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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그냥 도망치고 싶어진다.
어떤 일은 겪는 중에도 괴롭고, 지나고 나서도 선뜻 좋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고통을 한 꺼풀 지나오고 나면
“그래도, 그때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겠지” 하고
작게라도 중얼거리게 된다.
즐거운 경험에서 배우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 반대다.
한참 울다가, 밤늦도록 불을 끄지 못한 날들이
나를 조금 단단하게 만든다.
그 단단함은 겉으로 보기에 티도 안 나고,
누구에게 설명할 수 있는 종류도 아니다.
그저, 또 한 겹의 나를 입은 것처럼.
조금 덜 흔들리고, 조금 덜 무너지는
괴로운 일이 생기면 예전에는 얼른 딴 일로 덮어버렸다.
쇼핑창을 들여다보다가, 동네를 산책하다 발끝만 보고 걸으며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면서 그렇게 지워버리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다.
그 감정을 잠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둔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눈을 감고 그 마음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생각해본다.
완전히 해답을 얻는 건 아니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괴로움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더 나로 있게 만든다.
물결은 늘 잔잔하지 않다.
때로는 넘치고, 때로는 바닥을 드러낸다.
그 흐름 속에서 내가 배우는 건
견디는 마음과 다시 걷는 힘 같은 것.
지금 이 순간도, 나를 조금씩 바꿔놓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