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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Jun 14. 2023

2. 그럴 수도 있지.

한국 | 벌써 결말?

혹시라도 나의 글을 처음부터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서 빨리 내가 어디를 갔다 왔고,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길 바랄지도 모른다.

어떻게 여행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했는지 이야기해 주길 바랄 수도 있다.


만약, 정말 그런 분들이 있다면, 미리 사과를 드리고 싶다.

아쉽게도 내가 쓰는 글은 기행문이 아니다. 어떻게 세계일주를 하는지 알려주는 지침서는 더더욱 아니다.


물~론! 어디를 갔다 왔고,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 이야기할 예정이지만!

물~론! 어떻게 여행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했는지 이야기할 예정이지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의 글이 끝날 때 즈음엔 눈치채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좋겠다.

(사실 그때까지 읽어주시는 분이 있다는 게 어쩌면 더 감사하고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떡밥은 던져졌다.'




어쨌든, 내가 다녀온 모든 곳들의 이야기를 하기에 나는 너무 많은 곳을 다녀왔고, 오랜 기간 다녀왔고, 한국에 돌아온 지는 더 오래되었고, 무엇보다 기억력이 나빴다.


그렇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기억력이 나쁘다.

어제 내가 뭐 했는지도 가물가물한데, 매일 새로운 기억과 정보가 물밀듯 들어오는 일상을 3년 살면 알던 것도 까먹게 된다.

그렇게 까먹은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여행하기 전 내 자아(Ego)였다.


여행하기 전 나는 아주 건방진 사람이었다.

개뿔 잘난 것도 없으면서 지(?) 잘난 맛에 살았고, 자아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건 사실 지금도 변함없는 듯하다. ENTP의 특성이라더라. 내가 짱이야.)


여행하기 전 나는 거짓된 평등주의자였다.

세상 모두가 평등하고 공평하고 실제 그러해야 한다 말했지만, 그 안에서 많은 차별과 차이를 두었고 그렇게 좋음과 싫음을 구분했다. 잘난 사람을 시기하고, 못난 사람을 무시했다.


여행하기 전 나는 지독한 욕심쟁이었다.

절대 손해 보는 것을 싫어했고, 이해타산적이었다.

가진 것을 놓지 못했고, 가지지 못한 것을 탐했다.

베풀 줄 모르고, 나눌 줄 몰랐으며, 그러한 행동은 나의 의지보다 사회적 시선을 염두하고 행했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서 보니 아주 인성에 문제가 많았던 사람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그런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나의 조국을 떠나 그저 인간 kyo로 세상에 나오니 한낱 비루한 International Homeless일 뿐이었다.

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피지컬이 좋지도 않고, 재력이 대단하지도 않았다. 뛰어난 기술이 있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때우기가 힘든 날도 많았다.


여행 중에 만났던 사람들은 그런 나를 편견 없이 도와주었다.

나에게 스쿠버다이빙을 가르쳐 주었던 Jun은 나무로 지어진 집에 살고 있었고,

산사태로 도로가 막혀 길가에 주저앉아있던 나에게 자신의 밥을 나누어준 그 노인은 30년도 넘은 트럭을 운전하고 있었다.

이 동네의 밤은 위험하니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며 몸 누일 곳을 만들어준 그 아저씨는 편도 3시간이 넘는 시골에서 출퇴근하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내가 무시했을 수도 있었을 사람들, 그런 그들을 배경 없이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했을 때 내가 그들을 무시하고 비하할 수 있는 자격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나를 도와주었고, 존중해 주었다. 그리고 여행하는 나를 대단하다 치켜세워주기까지 하였다.


만민은 평등하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말이지만, 20대 중반이 넘어서는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은 사실이었다.


반대로,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 더 이상 기죽지 않게 되었다.

내가 잘난 것은 없지만, 못난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런 마음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대했다.


존중하고, 이해하고, 기죽지 않기.


그렇게 여행을 하면서 나는 점점 과거의 나를 잊고 조금씩 변해갔다.

그 덕분일까? 여행을 하면서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놀랍게도 단 한 번도 인종차별을 겪어보지 못했다.

(물론, 당시 내 행색이 국적을 파악하기 힘든 몰골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어떻게 그렇게 한국어를 잘하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국가가 다른 사람, 인종이 다른 사람, 종교가 다른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 나이가 적은 사람,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신기한 사람, 이상한 사람, 재밌는 사람, 재미없는 사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모두 친구가 되었다.


세계일주를 다녀와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너는 세계일주를 하고 뭐가 달라졌는데?'


질문을 던진 사람들은 나에게서 대단한 대답을 바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에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아 뭐라고 대답해줘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었다.

어떻게 표현을 해야 거국적으로 느껴질까. 어떻게 표현을 해야 그들의 기대를 만족시킬까.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범세계적인 관점에서 현재를 내다보는 안목이 생겼다?

세상을 둘러보다 보니 획기적인 사업 아이템이 눈에 보여 사업을 하려고 한다?


고심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 하나의 단어였다.


'내적성숙'


3년간 83개국을 다녀와서 가장 달라진 점은 '내적성숙'인 듯하다.

도덕책에서만 봤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단어.

하지만 세상 그 어떤 문장, 단어보다도 나의 여행을 잘 표현해 주는 단어 같다.


그 덕분에 이제는 예상 밖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아도, 이렇게 쉬운 것도 왜 모르지 싶은 사람을 만나도, 나와 다른 종교, 문화, 사고의 사람을 만나도

더 이상 이전처럼 '저 사람 왜 저래?'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피하지도 않는다.


이젠 이렇게 말한다.



그럴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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