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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Nov 25. 2021

인생은 회전목마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서 연어 폐사체를 보고)

코끝에 썩은 내가 진동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덮고 있는 마스크 위를 손바닥으로 한번 더 감쌌다.

"엄마 저기 봐! 연어가 죽어있어!"

아이의 소리에 다리 밑을 보니 연어 폐사체가 한가득이었다.


아이의 학교 재량휴업일도 있고 해서 일주일 전 급 2박 3일 강원도 여행을 계획했다. 강원도를 올 때마다 찾는 식당이 있는데 그 근처에는 우리나라 대표적 연어 회귀 하천인 양양군 남대천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이 천 한가운데에 있는 다리를 건너고 싶다 해서 차에 타려는 것을 멈추고 다리 위를 같이 걷고 있던 중이었다.


이미 아이들은 유튜브로 연어의 생애를 자주 봐왔고 좋아해서 그런지 연어 폐사체를 보고도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덤덤한 반응이었다. 호들갑은 나뿐이었다. 연어는 일생에  한번 산란을 하기 위해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산란과 수정  생을 마감한다.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내려가 살다가 다시 강으로 거슬러 돌아온다. 수백수천 킬로를 헤엄쳐 돌고 돌아 원래 태어났던 강으로 돌아오면서 새나  같은 천적에게 먹히기도 한다. 남대천에서  연어들은 그래도 높은 확률로 태어났던 강까지 거슬러 올라와 산란과 수정을   죽은 아이들일 것이다. 하류로  내려가야 하는데 수심이 얕아진 나머지 우리가 걷고 있는 다리  바위 사이사이에 죽은 채로 껴버린 것이다. 입을 벌린  머리는 거꾸로 박혀있거나 등을 내보이고 죽은 연어들을 쳐다보고 있자니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물며  작은 생명도 본능적으로 자기 새끼들을 낳기 위해 수백수천 킬로를 헤엄쳐 강으로 거슬러와 산란을 하고 죽는다. 물살을 거슬러서 오기 때문에 고단함은 이루 말할  없고 살갗은  돌들에 뜯겨 무척 아팠을 것이다. 죽은 연어를 보고 있자니 너무 불쌍한 한편 연어에게 위로를 받는  같았다. 나보다 훨씬 작은 물고기조차  생명을 위해 저렇게 고생하는데, 나는 무엇이 그렇게 힘들다고 우울함에 젖어있었는지 우스웠다. 죽은 연어들이 내게 ' 정도쯤 돼야 힘들다   있지'라고 말을 건네 오는  같았다.


최근 첫째 아이가 눈 위를 살짝 다쳤는데 매일매일 병원 가랴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랴 몸과 마음이 힘들었었다. 육퇴 후 얼른 쉬고 싶어서 빨리빨리를 외치며 아이들을 채근했다. 애들이 잠든 후 제대로 쉬면 모르겠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어중간한 상태가 지속됐다. 글쓰기 수업을 들은 이후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한주에 한편씩 글을 올리자 약속했는데 과연 글은 계속 쓸 수 있을까 싶었다. 비어있는 멍한 눈을 한 채로 노트북을 켰다가 그대로 닫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눈을 감았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은 또 왜 이리 안 오는지. 뒤치닥 거리다 간신히 잠이 들면 꿈에서 나는 혼자 살고 있던 오피스텔 13평 남짓한 방에서 웃으며 설거지를 하고 있다. 그 좁은 방에서 탈출해 넓은 곳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 했던 나였는데 꿈에서는 혼자 있는 생활에 흡족한 모습을 하며 들떠있는 내가 보인다. 참 우스운 일이다. 다시 또 홀로 있고 싶어 하다니.


이십 대에는 행복이 오래 지속되는 순간이 많았다면 삼십 대에는 결혼과 출산 후 행복은 잠깐잠깐 머물러 갈 뿐이었다. 하루 동안 행복이라는 충만한 기분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순간들도 많았다. 지나고 나니 그게 우울증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제는 혼자 있어도 함께 있어도 어느 순간에나 일말의 미련이 있다는 것을 안다. 철저히 혼자 있다 보면 결국은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지고, 함께 복닥복닥 재밌다가도 철저히 다시 혼자가 되고 싶은 그 마음을.   


학교 과제를 할 때도 조금이라도 미리 끝내야 마음이 편했고, 회사 생활에서도 밀린 일 따위는 없어야 했다. 그래서 일을 빨리빨리 마무리했고 그럴수록 일이 더 많아지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나중에는 일처리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작도 못했다라며 말할 수 있는 여유와 뻔뻔함도 생겼지만. 그렇다. 나는 밀린 일이 없을 때에서야 비로소 부채감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제야 마음의 여유를 찾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아이들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늘어나고 있으니 한 발자국 물러나 여유를 갖고 지내보자 라는 식의 뻔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집안일이나 아이들 숙제를 봐주는 등 나의 현재 진행형 duty는 아마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회사에서 밀린 일을 처내듯이 계속될 것 같다. 삼십구 년 산 내 성격과 습관을 완벽하게 고치긴 힘들 것이니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난 그때마다 양양 남대천을 떠올리기로 했다. 저 작은 생명체도 온 힘을 다해 저렇게 돌고 돌아 강까지 거슬러 올라왔는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투덜거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돌고 도는 게 인생 아니겠냐고. 좋은 날이 있으면 힘든 날이 있는 거고, 힘든 날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좋은 날들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연어에게 왠지 모를 위로를 받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멜론 최신곡을 틀었다. 자이언티와 소코도모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내가 슬플 때마다 이 노래가 찾아와 세상이 둥근 것처럼 우린 동글동글

 인생은 회전목마 우린 매일 달려가 언제쯤 끝나 난 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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