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언일맥(一言一脈) 열다섯 번째

열역학 제2법칙 : 엔트로피

by 이민행

1.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질서도가 증가한다.


집에 애완동물 키우시나요? 강아지나 고양이뿐 아니라 최근에는 다양한 식물이나 파충류, 곤충까지 키우는 분들도 참 많습니다. 저희 집에도 반려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반수생 거북이죠. 이 글을 쓰면서 종류를 검색해 보니 리버 쿠터라는 미국에서 자생하는 거북이라고 하네요. 아들 녀석의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생일선물로 거북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문(Moon)'과 '스타(Star)'가 저희 집에 입양되어 와서, 벌써 6년이 되어 가네요. 10센티미터도 안된 작은 녀석들이었는데, 지금은 제 손바닥보다도 커져 있습니다.

그런데 녀석들이 온 이후로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밥 주고 귀여워하는 건 아들과 아내의 몫인 반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물을 갈아주는 건 제 몫이 되었다는 것이죠. 잘 먹고, 잘 움직이다 보니 깨끗하게 갈아줬던 물도 시간이 지나면 탁해지고, 쳐다보는 저의 마음도 답답해지곤 합니다. 거북이가 사는 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질서도', 즉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이죠.


고립된 계에서는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

— 열역학 제2 법칙


엔트로피(entropy)는 물리학적으로는 ‘에너지가 쓸모 있는 형태로 변환될 수 없는 정도’를, 좀 더 직관적으로는 ‘무질서한 정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엔트로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항상 증가하거나 일정하게 유지는 되지만, 결코 감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열역학 제2법칙의 원리이죠. 즉, 자연계의 모든 과정은 점점 더 무질서해지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19세기 중반, 산업혁명과 함께 혁명적인 변화라고 한다면 단연 증기기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이를 동력으로 사용하였지만, 극히 낮은 효율을 보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낮은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죠. 1824년, 프랑스의 사디 카르노(Sadi Carnot)는 이러한 열기관의 한계 효율을 설명하였고, 이후 독일의 물리학자인 루돌프 클라우지스(Rudolf Clausius)가 처음으로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현대의 우리는 누구나 쉽게 아는 '열은 더 차가운 곳에서 더 뜨거운 곳으로 저절로 이동하지 않는다.'는 법칙을 정립하죠. 이후 절대온도(켈빈온도)와 관련된 열역학의 학문적 연구가 본격화됩니다.

'열역학', '엔트로피'라는 용어 자체만으로 쉬운 분야는 아닙니다만, 우리는 일상에서 쉽게 열역학 제2 법칙을 접합니다. 깨끗하게 치운 방이 시간이 지나면 먼지가 쌓이며 어질러지고, 차가운 얼음을 상온에 놔두면 스스로 녹으며 물이 됩니다. 맛있는 카페라떼는 커피와 우유가 섞인 것인데, 아무리 휘저어도 절대로 다시 커피와 우유로 분리되지는 않죠.

이렇게 엔트로피의 법칙은 이 세상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인 것이죠.


2.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무질서를 낮추는 인위(人爲)의 힘


전국시대 말기, 제나라의 수도인 임치에는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 사상을 연구하는 학문의 장(場)이 있었습니다. 바로 직하학궁(稷下學宮)이죠. 순우곤(淳于髠), 맹자(孟子), 추연(鄒衍), 전병(田騈), 신도(愼到) 등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거쳐갔는데, 이 직하학궁의 최고 책임자, 좨주(祭酒)를 3번이나 역임한 사람이 바로 순자(荀子, 기원전 3세기)입니다. 그는 맹자의 성선설에 맞서 성악설을 내세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人之性惡,其善者偽也.”

사람의 본성은 악하고, 그 선함은 인위(人爲) 다.

— 순자, 성악편(性惡篇


學不可以已.”

배움은 그쳐서는 안 된다.

— 순자, 권학편(勸學篇)


사람은 본래 태어날 때 욕망과 시기, 이익 등을 좇는 성정을 타고나게 됩니다. 만약 그대로 두었다가는 세상은 다툼과 혼란으로 인해 혼돈에 빠지게 되죠. 이러한 혼돈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배움(學)과 예(禮)입니다. 순자는 예를 욕망을 ‘없애는’ 장치가 아니라 ‘절도 있게 배분하는 규칙’으로 봤습니다. 먹고 입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충동을 부정하지 않고, 법·관습·교육을 통해 서로 부딪히지 않게 조율하는 기술로써의 기능을 말한 것이죠. 그래서 그는 “스승과 법(師法)의 교화가 있어야 비로소 예의 길로 나온다”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사상은 후에 전국을 통일한 진(秦) 나라의 통치이념인 법가를 만든 그의 제자 한비·이사에게 이어지죠.

순자가 바라본 인간과 사회는 그대로 놔두면 혼돈과 무질서가 지속, 아니 가속될 뿐입니다. 교육, 수양, 예 라는 제어의 에너지를 주입해야 만 질서가 유지된다고 본 것이죠.


3.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무질서를 막는 절대권력


17세기 잉글랜드는 종교 개혁 이후의 불안, 청교도 혁명과 왕당파·의회파의 내전, 전염병과 기근 등으로 인한 혼란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간 인물이 바로 영국의 정치철학자인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입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고, 자연상태의 인간 사회는 필연적으로 무질서와 폭력으로 치닫는다고 생각했습니다.


“Bellum omnium contra omnes.”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홉스가 말하는 ‘자연상태’는 법과 권위가 부재한 상태입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서로를 의심하며, 선제적으로 공격할 준비를 합니다. 그 결과 인간사회라는 고립계에서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불안정한 무질서 상태가 유지되고 서서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죠.

이러한 무질서를 줄이기 위해 홉스가 제시한 해법이 그의 유명한 저서이기도 한 리바이어던(Leviathan), 즉 '절대적인 주권자'입니다. 그는 모든 개인이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는 계약(사회계약)을 맺고, 그 계약을 강제할 힘을 절대 권력에 위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강력한 법과 권위라는 ‘외부 에너지’를 주입해 무질서를 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홉스가 바라본 인간과 사회 역시, 그대로 방치하면 혼돈과 무질서가 가속될 뿐입니다. 오직 권위, 법, 강제력이라는 제어의 힘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때에만 사회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동양에 순자, 한비자가 있었다면 서양에는 바로 홉스가 이와 같은 주장을 펼친 것입니다.


4. 문학 속에서 말하는 무질서의 비극


영국 작가 윌리엄 골딩(1911~1993)은 제2차 세계대전에 해군 장교로 참전한 경험을 통해 인간의 폭력성과 집단 심리를 깊이있게 관찰했습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문명인이 얼마나 쉽게 야만 상태로 돌아가는지를 목격했던 그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1954년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표합니다.

이 작품은 핵전쟁 중 피난을 가던 영국 소년들이 비행기 추락으로 무인도에 고립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처음 소년들은 민주적인 규칙을 만들고, 현명하고 리더십이 있는 랄프를 지도자로 선출하며 협력과 생존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섬 어딘가에 있는지 모르는 괴물에 대한 두려움과 생존을 위한 권력 다툼이 커지면서 집단은 점차 분열됩니다. 정해놓은 규율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폭력과 본능이 차지하며 소년들은 점점 야만화 되어 가고, 결국 어른들이 구출하러 오기 전까지 지옥도가 펼쳐지는 끔찍한 상황에 놓이게 되죠.


“모든 게 엉망으로 되어 가고 있어. 까닭을 난 모르겠어. 처음엔 잘 돼 갔었고, 우린 행복했어.”
— 『파리대왕』랄프의 대사 중


작품 속 무인도는 자연상태의 축소판입니다.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작품이 이어지면서 뼈저리게 다가오죠. 외부의 법과 규율, 교육이 사라진 환경에서는 질서는 무질서로 변화하고 확산되며, 이를 되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이 작품은 무질서의 법칙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규율과 법이라는 사회적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질서는 점차 붕괴되고 결국 사회는 파괴되고 만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5. 예술에서 말하는 무질서의 미학


철학이나 문학 분야에서는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것을 위험하고 경계해야 할 것으로 봤지만, 예술분야 특히나 음악에서는 다릅니다. 20세기 초,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간 재즈가 대표적이죠.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공동체에서는 영가(spirituals), 블루스, 워크송, 랙타임과 브라스밴드 문화가 한데 섞였고, 콩고 스퀘어의 콜앤리스폰스 전통에 유럽식 조성·화성 체계가 만나면서 재즈의 씨앗이 자랐죠. 1930년대 스윙, 40년대의 비밥을 거쳐 쿨/하드밥(1950s), 모달(1959), 프리 재즈(1960s), 퓨전(1970s), 그리고 현대 재즈로 진화하게 됩니다.

재즈의 핵심은 즉흥(improvisation)입니다. 연주자들은 정해진 화성 진행과 곡의 구조(질서) 위에서, 즉석에서 멜로디와 리듬을 만들어내며 때로는 코드 밖으로 나가는 ‘아웃사이드’ 연주나 예측을 깨는 리듬 변형으로 무질서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이 무질서는 곧 다시 원래의 화성과 구조 속으로 회귀하며 청자에게 강렬한 긴장과 해소를 선사하죠.

이러한 즉흥의 과정, 즉 무질서의 증가가 곧 재즈라는 음악의 진정한 매력입니다. 무질서가 커질수록 새로운 감정이 터져 나오고, 그 과정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예술적 질서가 창조되는 것이죠.


무질서를 질서로, 결국 부단함.


주말이면 거북이들의 물을 갈아줍니다. 탁했던 물을 버리고, 3번 정도 깨끗한 물로 청소를 한 뒤, 담아두었던 물을 부어 마무리를 하죠. 바뀐 물속에 들어간 직후의 '문'과 '스타'를 보면 기뻐하고 행복해한다는 느낌이 움직이는 몸짓으로 확연히 드러납니다.

자연은, 아니 이 우주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가는 불가역(不可逆)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우주의 탄생인 빅뱅에서부터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의 엔트로피는 쉬지 않고 증가하고 있죠. 범위를 축소해서 지구상에 있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두 예외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 사람의 길 위에서 만큼은 이 법칙을 무조건 따라서만은 안됩니다. 열역학 제2 법칙을 거스르려면 거기에 대항할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배우고, 익히며, 통제하고, 절제한다는 일이 분명 힘들고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역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원천이자 반드시 필요한 것은 꾸준함입니다. 보다 나은 인간으로서의 방향, 그리고 부단한 습관과 실천만이 인간의 무질서를 질서로 바꾸고, 혼돈 속에서 길을 찾게 해주는 것입니다.


『질서를 세우는 일, 그리고 부단함이

인간으로서 살아내야 할 숙명이 아닐까요?』


하나의 명언이 하나로 흐르다.

– 일언일맥(一言一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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