 70% 정도를 왔는데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 물웅덩이(?)를 건너간다 하더라도, 조금 더 앞으로 가면 5m 정도 높이의 다이빙 포인트가 있어 수영을 할 수 없다면 그곳을 지나갈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 정도 거리의 물 웅덩이(?)도 못 건너는데, 다이빙해서 지나가야 한다니.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가이드는 나에게 제안을 했지만, 사실상 이건 통보였다.


애초에 여행을 준비할 때 적어둔 준비물 리스트에 자존심이란 것은 없었기에, 상할 자존심도 없었다.

하지만 수영을 못해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왜 한국에서 수영을 배우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아쉽지만 나는 이곳에서 리타이어 하기로 했다.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애써 웃어 보이며 나는 괜찮으니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원정길을 나아가며 정이 들었었는데. 동굴원정대 파티원들과 나는 서로 끝까지 원정길을 함께하지 못함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하나둘 나아가기 시작했고, 나는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혼자 남은 내가 이제부터 할 일은 적당한 곳에 걸터앉아 수영을 배우지 않았던 나를 자책하는 일과 일행들이 끝을 찍고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일 뿐이었다.


 '?'


나는 이곳에 혼자 남아있어야 했다.

그런데 웬 여자애가 내 옆에서 같이 다른 아이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는 그 여자애에게 물었다.


 "너는 안 가?"


본인도 다이빙해서 건너갈 자신은 없어서 그냥 여기 남아서 나랑 같이 다른 사람을 기다리기로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아까 얼핏 보기엔 수영 잘했던 거 같은데...)

왠지, 혼자 남아있는 나를 위해서 곁에 남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배려가 무안해지지 않게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걸터앉을 곳을 찾아 앉은 뒤 짧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다른 일행이 오길 기다렸다.


혼자 남아있었더라면 계속 자책하고 위축되어 있었을 텐데..

이 애랑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책할 틈도 위축되어 있을 틈도 없었다. 그렇게 많은 대화가 오고 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나머지 일행들도 끝을 찍고 돌아오고 있었다.


진짜로 높은 높이에서 물에 뛰어드는 것이 무서워서 남아 있었는지, 아니면 홀로 남은 내가 걱정되어 함께해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친구의 존재는 나에게 참으로 커다란 위로와 위안이었다.

조금 미안했고, 많이 고마웠다.

이 친구뿐만 아니라 아까 나를 구해주었던 Tim과 다른 친구들, 그리고 나를 응원해 주고 격려해 줬던 나머지 파티원들 모두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여행을 하다 보면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여행자들끼리 모여서 함께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이 있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화는 영어로 이루어지는데, 여행 초반이었던 이 시기는 소위 말해 아직 영어로 말하는데 입이 트이기 전이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옆에서 참관하곤 했었고, 그 조차도 그들의 대화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해 대충 알아들은 척 끄덕거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 누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면 몇 번의 "Sorry?(뭐라고?)" 끝에 겨우 답변하는 정도.

(일단 모르면 Yes라 대답했던 나였기에 예약도 없으면서 항상 예약 있냐는 질문엔 Yes라 당당하게 대답했다.)


나를 위해 남아서 다른 일행들을 기다려준 그 여자애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나를 구해준 친구들에게 'Thank you' 말고는 감사의 말을 전할 줄 몰라서,

그래서 왜 나는 그동안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그렇게 수영과 영어를 잘하지 못함에 대한 후회와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과 씁쓸함, 나를 위해 함께 기다려준 미안함과 고마움, 그들로 인한 훈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동굴 투어는 끝이 났다.




이렇게 나의 공식적인 첫 투어는 조금의 아쉬움을 남겨둔 채 끝이 났지만, 여전히 나의 여행은 막 시작됐을 뿐이었다.

이땐 알지 못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의 세계일주 이야기에는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그중에 한국인은 몇 명 없다.

검색하는 걸 그만뒀기에, 블로그에 올라온 랜드마크나 한국에서 유명한 해외 맛집,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다니지 않아서였을까?

그만큼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 덕분에 한국어를 쓸 기회가 적었고, 항상 영어에 노출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이 간 길을 보고 따라 걷는 게 아니라, 나는 나만의 길을 걸었기에.

이런 일상을 보내다 보면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영어 실력은 갖추어질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영어가 늘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는 것과 달리, 수영은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늘 수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물가에서, 바다에서 놀다 개헤엄 비슷한 헤엄은 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체계적으로 수영을 배우고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할 일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주 조금 늙은 것 같다. 눈동자에 초점도 없는 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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