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처음 하는 성관계의 의미로 가장 많이 쓰인다.
그 뜻으로 쓰일 때는 대부분 목적어를 생략해 그냥 첫 경험한다고 말하며, 첫 경험이란 단어 자체가 그 의미를 담게 될 정도가 되었다. / 출처 : 나무위키
사람이 살아가는데 절대로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의. 식. 주 일 것이다.
하지만 의. 식. 주는 생물학적인 생존에 필요한 요소이지, 인간다운 삶이나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지위나 권력, 목표 달성을 통한 성취감, 친구와의 우정, 연인 간의 사랑과 같은 것들이 우리 삶에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예전에 한 고등학교 진로시간에 특강을 하러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내 세계일주 이야기를 통해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유난히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듣던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나에게 질문했다.
'여행하면서 연애한 적 있어요?'
... 아무래도 이 아이들은 내가 의도한 것과는 다른 메시지를 받은 듯하다.(후.. 세상 참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네.)
세계일주를 한다.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닌다. 많은 사람을 만난다. 이성을 만난다.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몹시 흥미로운 이야기이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남 연애 이야기가 제일 재밌어!)
실제로 여행 중에 만나서 연애를 하고, 함께 여행을 하고, 나중에는 결혼까지도(심지어 국제결혼까지도) 이어지는 경우를 보았다.(하지만 사랑과 만남이 있는 곳엔 이별과 헤어짐도 공존해 있다.)
조금 더 어른스럽게 이야기하자면, 사랑이 있는 곳에 19금 이야기도 빠트릴 수 없다.
그리고 어느새 우린(적어도 나는) 그런 소재의 대화를 부끄러움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누군가는 생각할 것이다.(몇 명 얼굴이 떠오른다.)
'드디어 기다리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구나!'
나답지 않게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해 버렸다.
처음부터 내 글을 읽어준 사람이 있다면, 혹은 나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구구절절한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간단명료 심플하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 내가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했다면 그 이유는 술술 이야기하기에 다소 조심스러운 주제이거나, '기대치를 높여 놓기 위해서'이다.
...ㅎ
그래서 나는 많은 기대를 저버리고(?) 말 그대로 '처음 경험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같이 있던 친구가 '니 지금 뭐 하는데 표정이 드릉드릉 하노?'라고 묻는다.)
혹시라도, 연애나 다른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죄송합니다. 그거 아니에요.ㅎ
살아오면서 수많은 첫 경험을 해보았고,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생생한 첫 경험들이 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와서 처음으로 한국의 학교를 다닐 때.
어릴 적부터 외향적이었던 나지만, 이제 겨우 인생 7년 차인 아이에게도 언어의 장벽은 무시할 수 없는 벽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순수한 호기심은 때론 순수하다는 이유로 잔인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때의 첫 경험은 설렘이나 짜릿함이 아니라, 두려움과 슬픔으로 강렬하다.
처음으로 밴드를 하겠다고, 베이스를 치겠다고 마음먹고 처음 베이스를 쳤을 때.
현란한 기타 소리와 비슷한 맑고 까랑까랑한 소리 혹은 그 무언가를 기대했던 나에겐 '둥~'이라는 잘 들리지도 않은 작은 소리와 진동만이 전해졌다.
베이스가 준 첫 경험의 기억은 실망감과 허무함으로 강렬했다.
처음 세계일주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에도 초반 3개월의 기록도, 사진도 거의 없었기에 이 시기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직까지 초반 3개월 여정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건 이 시기가 나에게는 세계일주의 처음인 것이고, 그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긴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형들의 찐한 키스를 직관하고, 과테말라에서 익사할 뻔했는데, 잊는 게 더 힘들 수도 있겠다.)
엘살바도르에서의 고해성사를 끝내고 니카라과로 향했다.
중간에 온두라스를 지나지만, 위험(하기로 유명)한 나라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은 도시는 이미 충분하다. 그래서 온두라스는 그냥 건너뛰고 니카라과로 가기로 정했다.
(편견을 주고 싶진 않지만, 당시 엘살바도르가 가장 살인율이 높은 나라였다면 온두라스의 테구시갈파(Tegucigalpa, 수도)나 산페드로술라(San Pedro Sula)는 살인율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였다.)
유독, 저 이미그레이션엔 동네 개님들이 많았다. 아무튼, 온두라스 안녕~
중미는 전반적으로 한국에 비해 물가가 싼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니카라과의 물가가 특히 저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바나나 한송이를 100원 정도에 샀던 거 같은데?)
산살바도르에서 버스로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Managua)에 도착한 날도 어둑어둑한 저녁시간이었지만 다행히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 있는 숙소가 저렴했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며칠 뒤 그라나다(Granada)로 이동했다. 마나과도 그라나다도 별 다른 이벤트 없이 그냥 마을을 돌아다니고, 그러다 맥주 한잔 하고, 식당에 들어가서 현지인들이 먹는 밥을 먹는, 그런 니카라과 현지에 사는 백수 같은 삶의 연속이었다. 평범한 백수의 삶이 지루하다 느껴질 무렵, 그라나다를 떠나 리바스(Rivas)를 거쳐 마침내 니카라과의 세 번째 도시 산후안델수르(San Juan del Sur)에 도착했다.
니카라과라는 나라자체도 한국에서는 유명한 나라가 아니지만, 산후안델수르는 더더욱 이름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더 그런 것일까? 나는 산후안델수르가 좋다.
1, 2순위는 아니지만 세계일주를 하면서 머물렀던 곳들 중에서 언젠가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산후안델수르는 꽤나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호수를 끼고 있는 수도 마나과와 그라나다와는 달리, 산후안데수르는 바다를 끼고 있는 해변마을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우연히 찾은 현지 식당에서 랍스터 구이를 팔았는데, 세상에 칠천 원 밖에 안 한다. 랍스터가!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바다로 갔다.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보는 바다다.
동해가, 남해가, 서해가 아닌 바다. 내가 아는 바다와 비슷한 듯 다른 바다였다.
약간은 에메랄드 빛이 감도는 산후안델수르의 해변은 적당히 넓은 해변과 적당한 인파로 적당한 여유를 느끼게 해 주었다.
해변을 걷다 펍에서 맥주를 한잔 주문해 마시고 있자니, 옆 테이블에 있던 아시아 남자애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Yuto. 공교롭게도 또 일본인이었다. 이땐 참 많은 일본인들이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처음 나누었던 대화가 무엇인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Yuto와는 생각보다 말이 잘 통했고, 금방 의기투합했다. 한동안 함께 여행하기로 했다. 이 여행에 처음으로 일행이 생긴 순간이었다.
Yuto를 만난 펍. 맥주는 니카라과의 맥주다.
함께 펍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다 보니 해변 끝쪽 언덕 위에 예수상 같은 것이 보인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 같은 느낌. 함께 가보기로 했다.
언덕에 올라 예수상을 마주하고 그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본다.
일리네어 레코즈 핸드사인?
마나과와 그라나다 둘 다 호수를 끼고 있어서일까? 마나과는 짙은 갈색으로, 그라나다는 회색으로 기억한다.
어두운 색감의 마나과 그라나다와 반대로 산후안델수르는 바닷가 마을 특유의 활기찬 햇살과 그 햇살을 품은 뜨거운 모래사장, 하얗게 밝은 색으로 가득 찬 온 세상과 대비되는 푸르른 바다로 다채롭다.
그렇게 기분 좋은 흰색과 파란색에 둘러싸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자면, 눈앞의 세상은 어느샌가 불타는듯한 주황색이 다른 색들을 덮으며 황홀한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석양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본 석양.
그리고 3년이란 여행동안 본 수많은 석양 중 가장 강렬했던 최고의 석양이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주황색으로 가득 칠해진 산후안델수르의 석양이 떠오른다. 아마 앞으로 몇 년, 몇십 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첫 경험은 언제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석양을 보여주기 위해 친구에게 사진을 보냈다. 사진을 본 친구가 석가모니 머리를 한 것이냐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