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옷을 준비하시면 될 거 같아요. 나중에 군대 가겠네요."
뱃속의 아이가 16주가 되던 날, 첫 아이의 성별을 대놓고 알려줄 수 없다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도감과 함께 무한히 팽창되는 설렘을 느낀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첫째 아이는 허니문 베이비였다. 양가 부모님이 내 임신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시부모님은 내가 임신하자마자 아들 딸 아무 상관없다 하셨지만 내가 느끼기엔 아니었다. 시댁은 대대손손 아들이 귀한 집이었다. 아빠는 내가 사내아이를 낳으면 시부모님에게 더 예쁨을 받고 편할 것이라며 은연중에 말씀하시곤 하셨다. 결론은 아들이었다. 성별을 말씀드리자 수화기 너머 아버님은 울컥하시며 목이 맨 목소리로 참 잘했다며 대견하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뱃속의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어른들에게 커다란 축복을 받았고 나 또한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의 태명을 '곰사랑' 사랑이라고 지었다. (남편이 태몽을 꿨는데 곰 두 마리가 나와서 그냥 사랑이라고 안 하고 앞에 곰을 붙였다)
"위에 혹시 여자애가 있나요?"
"아니요. 선생님 첫째는 아들이에요."
"이야, 아들 딸이네요. 축하합니다 여자 아이예요."
"맙소사!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16주 둘째 아이의 성별을 알게 된 날. 다짜고짜 산부인과 선생님 손을 덥석 잡았다. 공중에 몸이 붕 뜨면 이렇게 가볍고 즐거운 마음일까 싶었다. 여자 아이를 원했기에 20주 24주 28주 32주 4주에 한번 병원에 갈 때마다 선생님에게 혹시 성별이 바뀌는 건 아닌가 무서워 몇 번을 채근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둘째. 똘망이가 태어났다. (똘똘하게 지혜로운 여자아이가 되라고 똘망이라고 지었다)
사실 둘째가 태어난 후 예쁜 것보다 막상 첫째가 그렇게 걱정이 됐었다. 할머니와 지내며 집에서 오매불망 엄마를 기다리며 우울해있을 첫째가 눈에 밟혀 조리원에서 일기를 쓰며 혼자 울었었다. 우는 나를 보고 간호사 선생님은 시간이 지나 봐라 내리사랑이라고 둘째가 그리 예쁘다며 울고 있는 나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줬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말이 맞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둘째가 예뻤다. 둘째의 방귀 냄새 응가 냄새도 사랑스러웠고 둘째가 남긴 음식은 뭐든지 다 먹을 수 있었다. 첫째가 남긴 음식은 아까워도 먹을 수가 없는데 말이다. 지금도 그렇다. 둘 다 똑같이 사랑하지만 딸에게만 느끼는 연대는 확실히 있었다. 그 아이들은 이제 8살 6살이다.
첫째가 얘기한다.
"엄마, 엄마는 나중에 어디에서 살고 싶어?"
"흠.. 엄마는 고향인 청주도 좋고 서울도 좋고 지금 살고 있는 이 동네도 좋아."
"그래? 엄마 그럼 서울에서는 어느 동네가 가장 좋아?"
"흠.. 동부이촌동 아님 한남동?" (건성건성 대답 중)
"엄마 그럼 내가 한남동에서 가장 좋은 집을 사서 거기서 살게 해 줄게. 엄마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줄게. 우리 다 같이 거기서 살자! "
"오구오구. 그럴까? 많이 컸네. 준서가 그런 생각을 다하고!"
"엄마 엄마! 나중에 내가 커서 돈 벌면 엄마한테 그 돈 다 줄 거야!"
"준서야. 그걸 왜 나를 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고 싶은 거 사"
"그래? 그럼 엄마 뭐 사고 싶은 거 없어?"
"흠.. 엄마는 나중에 책 한권만 사줘"
"응 알았어! 엄마 한 권 말고 서점에 있는 거 다 사줄게!"
아이들은 대체 어디서 그런 말을 듣고 배워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줄 생각을 하는지. 쪼그만 입에서 조잘조잘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둘째는 여자 아이라 그런가 '엄마 예뻐 엄마 사랑해'라는 말을 달고 산다. 그리고 눈치가 백 단이라 나와 남편에게 쎄한 기류가 흐르기라도 하면 기가 막히게 알고 아빠에게 달려가 볼에 뽀뽀를 쪽쪽 한다. 그리고 내게도 달려와 폭 안긴다. 그러면 저절로 풀어지기 마련이다. 고작 6살짜리 아이가 눈치는 왜 이리 빠른지 매번 감탄할 때가 있다.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남편이 꽃을 안 사 와 뾰로통해 있는데 첫째 아이가 방에 후다닥 들어가더니 나를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더니 색종이로 만든 꽃을 뒤에 숨긴 채 얘기한다.
"엄마 아빠가 꽃 안 사 왔다고 속상했지. 내가 이거 줄게. 결혼기념일 축하해!"
웃음이 비적비적 새어 나온다. 아이들 덕에 충만하게 기쁜 찰나의 순간들이 피어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저녁 9시. 첫째 둘째와 이불에 누워 종알종알 얘기를 한다.
"준서야 유하야 사랑해. 잘 자. 엄마 아들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유하는 좋겠다. 나도 니 얼굴처럼 생기고 싶어. 넌 너무 귀엽고 이뻐 오구오구"
둘째와 코를 부비부비 하고 첫째는 꼭 안아준다. 첫째가 얘기한다.
"엄마! 난 엄마랑 평생 같이 살 거야. 평~~~~ 생! 엄마 이백 살 삼백 살까지 살아야 해!"
대답 대신 웃어주며 속으로만 생각했다. 크면 따로 살자 준서야 ㅋㅋㅋ
이번 주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산타 할머니가 될 준비를 한다.
"부모의 사랑은 무한한 너그러움으로 이 작은 존재를 한동안 우주의 중심에 놓는다. 부모의 사랑이 그토록 강한 것은 아이가 괴롭고 두려운 심정으로 어른 세계의 진짜 척도와 불편한 고독을 이해해야 할 그날을 위해서다"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