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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Jan 09. 2024

23. ㅎ 우린 망했다.

온두라스 |  세상에 완벽한 계획은 없다

화산을 무사히(?) 등반하고 우리는 시원한 맥주로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다음날, 섬을 떠나 라 라구나(La Laguna)로 향했다.


라구나 데 아포요(Laguna de  Apoyo)라는 석호를 낀 마을인데, 이름이 조금 귀엽다.

라구나는 영어로 라군(Lagoon), 우리말로 석호(사주나 사취의 발달로 바다와 격리된 호수로 염분 농도가 높다.)라고 한다. 이곳은 화산 폭발로 형성된 화구호인데, 그래서인지 물이 따뜻하다.

스페인어로 치킨을 뽀요(pollo)라고 하는데, 이 아포요가 치킨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실제로 지도로 이 석호를 보면, 호수의 모양이 닭대가리와 비슷하게 생겼다.



이 크록스는 여행 중 내 사진에서 90% 이상의 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이곳에서 느긋하게 휴식도 취하고(언제나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던 거 같은데?) 호수에서 물놀이도 했다.

호수의 물이 따뜻한 것이 신기하여 신나게 뛰어든 것도 잠시, 막상 남자 둘이서 물놀이를 하자니 그 그림이 썩 보기 좋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그리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아 금방 싫증이 나버린 건 어쩌면 자연의 이치이자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결국, 각자 물에 동동 떠다니거나 Yuto는 니카라과에서 산 해먹을 펼쳐 누워 쉬었다.(이때 잠깐 나도 해먹 사둘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 식당에서 호수에서 가져온 물고기 요리도 먹었다.

여기 물가 치고는 조금 비싸단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따뜻한 호수에도 물고기가 산다는 것이 신기하였기에 그들의 생존능력에 경의를 표하며 맛있게 먹었다.



이끼가 군데군데 낀 돌담은 중후한 멋을 낸다.



머무르는 동안 비도 와서, 비 내리는 호숫가에서 한번 더 물놀이도 했다.

물론 각자.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난 우리는 마사야(Masaya)를 경유해 레온(Leon)에 도착했다.


 



레온에는 밤에 도착해 다음날 아침에 떠났기에 오래 머무르지도, 특별히 무언갈 하지도 않았다.

그냥 밤거리를 구경했을 뿐.

아주 조금 과테말라의 안티구아를 닮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문뜩 안티구아에서의 생활과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다들 잘 지내고 있는 거니?)

아무튼, 좋은 동네라고 생각하던 참에 Yuto도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오랜만에 Yuto와 의견이 통했다.)


기분이 좋아져 바에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하우스 와인 한잔.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아침 일찍 Yuto와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Tegucigalpa)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나에게 같이 스쿠버다이빙을 권한 것치곤 Yuto도 온두라스에 가는 것에 꽤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높은 살인율로 악명이 높은 만큼, 우리도 이번엔 평소와 다르게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우리의 계획은 이러했다.


어쨌든, 해가 지기 전에 입국해서 빨리 숙소를 정하는 것.

(계획이 '어쨌든'으로 시작한 시점에서 이미 철저함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

그리고 숙소에서 하루 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우띨라(Utila) 섬으로 가는 것.

(여전히 우리는 미리 숙소를 찾아본다는 생각을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조금(어쩌면 아주 많이) 허술한 계획이었던 것 같지만, 아주 계획 없이 다니던 우리에겐 당시 완벽한 계획처럼 느껴졌다.

다만,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여행은 항상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는 걸 염두하고 플랜 B를 세워두어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았다는 것.


...


역시 내 팔자는 고생할 팔자인가 보다.(전생에 큰 잘못을 했나?)

비가 와서, 가는 길이 험해서, 생각보다 안 그래도 장거리 버스인데 원래 시간 계획보다 더 오랜 시간 버스를 타게 되었다. 테구시갈파에 도착했는데, 밤이다.


그렇게 안 오려고 했던 온두라스였는데.

악마의 속삭임에, 다이버들의 천국이라는 말에 홀랑 넘어가 결국 와버렸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야심한 밤에 도착을 했다.

이곳 테구시갈파에.



ㅎ 우린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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