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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Dec 28. 2023

21. 그 녀석은 악마처럼 속삭였다.

니카라과 | 거긴 천국이라고!

산후안델수르의 아름다운 석양 그것만으로도 며칠을 머무르는데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해변에서 물놀이하고, 그러다 맥주를 마시고, 맛있는 거 먹고. 그리고 또 석양을 구경하고.



언제나 또 가고 싶은 곳. 산후안델수르.



그러던 어느 날, 해변에서 8살 남짓한 아이들의 무리를 만났다.

이 아이들은 하나같이 손에 무언갈 들고 있었다.

그중 한 아이의 손에 들린 것은 줄로 만든 해먹. 이야기를 들어보니 본인들이 직접 만들었단다.

8세 남짓의 잡상인(?)들이 물건을 파는 것은 의외로 중남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지만, 해먹을 파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래서일까? Yuto가 이 해먹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거 얼마야?"

Yuto가 묻는다.


 "20달러!"

아이가 답한다.

순진한 Yuto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돈을 내려했다.

나는 옆에서 지켜보다 안 되겠다 싶어 Yuto를 말렸다.


 "Yuto, 잠만! 내가 더 싸게 사줄게. 잘 봐."


드디어 나의 스승 Taki한테 배운 스킬 '협상(Lv.1)'을 쓸 때가 왔다.

보아라 Yuto야. 물건은 이렇게 구매하는 거란다.


 "Hey. 20달러 너무 비싸. 여기 니카라과잖아? 4달러에 팔아."

 "이거 핸드메이드야! 4달러는 너무 싸."

 "그럼? 얼마를 원해?"

 "15달러는 줘!"


오호라. 역시 감가가 심하다. 나는 정했다. 8달러 이하로 협상하기로.


 "너 장난해? 이 정도면 다른 데서도 5달러면 살 수 있을 거야."

 "알겠어 그럼 10달러!"

 "아냐, 됐어. 저기 다른 애들한테 물어볼게. 아마 다른 애들한테서 더 좋은걸 더 싸게 살 수 있을 거 같은데?"

 "오케이. 알겠어. 8달러만 줘."

 "아니? 6달러 해!"


목푯값에는 도달했지만, 마지막으로 한번 더 질러보았다.


 "좋아. 6달러만 줘 그럼."


오? 이게 되네?

20달러였던 해먹은 어느샌가 6달러가 되어있었고, Yuto는 기쁜 마음으로 쿨거래했다.

(띠링. 스킬 '협상'이 Lv.2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승부욕(?)에 마음껏 후려쳤다가, 문뜩 상대가 어린아이란 사실에 나갔던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내심 애기 상대로 너무 후려친 거 아닌가 하는 약한 마음이 들었는데, 밝은 아이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도 별로 손해는 아니었던 듯하다.(한결 마음이 놓였다.)




중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아시아인이 참 보기 드물다. (그럼에도 차이니즈 레스토랑은 정말 어디에 가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길을 지날 때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시아인들을 보고 "Chino / China(스페인어로 '중국인'이란 뜻이다.)"라 부르는데, 이게 참 어감 때문인지 썩 기분이 좋진 않다.

낮은 교육/경제 수준의 나라에서 특히 더 무분별하게 불려지곤 했는데, 기본적으로는 무지 혹은 악의 없이 그저 아시아인을 '치노(치나)'라 부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인종차별적인 의미로 불려질 때도 있다.

다만,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며 먼저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라고 물어보고 꼬레아노(Coreano), 하포네즈(Japones)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왔다 하면 99% 물어본다. "Norte(북쪽)? Sur(남쪽)?")


처음에는 한국인이라고 몇 번 정정해 주었지만, 어느 순간부턴 귀찮아서 그냥 무시하게 되었다.

그런데 함께 Yuto랑 며칠을 다니다 보니, 이 녀석은 의외로 고집이 세고 자존감이 강한 녀석이다.


 "No! Yo soy Japones!(아니! 난 일본인이야!)"


정말 질리지 않고, 100번 들으면 100번 다 저렇게 대답했다.

그냥 대충 무시하고 가면 되지 왜 그렇게 일일이 대응하냐고 물었더니, 자신을 치노라 부르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단다.(무심코 '젊구나~'라는 생각을 해버렸다.)


Yuto는 나보다 어리지만 항상 앞장서서 길을 나섰고, 나보다 먼저 물어보고 나에게 알려준다.

난? 그냥 가만있으면 Yuto가 알아서 다 해줘서 그냥 편하게 따라가기만 했다. ㅎ (감사해요~ Yuto투어!)


나의 협상 능력이 마음이 들었던 걸까? 아니면 꽤 오랜 시간 홀로 여행해 온터라 말이 통하는 친구가 생기 것이 기뻤던 걸까? 아님 그냥 하자는 대로 따라 하는 내가 편했던 걸까?

Yuto가 갑자기 물었다.


 "kyo, 너 나중에 에콰도르도 갈 거야?"

 "당연하지? 왜?"

 "그럼 갈라파고스도?"

 "응! 갈라파고스 가려고 에콰도르 가는 건데! 무조건 가야지!"

 "그래? 흐음~ 그렇구나."

Yuto의 표정이 수상하다.


 "근데 그건 갑자기 왜?"

Yuto는 내가 질문하길 기다렸단 듯이 말한다.


 "kyo, 나 스쿠버다이빙 배우러 온두라스로 갈 건데 같이 안 갈래?"

스쿠버다이빙? 온두라스?


 "엥? 스쿠버다이빙? 온두라스? 싫어. 안 갈래!"

가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에 물에 빠져 죽을 뻔했는데, 스쿠버다이빙이 웬 말이야.


 "왜? 가자~ 재밌을 거야!"

 "나 수영도 못하는데 무슨 스쿠버다이빙이야."

 "수영이랑 다이빙은 상관이 없어! 수영 못해도 다이빙할 수 있다니까?"

 "그리고 온두라스 치안 안 좋기로 유명하잖아. 그거 무서워서 여기 올 때도 온두라스 안 들리고 바로 니카라과에서 넘어왔는데!"

 "온두라스가 다이빙 자격증 따는 게 전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싸데!"

 "흐음~? 그래? 그래도 좀 그런데..."

솔직하게, 이땐 살짝 솔깃했다. ㅎ


 "kyo, 생각해 봐! 갈라파고스라고! 다이버들의 천국! 모처럼 갈라파고스까지 가는데! 스쿠버다이빙! 해야지!"



그 녀석은 악마처럼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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