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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Dec 23. 2022

새 옷을 입은 기빙트리(동네 책방)

괜찮은 기억




     

 된바람을 뚫고 서린단 길에 자리한 기빙트리로 들어섰다. 사장님은 막 출근하신 모양이다. 나를 보자마자 지난번에 그림 그리시던 분 아니에요? 하시며 전시회에 못 가서 미안하다고, 사는 곳에 눈이 많이 와서 문을 열까 고민하시다가 나오셨단다. 하마터면 헛걸음할 뻔했다. 내 얼굴을 기억하고 반갑게 맞아주시며, 가게 예쁘게 그려줘서 고맙다고 사장님 마음처럼 따뜻한 커피는 내어주셨다.


     

 책방에 마련되어 있는 테이블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따뜻한 커피로 언 몸을 잠시 녹여본다. 밖은 여전히 된바람이 무섭게 불고 있다.

     

 기빙트리를 처음 보았을 때는 오랜 시간 비어 주인을 잃은 모습이었다. ‘물금통닭그저 오래된 낡은 간판만이 통닭 가게였구나. 짐작게 했다. 많은 손님이 다녀가며 문을 여닫았을 텐데 열심히 일하던 문은 긴 쉼을 쓸쓸히 감당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측은하여 그림으로 남겼었고 그것이 이곳과 나의 첫 만남이다.


     

 얼마 전 전시회 준비를 위해 다시 찾은 서린단 길의 오래된 물금통닭은 온데간데없고, 동네 책방 기빙트리라는 새로운 옷을 입었다. 쌀쌀한 날이지만 기빙트리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하얀 종이에 새 옷을 입은 가게를 그려보았다. 하지만 아직 가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떤 곳일까? 나도 새 주인을 만난 가게의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이에 가게의 문이 열린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밖에서 그림을 그리는 나를 보고 들어와서 그리세요.” 하고 인사를 먼저 건네주셨다. 정중히 사과하고 남은 그림을 다 그린 후 사장님께 시간이 늦어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며, 전시회 구경 오시하고 인사를 건넨 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드디어 세 번째 만남이다. 나는 기빙트리의 문을 열었다. 따뜻한 조명이 책장의 책을 비추고 책방 가득 메우는 멜로디는 이곳을 한층 더 생기 있고 편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한쪽 벽을 가득 메운 환경 관련 책들과 물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제로웨이스트숍이라고 쓰인 글도 보인다. 이것만 보아도 가게주인의 관심사를 알 것 같다.

     

 독립 서점들은 주인의 취향이 한껏 묻어나는 책들이 많다. 책방의 분위기나 책들의 제목들을 보면 주인의 메시지가 보이는 것 같다. 독립 서점의 문은 언제든지 내 취향을 공유하겠다.’라는 듯 주인의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린 공간 같다.

     

 책장의 책을 둘러보다 책 한 권을 골랐다. 올가 그레벤니크의 전쟁일기.

책 표지의 포스트잇에는 우크라이나의 눈물, 가슴이 먹먹하고 아픕니다. 전쟁 그만을 외치기 위해 참혹한 상황을 전쟁일기로 기록해야만 했던 작가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우크라이나를 꼭 기억해 주세요!"라는 메시지가 쓰여 있다. 직접 써 놓은 메시지를 보니 주인의 마음이 더욱 느껴지는 듯하다.

 아직 식지 않은 커피와 직접 코멘트해주신 책을 펼쳐 들고 다시 테이블에 앉았다. 혹시 모를 죽음을 대비해 자신과 아이들의 팔에 신상을 적어주는 작가의 심정이 어떠할지 가히 상상 불가하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구나 잠시 생각해 본다. 죽음을 직접 대비해야 하는, 나 자신과 내 자식을 몸소 보호해야 하는...

 누구도 겪지 말아야 할 일이다.

     

 문틈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온다. 밖은 여전히 춥다. 나는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하며 가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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