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언일맥(一言一脈) 열여섯 번째

호연지기(浩然之氣)

by 이민행

1. 하늘과 땅에 가득 찬 넓고 큰 기운


맹자(孟子) 공손추상(公孫丑上) 편에서는 스승 맹자와 제자 공손추의 대화가 전해집니다.


「敢問夫子惡乎長?」

(공손추가 말하길) 여쭙건대 스승님께서는 무엇이 뛰어나십니까?

曰:「我知言,我善養吾浩然之氣.」

(맹자가 말하길) 나는 말을 알며,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

— 맹자(孟子) 공손추상(公孫丑上)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호연지기입니다. 호연지기,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넓고 큰 기운'입니다. 도대체 넓고 큰 기운이 무엇인지 다시 제자는 묻죠. 스승은 답합니다. 그는 호연지기를 의와 도리를 따르는 삶에서 저절로 축적되는 도덕적 에너지로 규정했습니다. 억지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삶을 꾸준히 실천하면서 길러지는 기운이 곧 호연지기라는 것이죠. 그것은 평온하고 너그러운 화기(和氣)이자, 한 치의 부끄러움 없는 정직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강대한 힘이기도 했습니다. 맹자는 호연지기를 기르면 우주와 하나 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크고, 어찌 보면 막연한 의미인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맹자가 주장한 인간 본성 속에 잠재되어 있는 네 가지 마음, 즉 4단(四端)을 가꾸는 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의 철학은 널리 알려진 대로 인간의 본성은 선(善)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4가지 마음이 자리하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봤을 때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측은지심(惻隱之心)],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수오지심(羞惡之心)], 겸손하여 남에게 사양하고 양보하는 마음[사양지심(辭讓之心)], 그리고 옮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시비지심(是非之心)]이 그것입니다. 이 마음들을 갈고닦음으로써 사덕(四德)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이룰 수 있습니다.

결국 사단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 부단한 성찰과 실천을 통해 사덕을 이루는 순간, 세상과 내가 연결되는 '호연지기'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2.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도덕 법칙


독일의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독일 철학의 거장이자 근대 철학을 대표하는 사상가입니다.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의 3대 비판서를 통해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죠. 인간이란 단순히 자연적 충동이나 욕망에 끌려 사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도덕법칙을 세우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율적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인간의 이성이 단순히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에 그치지 않고, 실천적 차원에서 도덕적 삶을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는 점이었죠.


네 의지의 준칙이 동시에 보편적인 자연법칙이 되도록 행위하라.

— 임마뉴엘 칸트, 정언명령(Kategorischer Imperativ)


칸트는 인간을 욕망에 끌려 다니는 존재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스스로 세운 보편적 도덕 법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율적 존재라 보았습니다. 그는 이를 실천이성(Praktische Vernunft)이라 불렀는데 개인의 욕망이나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이성으로 확신한 법칙’에 따라 스스로를 이끌어가는 힘, 도덕적 판단과 행위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도덕원리의 보편적 법칙이 바로 칸트의 정언명령입니다. 내면의 성찰과 도덕적 실천을 통해서 살아가는 힘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원천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3. 과학에서 말하는 넓고 광대한 에너지, 태양


우주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습니다. 은하와 성단, 성운과 항성, 그리고 그 주의를 도는 행성과 위성, 혜성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죠. 우리가 속해 있는 태양계는 태양이라는 항성과 그 주위를 주기적으로 돌고 있는 여러 행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항성이란 스스로 핵융합을 통해 빛을 내는 천체입니다. 태양 내부에는 수소원자핵이 엄청난 압력과 온도 속에서 융합하여 헬륨으로 바뀌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빛과 에너지를 방출하게 됩니다. 그 에너지가 빛과 열의 형태로 우리가 속해 있는 태양계의 모든 행성에 쉼 없이 에너지를 보내줍니다.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한 것도 모두 태양 덕분입니다. 40억 년 전, 태양 에너지는 바다를 데우고 대기 속에 화학물질의 반응을 촉진시키며 원시적인 생명체를 탄생할 토대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리고 태양빛을 흡수해 광합성을 하는 최초의 박테리아가 만들어지며 산소가 대기에 축적되며, 지구상에 생명체들의 진화가 시작되는 결정적인 조건을 만들게 되죠.

태양의 수명은 100억 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약 50억 년을 살아오고 있죠. 여전히 우리 지구는 태양의 에너지를 기반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문명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우주의 질서 속에서 발현되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에너지를 보내주는 태양이야 말로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광대한 기운이라고 하겠습니다.


4. 문학 속에서 말하는 세상을 연결하는 본질


'자유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1819-1892)은 오직 한 편의 시집을 평생에 거쳐 개정하며 확장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1855년 자신의 자비를 들여 총 12편의 시가 들어있는 시집『풀잎(Leaves of Grass)』을 출간한 이후 1892년 마지막 임종판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애 내내 개정과 증보를 하며 이 작품을 완성합니다. 이 시집은 단순히 개별 시의 모음집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개인과 우주,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거대한 하나의 흐름을 말하고자 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북전쟁 시기 링컨을 추모한 「O Captain! My Captain!」, 인간의 신체와 생명을 찬미한 「I Sing the Body Electric」, 그리고 그의 사상의 정수를 담은 「Song of Myself」 등이 모두 여기에 실려 있습니다.


I celebrate myself, and sing myself, / And what I assume you shall assume, / For every atom belonging to me as good belongs to you.

“나는 나 자신을 찬미하고 노래한다. 내가 가정하는 바를 너도 가정하리니, 나에게 속한 모든 원자는 너에게도 똑같이 속하니라.


— 월트 휘트먼, Song of Myself 중에서


그의 대표 시인 'Song of Myself' 속에서 '나'는, 좁은 의미의 존재가 아닙니다. '너'와 '우리' 그리고 더 큰 의미로 자연과 우주가 연결된 존재로써 의미를 확장해 나아가죠. 개인의 개별적인 쾌락이나 욕망을 넘어, 몸과 영혼, 나와 세계,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호흡으로 묶는 세상의 본질성을 제안하죠.


5. 예술에서 말하는 자연과 인간이 호흡하는 기운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은 한국 회화사에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는 새로운 흐름을 열어젖힌 거장입니다. 이전까지 주로 중국의 산수화풍을 그대로 본떠 그리는 것이 당시 미술의 사조였다면, 정선은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우리 땅의 산과 강, 바다와 들을 화면에 담아냈습니다. 그가 붓으로 옮겨낸 금강산, 한강, 인왕산의 풍경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호흡하는 광대한 기운을 담아낸 것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이자 국보 216호에 지정된〈인왕제색도〉는 비가 갠 뒤, 구름 사이로 햇살이 퍼지며 인왕산을 감싸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단순히 산의 외형을 옮긴 것이 아니라, 웅혼한 산세와 생동감 넘치는 기운들을 담아 그 속에 깃든 자연의 호연지기를 화폭에 불어넣은 것이죠. 정선의 진경산수는 자연에서 느껴지는 ‘큰 기운’, 즉 호연지기를 그림 속에 펼쳐 냅니다. 산과 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토대이며 동시에 자연과 합일되는 경지를 일깨워 주죠. 그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나”라는 좁은 틀을 넘어,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세상 속의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세상을 품어야죠.


어릴 적 넓은 자연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어른들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 '호연지기를 길러라.'였습니다. 그저 넓고, 높은 마음가짐이라고 어렴풋이 짐작으로 생각하던 시절이었죠. 호연지기라는 말은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유 속에서 다른 개념으로 설명되고는 합니다. 노자의 도(道), 중용의 중용(中庸), 불교의 선(禪)에 서양에서는 아레테(아리스토텔레스), 비탈리즘(Vitalism)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죠.

결국 나라는 존재에 갇히지 않는 열린 마음입니다. 자연과 우주처럼 넓고, 높은 마음을 가진다면 세상 속에 작은 존재인 내가, 세상을 품을 만큼 큰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하겠죠. 지금 이 순간을 정직하게 살아가고, 타인을 존중하며, 더불어 함께한다는 마음가짐을 길러야 합니다. 시대와 언어, 표현은 언제나 달랐지만 그 본질은 결국 하나인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거인의 삶을 향해

오늘도 부단히 노력하여야겠습니다.』


하나의 명언이 하나로 흐르다.

– 일언일맥(一言一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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