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프고 찌질하지만, 어딘가 멋진 곰돌이작가의 아주 긴 하루
곰돌이 ep.3
그림을 그리는 일은 돈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더 간절하다.
누군가는 "취미 아니냐" 묻지만, 내겐 그것이 삶의 이유다. 생계를 위해서 하루를 버텨내는 것도 결국 다시 그림 앞에 앉기 위해서니까.
생계와 예술 사이의 줄타기는 불안하고 위태롭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건 언젠가 나 자신에게 남기고 싶은 기록이다.
그림이 밥이 되진 않지만, 최소한 나를 굶기지는 않을 것이다.
오전 10시.
오늘도 작고 귀여운 화가들이 기다리고 있다.
유치원 교실 한복판,
"자 오늘은 바다를 그려볼 거예요!"
아이들의 상상력은 무한하지만, 물감은 유한하고 내 체력도 그렇다.
파랑 한통이 고래가 되고, 연두색은 갑자기 우주선이 된다. 그럴 땐 그냥 웃는다.
"와~~ 정말 멋진 그림이다!" 예술을 가르치는 건지 카오스를 수습하는 건지 혼란스럽지만, 아이들의 웃음에 괜히 뿌듯해진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바로 문화센터로 이동한다.
이번엔 좀 더 의욕 넘치는 꼬마들과의 만남이 나를 기다린다.
질문은 끊이지 않고, 물감은 다시 바닥으로 추락.
"괜찮아. 괜찮아 선생님이 치우면 돼"
라고 웃으며 말은 하고 있지만 마음속엔 물감 계산서...
"선생님, 이거 이상해졌어요!"
"괜찮아, 예술은 원래 그런 거야". 그 말, 사실 나에게 더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몸은 천근만근, 눈은 반쯤 감겨 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인 채로 한동안 널브러진다.
밤 10시.
세상이 조용해지는 시간,
조명아래 혼자 물감을 짜고 붓을 든다. 오늘은 어디를 손댈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물감 뚜껑을 열 때마다 내 안에 뭐가 깨어나는 기분이다.
낮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상상의 세계를 걸었지만, 이 밤엔 나 혼자 내 마음을 걷는다.
다 그리고 보면, 세상에 보여줄 용기는 없어도 조금은 살아낸 기분이 든다.
통장 잔고는 늘 빈 캔버스처럼 허전하지만 내 마음속은 오늘 그린 색만큼은 꽉 차 있다.
낮에는 선생님, 저녁에는 예술가, 그리고 언제나 물감을 사기 위해 다시 일터로 향하는 사람, 바로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이다.
언젠가는 내 그림 하나로 물감도 사고 작업실 월세도 낼 수 있는 그런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
적어도 난 매일, 진심으로 무언가를 그리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